
2025년 세제개편안? 처음 보도자료를 접했을 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발표 전까지만 해도 그 동안 언론에서는 큰 틀의 세법개정은 없는 것으로 보도해 왔기 때문이다. 혹시 상속세 개편이 들어가 있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시 세제개편이 아니라 단순한 '세법개정'이었다.
한 마디로 이번 2025년 세법개정안은 그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던 상속세 개편안이 빠져있어 김빠진 모양새다. 다만, 고무적인 것은 미래의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한 결혼, 출산, 양육, 연금 등에 대하여 새로운 세제혜택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기존 규정을 보다 정교하고 합리적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에서 여러 조세전문단체의 의견을 반영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한편, 이번 개편안에서 논란거리가 될 만한 분야가 많아 보인다. 특히, 세법 개정 항목 간에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나 반도체 등 국가미래전략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제안하면서, 다른 쪽에서 법인세율을 1% 인상한다고 한다.
법인세수는 최근 몇 년간 약 100조원에서 60조원 대까지 감소하였다. 삼성전자는 2018년 이후 매년 약 10조원의 법인세를 납부해오다 2023년 및 작년에 법인세를 거의 내지 못했다. 반도체 등 실적부진 때문이다.
즉, 법인세는 전세계적인 경기 상황 및 기업의 실적에 전적으로 좌우되는데, 최근 몇 년간의 법인세수 감소가 온전히 전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로 인한 것인양 몰아가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법인세율 1% 인상은 연간 약 2~3조원 정도의 효과로 예측되기 때문에 전체 법인세수 감소 원인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법인세율 인상은 중소기업에게도 적용되어 모든 기업이 추가적인 세부담을 져야 한다.
물론, 법인세율은 명목세율이므로 바로 기업이 부담하는 법인세율은 아니다. 실제로 기업이 부담하는 유효세율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지만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명목세율 1% 인상은 유효세율 1% 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최근의 상법 개정 및 미국 추가관세로 인해 고통받는 기업에 법인세율까지 인상하면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아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법인세율 인상보다는 기업의 경쟁력과 영업이익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법인세율 인상을 '세부담 정상화'라고 핑계대지 말고 차라리 '증세'라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증권거래세율을 다시 올리는 것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라는 이유가 있지만 법인세율 인상은 마땅한 이유가 없다. 세수 부족이 이유인 것이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습니다.”
이번 정부의 큰 슬로건이다. 하지만, 세제개편안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세제가 증권시장 활성화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증권시장 활성화를 위해 고배당기업의 배당소득을 분리과세하겠다고 제안했다. 반면에 대주주 범위는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고, 증권거래세율을 0.15%에서 0.2%로 인상하겠다고 한다.
세제개편안이 공개되고 가장 비판을 받은 것은 대주주 범위의 확대이다. 종목당 50억원 이상을 보유하면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이 되는데, 이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주식시장은 8월 1일 폭락으로 화답했다. 물론, 1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더라도 해당되는 납세자는 전체 투자자의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정부가 고배당을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투자자 마음을 들뜨게 해놓고 뒤통수를 친 것이다. 주식시장은 분위기가 중요하다. 막연한 불안감은 주식시장 상승의 걸림돌이다. 세수 역시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대주주 범위에 해당되는 투자자는 연말에 팔고 연초에 다시 사는 패턴을 과거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중요한 세제개편으로 보인다. 물론 전체 배당소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배당성향 40% 이상 등 고배당기업의 배당금에 한정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고질적인 배당 기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배당 결정권을 쥐고 있는 지배주주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당근이 너무 작다. 3억원 이상 배당은 38.5%로 과세하겠다고 한다. 현재 종합소득에 포함되는 배당소득은 49.5%의 최고세율을 적용받아도 배당세액공제를 하면 역시 30% 후반대로 과세되고 있다. 큰 메리트가 없는데 굳이 배당을 더 할 이유가 없다. 당근을 주려면 10% 정도는 더 낮게 과세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당초 올해부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시행하기로 하고 모든 세법을 수정했다가 시행 한번 못하고 폐지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정확하게 말해 국회가 세법 개정을 너무 국민들 눈치를 보고 원칙 없이 하는 것이 문제이다. 누더기 세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식 양도소득세는 종목별 투자금액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양도소득 금액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금투세 시행 초기에는 소액투자자들을 위해 양도소득 5000만원 보다는 많이 완화해서 1억원이나 2억원 기준으로라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대주주 요건 강화, 증권거래세율 인상 등의 논란이 없었을 것이다. 증권거래세가 없는 국가도 상당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과세하는 수순으로 가야 할 것이다.
조세의 주된 목적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다. 부차적으로 사회·경제적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세가 이용되기도 한다. 국가미래전략산업을 키우고,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인데도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상반된 개정은 세법 개정의 효과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무조건 전 정부에서 개정한 세법을 되돌리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부자감세 철회, 세부담의 정상화 등의 정치적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큰 그림에서 세법개정을 볼 필요가 있다.
올해 역시 조세지출에 대한 정리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일몰종료 72개 중 7개만이 종료되고, 그마저 모두 세액이나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다.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는 조세지출의 일몰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 정치적 목적보다는 정책적 목적이 달성되었느냐에 두고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신용카드소득공제의 경우 당초 세원양성화라는 정책목표가 달성되었음에도 매년 수조원의 조세지출이 발생하고 있다. 기존에 혜택을 받고 있던 많은 납세자의 반발을 살 수 있겠지만 당초의 입법취지를 잘 홍보해서 순차적으로 폐지하는 수순으로 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번 개정 때 부동산 관련 세제가 빠진 것에 대한 논란도 많다. 대부분 윤석열 정부 때 부동산 세제가 거의 풀린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부동산 세제는 전 정부 때 어느정도 완화했지만 아직 문재인 정부의 강화된 규정은 살아 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는 한시적으로 풀어준 것이고, 취득세 중과도 아직 살아있다. 여기서 더 강화된 부동산 세제를 도입한다면 과거 문재인 정부 때 경험했던 부동산 폭등이 재현될 지도 모른다.
부동산 시장에 몰린 유동자금을 증시로 환류하게 하려면 일단 부동산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도록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신,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 등은 필요할 것이다. 이제 투자자들은 부동산이나 국내 주식시장 뿐 아니라 해외 증시 투자라는 대안이 있다. 그래서, 획기적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세율을 낮추거나, 대주주 기준 강화 철회 등이 없으면 사실상 부동자금이 국내 증시로 환류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납세자 및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상속세 개편이 누락된 것은 실망스러운 측면이다. 물론, 보다 더 정교하게 개편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상속세법 개정 논의에 대한 열기가 식으면 언제 다시 개정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열기가 식기 전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서 조속히 상속세 개편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건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일회계법인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며 Tax본부 파트너를 지냈다. 한국공인회계사 시험 세법 출제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2021년 국립한밭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