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면서 가장 속상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더욱 억울한 것은 받지도 못한 돈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A회사가 B회사에 상품을 1억원(부가가치세 포함 1억1000만원)에 팔았는데, B회사가 부도가 나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A회사는 실제로 받은 돈이 없음에도 매출 1억원에 대한 법인세와 부가세 1000만원을 모두 납부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세법에는 다양한 구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대손금과 대손세액공제란?
받지 못한 돈에 대한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대손 처리가 있다. 대손금이란 사업자가 가지고 있던 받을 돈(채권)이 거래처의 파산이나 부도 등으로 인해 회수할 수 없게 된 손실을 말한다. 법인세와 소득세에서는 이렇게 확실히 손실이 된 대손금을 필요경비로 인정해준다. 즉, 세금을 계산할 때 소득에서 빼주는 것이다.
부가세에서도 비슷한 구제 방안이 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경우, 이미 낸 부가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이를 대손세액공제라고 한다.
받지 못한 외상매출금이 부가세를 포함해 110만원이라면, 100만원을 대손금으로 처리하고 부가세 1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실제 적용 절차는 까다로워
하지만, 이런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실제로 혜택을 받기는 매우 까다롭다. 복잡한 법적 조건들을 모두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세목별로도 조건이 다르다. 법인세의 경우 몇 가지 채권은 아예 대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보증을 서다가 생긴 채권이나,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가족, 계열회사 등)에게 빌려준 돈 등은 대손 처리가 불가능하다. 부가세 대손세액공제의 경우, 부가세가 붙는 거래에서 생긴 외상매출금만 대상이 된다. 또한 법원에서 회생계획을 승인받아 채무를 주식으로 바꾸는 경우 등도 별도로 인정해주는 등 법인세와는 조금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대손 처리가 가능할까? 대손처리는 크게 세금 신고 시점에 할 수 있는 경우와 결산 시점에 할 수 있는 경우로 나뉜다.
먼저, 세금 신고할 때 대손 처리가 가능한 경우를 살펴보자. 채권의 법적 시효가 끝나서 더 이상 법적으로 받을 수 없게 됐거나, 법원에서 회생계획이나 면책을 받아 채권 회수가 불가능해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신용회복 지원을 받아 면책된 채권이나, 경매가 취소된 압류 채권도 세금 신고 시점에 대손처리 할 수 있다.
반면, 채무자가 파산 혹은 사업을 폐지했거나, 사망이나 행방불명으로 인해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다면 결산 시점에 대손 처리를 할 수 있다. 또한, 부도 발생 후 6개월이 지난 수표나 어음, 외상매출금은 중소기업에 한해 대손 처리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보유한 외상매출금 중에서 회수 예정일이 2년 이상 지난 것, 그리고 회수 예정일이 6개월 이상 지났으면서 금액이 30만원 이하인 채권도 결산 시점에 대손 처리가 가능하다.
대손 사유만으로는 부족
하지만, 위와 같은 대손 사유가 발생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대손 처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법에서는 채권 회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에도 거래처에 재산이 없어서 회수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대손 처리를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적극적인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법에서 명시하지 않았지만, 실제 심판 사례들을 보면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심판 사례에서는 "거래처 명의의 차량이나 부동산 소유 여부, 임차보증금 등을 확인하지 않았고, 상속인 조사도 하지 않았으며, 법원에 지급명령 신청도 하지 않는 등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손 처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회계 자료만 제출했을 뿐, 채권을 적극적으로 추심하거나 시효 중단을 위한 조치를 하는 등 채권 회수를 위한 노력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내용증명이나 이메일, 문자 메시지를 통한 독촉 등의 증빙도 없다"는 이유로 대손 처리를 거부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실제로 돈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무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은 조건 대폭 완화
중소기업 사업자들은 현장에서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최근 중소기업에 대한 대손 요건이 대폭 완화됐다. 2020년 2월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2020년 1월 1일 이후부터는 중소기업의 외상매출금이 회수 예정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대손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더욱 좋은 점은 국세청이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의 회수 노력 없이도 대손 처리가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소기업이라면 2년이 지난 외상매출금에 대해서는 복잡한 증빙 없이도 대손 처리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단, 가족이나 계열회사 등 특수한 관계에 있는 거래처와의 거래는 제외된다.
만약 과거에 대손금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거나 대손세액공제를 받지 못했더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세법에서는 법정 신고 기한으로부터 5년 이내에는 경정청구라는 절차를 통해 과거에 낸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관할 세무서에서 2개월간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하고, 관련 법리와 증빙 서류를 제대로 갖추어야 하므로 세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명규 회계사는?
숭실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EY한영회계법인 세무본부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현재 진형세무회계에서 국내법인 및 사업자의 세무조사 대응과 경정청구 업무에 주력하고 있으며, 기업 세무자문을 통해 최적의 절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