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청 직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이번 관세청장 교체 인사는 기습적이었다.
내부적으로는 6년 만에 내부 승진으로 관세청장에 오른 이명구 전 관세청장에 대한 평판이 좋았던데다가, 이 전 청장이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청와대는 지난달 15일 오후 보건복지부 제1차관에 현수엽 복지부 대변인을, 관세청장에 이종욱 관세청 차장을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청와대는 이 전 청장 교체가 경질로 비치는 것을 의식한 듯, 이번 인사가 경질이 아니라 행정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인사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사실 이번 인사는 관세청 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이 전 청장은 평소 내부 직원들에게 신망이 두터웠고, 관세행정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기습 인사가 단행된 것일까.
'패배주의'를 말했던 관세청장
이 전 청장의 임명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관세청장은 줄곧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 흐름이 깨졌다는 점이다.
관세청장 인사는 그동안 재정경제부 세제라인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관세청이 독립 외청이기는 하지만 관세정책이 조세정책의 한 축인 데다, 세수와 통상, 산업정책과도 맞닿아 있어 재경부 세제실장 출신이 청장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았다.
실제 허용석·윤영선·주영섭·백운찬·김낙회 전 청장 등은 모두 세제실장을 거쳐 관세청장을 지냈다. 이후에도 임재현·윤태식·고광효 전 청장이 세제실장 출신으로 관세청장을 맡았다.
반면 내부승진은 상대적으로 예외적인 인사로 여겨져 왔다. 성윤갑·천홍욱·노석환 전 청장 등이 관세청 내부 주요 보직과 차장을 거쳐 청장에 오른 사례가 있었지만, 세제실장 출신 인사 흐름을 완전히 대체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관세청 내부에서는 청장 인사를 앞둘 때마다 "이번에도 세제실장 출신이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반복됐다.
이런 인사 관행은 직원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줬다. 관세공무원들은 스스로를 '힘없는 외청'이라고 자조했고, 이런 분위기는 업무 의욕 저하로 이어졌다.
이런 이유로 이 전 청장이 이재명 정부 초대 관세청장으로 임명된 것은 상직적인 의미가 컸다. 내부에서는 새 정부가 조직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인정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이 같은 기대를 의식한 듯, 이 전 청장은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관세청의 형식주의, 패배주의, 권위주의 등 안 좋은 것들을 걷어내겠다"고 말했다. 내부 인사만이 꺼낼 수 있는 조직의 아픈 부분을 정면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는 관세공무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관세청이라는 조직도 스스로 변화할 수 있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 청장이 갑작스럽게 교체되면서 관세청 내부에서도 이번 인사는 예상 밖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전 청장이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교체가 된 것은 누가 봐도 이례적이었다.
다만 조직 내부의 동요는 크지 않은 분위기다. 신임 청장으로 임명된 이종욱 청장이 바로 전까지 관세청 차장을 지낸 내부 인사라는 점이 작용했다. 소리 소문 없이 관세청 내부인사를 관세청장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두 번째 파격이었던 셈이다.
관세청 내부에서는 외부 인사가 청장으로 내려왔다면 조직 내 패배감이 다시 확산됐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관세행정은 통관·심사·조사·감시·마약 단속·외환조사 등 현장성과 전문성이 강한 업무가 많아 조직 이해도가 중요한 분야다. 그럼에도 외부 인사가 임명됐다면 관세행정의 전문성과 내부 경험이 인사 과정에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 청장은 관세청 심사국장, 통관국장, 기획조정관, 조사국장 등을 거쳐 차장까지 지낸 정통 관세 관료다.

관세청 내부승진,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질까
차관급 인사를 단행하기 전, 정부부처 안팎에서는 누가 하마평에 올랐는지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별다른 사전 기류 없이 기습적으로 진행됐다. 만약 외부 인사가 관세청장으로 임명됐다면 내부 반발이 커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기습 인사 속에서도 내부 인사가 청장으로 임명되면서 관세청 조직에는 또 다른 기대감도 생겼다.
국세청이 내부승진을 사실상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관세청도 이제 내부승진 공식이 자리 잡아가는 것 아니냐는 기대다.
이 청장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꺼낸 과제도 현장형 관세행정이었다. 이 청장은 취임 당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약 단속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 청장은 "마약 문제는 조금 더 잡고 덜 잡고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근절해야 할 사안"이라며 단속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청장은 가상자산 대응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이 청장은 관세청이 가상자산 거래자료를 확보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전담 분석팀 구성부터 단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이 불법 외환거래와 재산 은닉, 무역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관세청 내부에도 전문 분석 역량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내부승진의 가장 큰 장점은 조직 안정성이다. 관세행정은 현장 경험, 법령 이해, 국제 협력, 위험 관리 등 여러 역량이 필요하다. 전자상거래 통관, 마약 밀반입 차단, 외환·무역범죄 대응, 경제안보 등 업무가 확대되면서 내부 전문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외부 출신 청장은 조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내부 출신은 현안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 승진이 완전히 공식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세청장은 관세행정뿐 아니라 재정, 국회, 통상 등 여러 부처와의 조정 능력도 필요하다. 관세정책이 세법, 무역, 통상 환경과 연결되어 있어 내부 출신 청장은 조정 능력도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인사가 관세청 내부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관세청 차장까지 오른 내부 인사가 청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경로가 다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때 세제실장 출신의 주요 보직처럼 여겨졌던 관세청장 자리가 관세행정 전문가에게도 열려 있다는 인식이 강해질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다음 인사다. 두 차례 이어진 내부승진은 예외로 볼 수 있지만, 세 차례 연속 내부승진은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이 청장 이후에도 내부 출신 청장이 이어진다면 관세청장 인사에서 내부승진 공식은 더 이상 기대가 아니라 인사 관행이 됐다고 읽힐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