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회사, 괜찮을까요? 버틸 수 있을까요?
고객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세무사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기장과 세무신고 위주의 업무를 해온 세무사에게 경영진단과 세무 리스크 분석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기업의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서 한 번에 뚝딱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고객은 다르게 생각한다. 회사의 모든 재무정보를 세무사에게 맡겼는데, 왜 위험을 미리 알려주지 못하는지 궁금해한다. 세금 계산은 해주면서 경영의 이상 신호는 왜 알려주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간극 속으로 AI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그동안 세무·회계업계에서 AI 논의는 주로 업무 효율화에 맞춰져 있었다. 증빙 정리, 자료 입력, 기장 보조, 신고 업무에 드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업무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로 얻은 시간으로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장 수수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무사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용구 더존비즈온 공동대표는 지난해 택스워치 인터뷰에서 이 방향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데이터를 모으는 AI와 해석하는 AI가 따로 있었지만, 이제는 AI가 두 역할을 동시에 한다. 사람이 좋은 데이터를 모아 AI에게 주면, 결과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컨설팅을 할 때 해당 기업의 정보를 다 받더라도 그중 필요한 것만 빼내 컨설팅과 법인조정에 활용하고, 나머지 자료는 활용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소를 잡으면 살코기만 먹는 것이 아니다. 소머리로 제사를 지내고, 우족은 국물로 고아 먹으며, 소 혀까지 활용한다. 버릴 것이 없다. 앞으로는 AI를 이렇게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조기사: [인터뷰]정보 셀렉터에서 지휘자로…지용구 대표의 AI 생존전략>
핵심은 세무사가 이미 갖고 있는 기업 데이터를 버리지 않고 해석의 재료로 바꾸는 일이다. 세금 신고의 시대를 넘어 숫자 해석의 시대로 가는 길에서 세무사는 단순 신고대리인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위험을 진단하는 CGO(최고성장책임자)로 진화할 수 있을까.
※ CGO란?
최고성장책임자(Chief Growth Officer)를 뜻한다. 기업의 매출 확대, 고객 관리, 신사업 발굴, 수익모델 개선 등 성장 전략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이 기사에서는 세무사가 AI를 활용해 기업의 숫자를 해석하고 성장 가능성과 위험 요인을 진단하는 미래 역할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고객은 '지금'을 알고 싶다
중소기업 대표는 단순히 올해 낼 세금만 궁금해하지 않는다. 매출이 늘었는데 왜 통장에 돈이 없는지, 비용이 위험한 수준인지, 대출 연장이 가능한지, 올해 성실신고 대상이 될지 등 다양한 고민이 있다.
이 질문들은 세금 계산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현금흐름, 비용구조, 차입금, 매출채권 회수, 신용등급, 예상세액, 세무조사 위험 등 여러 요소를 함께 봐야 한다. 경영, 세무, 금융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CFO와 재무팀, 기획실이 있어 매월 실적과 위험 신호를 점검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대표가 혼자 경험에 의존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외부 컨설팅을 받으려면 비용 부담이 크다. 일부 세무법인이나 컨설팅 조직이 수작업으로 경영·세무진단 리포트를 만들면 비용이 수천만원까지 올라간다.
결국 중소기업 대표가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세무사다. 세무사는 거래처의 회계 장부와 신고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무법인 소속 A세무사는 "고객들은 회사 방향이 맞는지, 매출과 비용 흐름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세금 신고 시기에야 알 수 있다. 중간결산이나 가결산을 통해 알려주기도 하지만, 시기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무진단 리포트를 수작업으로 만들면 비용이 3000만 원까지 들 수 있다. 세무사도 일일이 분석하다 보니 인건비가 많이 든다. AI로 세무진단이 시스템화되면 세무사는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고객은 더 낮은 비용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서로 윈윈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AI 활용은 늘었지만, 아직은 작문 중심
AI는 세무사에게 더 이상 낯선 도구가 아니다. 세무사들은 AI를 보고서 작성, 블로그와 쇼츠 아이디어 발굴, 고객 안내문 작성, 세무조사 롤플레잉 등 다양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AI 툴은 챗GPT(ChatGPT), 클로드(Claude), 노트북LM(NotebookLM), 제미나이(Gemini), 젠스파크(Genspark) 등이었다. 활용 방식은 대체로 문서 작성과 아이디어 보완에 집중됐다.
한 세무사는 더존비즈온의 ONE AI와 세법도우미를 이용해 세무조정과 자료 확인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참조기사: 잘 나가는 세무사들…'AI 도구 조합'이 경쟁력 갈랐다>
세무사들은 범용 AI의 할루시네이션 우려 때문에 세법 질의, 판례 검색, 세무조정 같은 핵심 업무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사람이 검토하기 쉬운 보고서나 의견서 작성 등 작문에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AI 활용이 작문 보조에 머무르는 사이, 고객의 요구는 신고 이후까지 확장되고 있다.
세무사들도 AI로 업무 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세무사회의 플랫폼세무사회(AI 세무사), 삼일PwC의 '택스 에이전트(Tax Agent)' 등 세무 전용 AI툴도 시장에 등장했지만, 여전히 고객과 세무사들이 원하는 답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AI, 세무진단으로 확장될까
다음 과제는 AI로 줄인 시간을 어떤 유료 서비스로 바꿀 수 있는지다. 단순히 보고서를 빨리 쓰는 것보다, 세무사가 고객에게 새롭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그 답 중 하나가 경영진단이다. 세무사는 거래처의 매출과 매입, 비용, 인건비, 차입금, 세금계산서, 재무제표 등 기업의 핵심 숫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그동안 이 데이터는 주로 세금 신고에 쓰였지만, AI가 결합하면 기업의 위험을 진단하는 원재료가 될 수 있다.
시장에서도 세무·회계 데이터를 경영진단과 금융 리스크 분석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다. 데이터와 기업신용평가 모델을 결합해 재무 상태, 신용위험, 경영 리스크를 분석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더존비즈온과 자회사 테크핀레이팅스(기업신용평가사)가 준비 중인 AI 기반 경영진단 모델도 이런 흐름에 포함된다.
다만 AI 경영진단이 실제 세무사의 수익모델이 되려면 단순한 리포트 생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장 세무사들은 "기업 등급이 낮다고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어떤 비용을 줄이고 어떤 지표를 개선해야 하는지까지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AI가 숫자를 산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솔루션을 제시해야만 세무사가 이를 거래처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무사의 역할은 세금 신고나 세무조사 대응에만 머물지 않는다. 거래처의 신용등급 관리, 대출 연장, 자금조달 가능성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 변화는 세무사의 역할과 수익구조까지 바꿀 수 있다. 지금까지 주요 수익원이 기장과 신고 대리였다면, 앞으로는 기업 숫자를 해석하고 위험을 짚어주는 경영진단 자문이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세무사는 세금 신고 전문가에서 현금흐름, 비용구조, 신용위험까지 함께 분석하는 '세무경영 해석가', 나아가 '택스 CGO'로 변화할 수 있다.
AI 시대 세무사의 경쟁력은 신고서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라, 숫자 뒤에 숨은 기업의 위험과 성장 신호를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