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중반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면서, 넘치는 정보 중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후 우리는 정보의 셀렉터(선택자)가 주목받는 시대를 지나왔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또다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는 정보 선택 능력보다 AI에 정보를 제공해 결과를 도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정보의 지휘자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회계사나 세무사 등도 사라질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라는 전망도 나왔다. AI가 세무사의 업무영역을 빼앗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계심도 컸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세무업계에서는 AI가 시대의 흐름이 됐고, 이를 거스르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인지하기 시작했다.
지용구 더존비즈온 성장전략부문 대표(부사장)는 최근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정보를 선별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정보를 AI로 재구성해 혁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AI 시대에서 세무대리인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지 대표는 "지금은 세무사가 수임고객의 정보 중 필요한 것만 골라내 절세 컨설팅 등을 한다. 수임기업의 수많은 정보 중 절세에 필요한 정보만 활용하고 나머지는 다 버리게 된다"며 "하지만 AI는 이 모든 정보를 학습해 가치있는 리포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Q. 최근 'AI 버블론'이 대두됐다. AI가 정말 우리의 삶과 산업을 바꿔줄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일텐데, AI를 개발하시는 입장에서 이런 논란을 어떻게 보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연구진이 최근 AI를 도입한 기업 95%가 실패했다는 연구를 내놨다. 일각에서는 버블이라고도 하는데, 기업들이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구조적으로 잘못된 방향과 방법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AI는 분명한 기회를 제공한다. AI를 도입해 성공한 나머지 5%는 어떻게 AI를 활용하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95%가 실패했다는 것 자체에 집중하지 말고 왜 실패했는지를 봐야 한다.
실패한 원인을 찾으면 우리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그것을 피해서 가면 된다. 버블이라면 지금 AI 투자를 멈춰야 한다. 하지만 AI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개인이 AI를 사용하면 효과가 좋지만, 조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개인은 유연성이 높기 때문에 AI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조직은 그렇지 못하다. 통제 규정이나 가이드라인 등 그런 프로세스가 갖춰지지 않으면 AI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AI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변화를 주도한다. 세무서비스의 영역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세무업계도 전통적 세무업무를 뛰어넘어 서비스 가치를 창출하는 스케일업이 필요하다. 단순·반복하는 일은 AI에게 맡기고 미래를 예측하고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고급 의사결정을 해주는 서비스를 높이는 역할을 세무사들이 해야 한다.
서비스 고급화에 집중하다보면 빅테크 기업이 아니더라도 기회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Q. 몇 년 전, AI의 등장으로 회계사·세무사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적이 있다. AI가 세무업계의 위협 또는 기회일 지 의견이 분분하다. AI의 등장으로 정말 회계사·세무사가 사라질까?
이러한 전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안주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회계사·세무사라는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는 마인드셋은 위험하다.
AI로 세무업무의 질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AI가 일을 대신해주더라도 그건 과정에 불과하다. 결정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인간은 결정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 결정을 기계에게 맡긴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AI가 있기 때문에 세무사 고유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세무사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것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공부하며 세무사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AI 덕분에 구분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 시절, 재택근무를 하던 때와 비슷하다. 당시에는 재택근무를 해도 일이 돌아가고, 누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지 구분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세무사도 마찬가지다. 세무사가 한 회사의 경영을 진단하고 컨설팅을 할 때, 더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이해해야 좋은 컨설팅이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전문성이 부족한 부분을 AI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나은 컨설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Q. 더존비즈온이 세무사와 공인회계사 등 전문가를 위한 AI서비스를 출시하게 된다면 세무회계 업무에 어떤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더존비즈온은 B2B 비즈니스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 영역의 협업과 에코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세상은 혼자 일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것이 파이를 키울 수 있다. 전문가가 나눠 일해야 전문성이 강화된다. 더존비즈온의 기술이 세무사의 지식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기존에는 세무사가 10개 업체를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100개 업체를 관리하고 컨설팅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주는 기술 개발이 우리의 목표다.
세무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전문가는 지식은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경험도 필요하다. 우리는 경험을 데이터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시간의 영역인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을 시켜, 세무사들의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개선한다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난다.
경영 리스크 요인을 미리 알면 위기를 예방할 수 있지만, 늦게 알면 결국 위기를 겪게 된다. AI로 인해 세무사의 역할이 단순 업무를 넘어, 경영컨설턴트 개념으로 확장될 것이다.
가치와 서비스는 같은 개념이다. 기술 발전에만 매몰되면 가치를 잃을 수 있다. 기술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세무사도 똑같다. 세무라는 기술을 잘 활용할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는지 본질을 보면 세무업계의 미래가 밝게 보일 것이다.
AI의 발전은 일반인에게도 세무사의 전문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세무사들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 서비스를 통해 질 좋은 가치를 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을 혼자 하면 고통스럽다.
그래서 AI를 통해 전문성을 스케일업하라는 것이다. 더존비즈온이 개발 중인 엑스퍼트원(Expert1)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다. 다행히도 다른 AI보다 엑스퍼트원의 성능이 더 잘 나오고 있다. 세무사들의 똑똑한 비서 역할을 하게 될 엑스퍼트원을 곧 선보일 것이다.

Q. 세무업계를 비롯해 전 산업에 AI가 화두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겠다. 우리는 대체 왜 AI를 써야 하는가?
기업이 일을 할 때 가장 큰 비용은 시간이다. 시간은 은행에 가서 살 수 없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AI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AI는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범용적으로 활용 가능한 기술이다. 기술의 깊이보다는 응용의 넓이를 추구해야 한다.
세무사를 배제하기 위해 AI를 개발한다는 이런 게 아니기 때문에, 금기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특성이 한 번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 또 잘 된다.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세무 영역도 그런 AI를 도입할 것이다.
AI의 본질은 응용의 가치에 있다. 기업의 경영인이 세무 문제만 가지고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 아니다. 세금을 통해서 경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경영의 본질 안에 세금이 있다.
Q. 최근 국세청이 전국민 AI 세무컨설팅을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세무업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국세청의 AI 서비스가 무료이기 때문에 세무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말 이 서비스가 세무업계에 위협이 될까? 세무사들은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국세청이 납세자 입장에서 좋은 시도를 하고 있다. 다만 국세청이 AI를 통해 완전 자동화 서비스는 하기 힘들 것이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민원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대신 해결해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국세청이 제공하는 AI는 납세자가 질문을 잘 하지 못해도, 알아서 원하는 답변을 찾아주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질문이나 검색을 제대로 해야만 원하는 답변을 찾았는데, 이제는 질문을 대충 하더라도 AI가 답변을 잘 찾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세무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일일이 찾아내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귀찮아 했던 고객들을 타깃으로 했던 세무사라면 위협이다. 국세청은 세금환급 플랫폼인 삼쩜삼 정도의 AI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삼쩜삼을 이용하는 고객이 수익원인 세무사는 타격이 있을 것이다.
세무업계에서 AI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컨설팅을 한 번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이다. 대부분 세무대리인들은 컨설팅을 한 번 진행하고 끝낸다.
개발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과거에는 구슬을 모으는 AI와 꿰는 AI가 따로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구슬을 모으고 꿰는 역할을 하나의 AI가 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구슬을 막 모아서 AI에게 줘야 하는 것이다. AI에게 최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면, AI가 이를 원재료로 사용해 구슬을 꿰듯 결과를 도출한다. 좋은 원료일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컨설팅을 할 때 해당 기업의 정보를 다 받더라도, 그 중에서 필요한 것만 빼내서 컨설팅을 하고 법인조정을 한다. 이렇게 하면 끝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모든 정보를 AI에게 주라는 것이다. AI는 이 많은 재료를 가지고 학습을 하고 리포트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소를 잡으면 살코기만 먹는 것이 아니다. 소머리로 제사를 지내고, 우족은 국물로 고아 먹으며, 소 혀까지 활용한다. 버릴 것이 없다. AI를 그렇게 활용하라는 것이다.
경영자는 리포트를 통해 조직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과거에는 내 영역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AI로 다른 전문영역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세무관점에서 경영 리스크를 보라는 것이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세무사가 쓰는 경영컨설팅 책이 더 인기가 있을 것이다. 세무 관점에서 기업을 보면 리스크가 더 명확해질 것이다.

☞지용구 대표는?
더존비즈온 성장전략부문 대표(부사장)를 맡고 있다. 더존비즈온의 차세대 그룹웨어인 아마란스10(Amaranth 10) 개발 및 도입을 총괄 지휘했고, 현재 AI연구소장을 겸임하며 AI 개발을 이끌고 있다. 2012년 '스마트워크 앤 스마트라이프(일과 삶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책을 출간했으며, 최근에는 'AI 시대에 돈 버는 사람' 책의 공동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