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북한산을 오르며 '북한산 산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국세청의 한 관료가 있었다. 장기간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며 철저하고 날카로운 조사통으로 통했던 인물이다. 이제 그는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다. 국세청장 하면 흔히 말수가 적고, 원칙에 엄격하며,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임광현 국세청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뜻밖에도 '스마트한 휴머니스트'에 가깝다.

북한산 산신령이 된 이유
임광현 국세청장의 걸어온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조사국장 이력이다.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4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2·4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등 잇달아 6번의 조사국장 경력은 국세청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그를 조사통으로 평가하는 가장 결정적 근거다.
그는 이 시절 주말마다 북한산에 올랐고, 이때 붙은 별명이 북한산 산신령이다. 하지만 이 별명은 단순한 취미에서 나온 게 아니다. 조사국장은 국세청 내에서도 가장 민감한 자리로 외부 접촉이나 사적 만남이 갖는 리스크가 매우 크다. 이해관계자의 접근을 피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려면 절제된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등산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가장 안전한 활동이었다.
조심해야 할 시기가 길게 이어지면서 그의 주말은 산행이라는 루틴이 자리 잡았고, 별명도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북한산 산신령은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며 스스로를 관리해 온 그의 업무 스타일을 상징하는 표현에 가깝다.
정치인 출신 첫 국세청장, 달라진 '말하기'

2022년 7월 11일, 그는 차장(고위공무원 가급, 옛 1급)으로서 명예퇴직을 했다. 그에게 이날은 후련함과 미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퇴임사에서도 납세자 소통방식을 바꾸거나, 악성 민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조용히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듯했던 그는, 2년 뒤 예상 밖의 무대인 정치권에서 다시 등장했다. 2024년 3월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4번)로 최종 낙점된 것이다. 당선 안정권 순위였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이재명 대표(현 대통령)가 직접 영입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돌 정도로 상징성이 컸다.
그는 의원 시절 가장 많은 세법개정안을 발의한 의원 중 하나였고, 국정감사에서는 오히려 국세청을 향해 꼬집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친정이라고 해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원칙형 정치인의 면모를 보인 셈이다.
사실 임 국세청장을 아는 국세청 내부 사람들은 그의 이미지 변화를 가장 흥미롭게 본다.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그는 동기들로부터 "스마트하다"는 평가를 늘 받았다. 이 말 속에는 정확하고 일 처리가 빠르다는 칭찬과 함께 차갑고 다가가기 어렵다는 뉘앙스도 있었다. 조사통 특유의 날카로움, 강단 있는 말투도 이런 이미지에 한몫했다.
하지만 2025년 7월, 국세청장으로 조직에 복귀한 뒤 그의 모습은 의외였다. 직원들은 한결같이 "말투나 쓰는 언어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직원에게 먼저 "요즘 잘 지내요?"라며 안부를 묻고, 보고를 받을 때에도 톤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공직을 떠났다가 정치인의 길을 거쳐 다시 국세청장으로 돌아온 인물은 그가 처음이다. 이 독특한 경로는 그의 소통 방식과 조직 운영 스타일을 바꿔 놓았다.
과거 국세청장은 공식 문서 외에는 말을 아끼는 게 관례에 가까웠지만, 임 국세청장은 보도자료가 나올 때마다 개인 SNS에 직접 설명 글을 올린다. 국세청 보도자료에는 드물게 그의 개인 코멘트가 따로 달린다. 유년 시절 장래희망이 'PD'였단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미디어 감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일지도 모른다.
조사통의 눈으로, 국세청을 다시 설계하다
임 국세청장의 MBTI(성격 유형 검사 지표)는 'ESTJ', 혈액형은 'A형'이다. 조직 운영에 강한 지도자형으로 불리는 ESTJ 성향에 특유의 꼼꼼함과 신중함이 강한 A형의 특징이 겹치며, 그의 리더십은 빠르게 결정하되 넓게 듣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런 성향이 작용한 탓인지, 그가 취임(2025년 7월) 직후 밝혔던 말들은 차근차근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에 머무는 '현장 세무조사'를 없애겠다고 선언한 부분이다. 이는 60년 가까이 유지된 세무조사 관행을 뒤집는 결정으로, 국세청장 스스로도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변화다.
기업에 상주하며 대면 방식으로 진행하는 조사는 납세자 부담도 크지만, 국세공무원에게도 불필요한 의혹과 리스크를 안기는 방식이다. 조사국장 출신인 그가 누구보다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또 하나 상징적인 변화로는 조직 보호 체계 강화다. 악성 민원 전담 변호팀을 만들겠다고 한 것인데, 이 약속은 그가 국세청 차장으로 퇴직하던 날 밝혔던 말과 연결된다. 조직문화를 스스로 바로 잡으려는 실천형 리더십의 반증이라고 해석된다.
임 국세청장은 세종시에서의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유독 높다. 출근 전 금강변을 조깅하고, 점심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면 청사 주변을 산책한다. 그는 "도심에서는 누릴 수 없는 여유"라며 직원들에게도 종종 "세종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강조한다.
이제 그의 시선은 'AI 국세행정'으로 향하고 있다. 임 국세청장은 세무조사부터 세금신고 지원, 체납관리까지 전 영역에 AI 기술을 적용해 국세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이를 "미래 세정의 변곡점"으로 부를 만큼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변화의 중심에는 임 국세청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