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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장, 관세청장, 세제실장, 심판원장의 추억

  • 2025.12.05(금) 08:03

[에디터 코멘트]세금을 이끈 사람들(2005~2025)

세금을 다루는 정부기관의 리더들은 크게 4명으로 압축됩니다. 국세청장, 관세청장, 조세심판원장, 그리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인데요. 이른바 '조세 4륜'이라고도 하죠. 

공직을 시작한 시기와 연령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만나서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기관별 이슈와 협업 과제, 인사교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 자체만으로도 출중한 능력과 품격을 갖춘 리더들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직접 만났던 4륜 요인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핵심 기억들을 되살려보겠습니다. 

국세청장 #은둔 #등산 #SNS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세금 분야의 끝판왕입니다. 국세청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주 운이 좋게 잠깐 마주치더라도 주변 직원들과 경호원 때문에 말 한마디 걸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커녕 기자간담회에서도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듭니다. 

과거에 뇌물을 받았다가 감옥에 간 국세청장들이 있었고, 청와대나 검찰에서 지켜보는 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인데요. 식사를 같이 하더라도 가명으로 예약하거나 식사를 마치고 동석자들을 보낸 후 한참 지나서 나오는 관행이 지금까지도 이어질 정도입니다. 

정보기관과 증권가에서 떠도는 소문도 무성했습니다.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무기명 채권을 받았다는 첩보가 있었고, 차명계좌를 통한 금품수수, 여성과의 스캔들 등 국세청장을 향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죠. 하지만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묵묵하게 뚝심으로 버텨내는 모습이었습니다. 10여년 전부터 국세청장을 둘러싼 괴소문은 사라졌고, 오래 전부터 철저한 자기관리로 준비된 인재들이 국세청장에 오르게 되면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거의 엄숙했던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과거 국세청장 관련 뉴스는 부가세 신고현장 방문이나 세무서 순시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악수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이제는 국세청장이 SNS를 통해 국세청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언론인 및 납세자와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도한 술자리 대신 직원들과 함께 등산을 다니면서 단단한 팀워크를 다져나가는 소통 행보도 인상적입니다. 

그래픽: 변혜준 기자 jjun009@

관세청장 #제복 #시계 #당구

대전청사의 관세청장 집무실은 굉장히 넓직하고 탁 트여있습니다.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직접 차를 내어주고 재떨이를 건넬 정도로 살갑게 언론을 대했고 편안하게 소통했습니다. 유독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 관세청장들이 많았는데요. 관세 분야의 부족한 경험을 인정하고 책상에 앉아있기보다는 현장을 중시하며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대부분의 관세청장들은 일처리가 스마트하고 인품이 온화했는데, 그 특징이 고스란히 업무에 나타났습니다. 혁신적인 업무의 대표적 사례로 전자통관시스템(유니패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관세청이 개발한 전자통관시스템은 행정업무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한 세계 최고의 통관 서비스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수출할 정도였죠. 따뜻한 조직 운영 사례도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용섭 관세청장이 직원 사기진작을 위해 만들었던 '이달의 관세인'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관세청장들이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는데요. 이후 검찰 출신 관세청장이 부임하면서 개혁을 추진했죠. 국세청에서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연이은 비리가 불거지자 교수 출신 국세청장이 외부에서 영입되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던 사례와 유사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네이비색 세관제복을 입고 통관 현장을 누비는 관세청장의 이미지는 위엄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제작하고 있는 관세청 손목시계뿐만 아니라 마약탐지견 마스코트 '마타' 인형도 관세청의 이미지를 한층 높여주고 있죠. 직원들과는 골프 대신 가볍게 당구를 치면서 소탈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소통 방식에서 관세청 특유의 온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세청 대전청사(사진: 택스워치)

세제실장 #바쁨 #실무 #축구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인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의 집무실은 굉장히 소박하고 아담한 크기입니다. 국장급 집무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항상 문이 열려있지만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죠. 자리에 있다면 직원들이 보고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너무 바빠서 새벽부터 나와서 업무를 시작하고 청사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일요일에 긴급 브리핑을 위해 직접 운전해서 달려오고 양복 바지의 뒷부분은 언제나 깊은 주름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세제실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국회에 가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대기하고 설명하러 다니기도 하죠. 

여름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7~8월에 세제개편안을 내놓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데요. 기자단 브리핑이나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발표하는 장면은 언론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부자감세 논란이나 연말정산 파동이 벌어지면 몇 달 동안 스트레스가 지속됩니다. 증세를 해도, 감세를 해도 고생했다는 말 보다는 비판과 지적을 더 많이 받습니다. 

그럼에도 잠시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는 돌파구가 있습니다. 바로 '축구'입니다. 세제실은 예전부터 축구에 진심이고 실력도 상당했습니다. 세제실장은 세제실 축구단의 구단주이자 감독이자 주장 역할을 했습니다. 출입기자단과 세제실 직원의 축구 경기가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축구화도 빌려주고 넘어지면 손을 잡아주는 매너가 따뜻한 친선경기였습니다. 

2008년 기획재정부 세제실과 출입기자단 축구경기 기념사진(출처: 기획재정부)

조세심판원장 #서류 #선비 #보안

양재동 캠코타워, 종로 SC제일은행, 세종청사 2동에서 1동까지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조세심판원장 집무실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방대한 서류철들이 회의용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인데요. 심판청구 사건에 관한 서류들이 쌓여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밤을 새워서 읽어봐도 끝나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또다른 서류 뭉치들이 들어오기 때문이죠. 심판원장으로 부임하고 나면 어느새 학자 또는 선비같은 얼굴로 바뀝니다. 무수한 심판사건들을 직접 살펴봐야 하고, 중요한 사건은 합동회의에서 비상임심판관들과 함께 더욱 깊이 토론해야 합니다. 

법률적으로는 다소 미약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사실관계가 있다면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해결하는 연민도 가져야 합니다. 대형 로펌이나 세무대리인들의 치밀한 주장과 국세청의 과세 논리를 놓고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운명입니다. 금액이 큰 사건이나 다국적기업의 심판청구는 더욱 까다롭고 민감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국세청의 요청과 부탁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역대 심판원장들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바로 균형과 여유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팽팽한 갈등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여유롭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유명인사의 심판청구도 꽤 많이 들어오지만 절대로 기업명이나 이름이 유출되지 않습니다.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치열한 노력이 바로 심판원을 지탱하는 원동력입니다. 갖은 외압과 풍파 속에서도 단 한 번의 비리도 없이 납세자 권익 보호라는 취지를 50년 동안 꿋꿋하게 지켜온 심판원장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겠습니다. 

조세심판원 대심판정(출처: 조세심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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