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재정에도 새 다짐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재정 상황은 녹록치 않다.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 저출산·고령화 대응, 인공지능과 미래산업 투자 등으로 재정지출 수요는 급증하는데 세입기반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역부족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22년 22.1%를 정점으로 2023년에는 19.0%로 하락하고, 올해와 내년에도 18%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5%를 넘는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세입 기반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 이처럼 낮은 조세부담률로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급증을 막기 어렵고 재정의 본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실제 재정상황에는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990~2019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1.2%였으나, 최근 5년(2020~2025년) 평균은 4.4%로 급증했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2020년 847조원에서 2025년 1302조원으로 5년 만에 455조원이나 증가했다.
경기 침체기에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일시적으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늘릴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임기 5년 내내 대규모 재정적자를 유지하겠다는 정부 방침이다. 이는 건전재정의 근간을 훼손하는 선택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는 2025년부터 5년 연속 GDP의 4% 이상 적자이며, 그 결과 국가채무(D1)는 2029년 1788.9조원으로 GDP 대비 약 58%에 달할 전망이다. 국제 비교 기준인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은 70% 내외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2065년에는 부채비율이 156.3%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이자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0%대를 넘어서면 재정위험도는 급격히 커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재정악화의 주된 원인이 지출확대보다는, 조세부담률이 과도하게 낮은 데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재정 규모(GDP 대비 일반정부 총지출)는 2023년 기준 35.2%로 OECD 평균 44.9%에 크게 못 미친다. 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지출을 억제하기보다 세입기반을 넓혀 재정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이다.
재정 수요와 국민부담 능력, 선진국 조세부담 수준 등을 종합하면 임기 중 조세부담률을 단계적으로 22% 내외까지 인상하고, 중장기적으로는 OECD 평균 수준으로 적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증세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솔직히 설명하여야 한다.

해법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
문제는 정치적 부담이다. 핵심 해법은 조세제도를 ‘넓은 세원, 낮은 세율’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세금 부담의 공평성 제고, 조세제도의 경쟁력 강화, 국민의 체감 조세부담 경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아울러 각국의 세율 인하 경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면서 건전재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다.
높은 세율은 탈세를 부추기고 근로와 투자의욕을 떨어뜨리며, 기술과 자본의 해외 이전을 촉진한다. 또한 내는 사람만 많이 내는 불공평한 세제는 조세저항을 키운다. 능력에 따라 고르게 내는 공평한 세제가 되어야 필요한 재정수입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용어는 2001년 필자가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재임 당시 중장기 세제운용의 기본방향으로 처음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2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국내외 경제환경을 보면 당시보다 오히려 과세대상은 넓히고 명목세율은 낮추는 이 원칙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비과세 감면 정비와 새로운 세원 발굴
조세의 생명은 공평성이다. 현재 우리 조세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도, 많은 국민이 세금이 무겁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는 사람만 무겁게 부담하는 불공평한 구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세제개편은 대폭적인 비과세·감면 축소와 함께 새로운 과세대상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와 같은 주요 세목의 명목세율 인상보다는 폭넓은 비과세·감면 제도의 정비를 통해 실효세율을 올리고, 새로운 세원을 발굴해 과세 대상을 넓히는 수평적 공평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2024년 국세 감면액은 약 71조원으로 감면율은 16.1%에 이른다.
원점에서 재검토해 지원 목적이 달성됐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감면은 축소·폐지해야 한다. 조세감면은 재정지출에 비해 경기 부양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앞으로 정책 수단으로서의 남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해야 OECD 국가 중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최하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세원으로는 금융투자소득세와 가상자산 과세, 설탕 과다사용세 등을 검토해야 한다. 금융투자소득과 가상자산은 근로소득·사업소득 등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과세가 불가피하다. 국회는 과거 여야 합의로 관련 법률 개정을 통과시켰으나, 2024년 말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감세 카드를 꺼내 가상자산 과세는 2년 유예되고 금융투자소득세는 시행이 무산되어 아쉽다. 또한 증권 관련 다중 과세를 선진국처럼 단일 과세체계로 정비하는 것이 국제표준에 부합하고 자본시장 선진화에도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걸면서 금융투자소득세와 가상자산 과세를 반대하지만, 이미 과세하고 있는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의 자본시장은 건실하다. 과세기준을 대폭 올려 초고액투자가에 한해 과세하면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설탕과다사용세는 이미 120여 국가에서 국민 건강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다. 반면 상속세는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도록 국제적 기준에 맞춰 높은 세율을 적정화하고 공제한도를 현실화하며, 과세방식을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재정준칙의 법제화로 건전재정의 틀을 세워야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경제위기 대응력이 약화되고, 국가신용도는 하락하며, 최악의 경우 국가부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에겐 재정건전성이 대외 충격 흡수를 위한 마지막 안전판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생명줄이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면 ‘넓은 세원 낮은 세율’구조로 개편과 함께 두 가지가 시급하다.
첫째, 재정지출의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한 강도 높은 재정지출구조 개혁이다. 둘째, 재정적자 한도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재정준칙을 법제화해야 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국가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권력은 스스로를 절제하기 어렵다.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인기위주의 정책이 반복되고, 그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에 전가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부채가 아닌 희망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것이다.
2026년 정부 세제개편은 무엇보다 건전재정의 기틀을 다지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은 재정건전성은 물론 조세 공평성과 조세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이용섭 고문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조세에 관한 정책·행정·입법·사법분야의 주요 직책을 모두 거친 세금 그랜드슬래머다. 정부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세금불복업무를 다루는 국세심판원장, 국세집행업무를 담당하는 관세청장과 국세청장, 지방세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자치부장관, 세법을 제·개정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을 거쳤다.
(주요 이력) 광주광역시장, 국회의원(18대·19대), 건설교통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국세청장,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부위원장, 청와대 혁신관리수석비서관, 관세청장,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제14회 행정고시 합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