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언급된 것이 세무조사 개혁이다. 1997년 국세청 고위직(이석희 국세청 차장)이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긁어모은 세풍 사건과 세무조사 정치적 목적·권한 남용 논란 등 국세청의 신뢰가 무너질 때마다 세무조사 개혁의 깃발이 올랐다.
그런데 최근에는 과거처럼 뚜렷한 위기 상황이 없는데도 세무조사 제도가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정치인 출신 국세청장의 취임을 계기로 이번 움직임의 배경과 의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정 인사 비리'가 촉발한 세무조사 개혁
1998년 국세청은 민간 전문가(학계·시민단체)들을 참여시켜 세무 행정의 개선책을 찾기 위한 국세행정개혁위원회를 꾸렸다. 국세청 내부 주도로 개혁안을 내면 '셀프 개혁'이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세행정개혁위가 무게를 둔 건, 그동안 권위주의적으로 비췄던 국세청을 서비스 기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세무조사도 개혁 과제에 포함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하나의 업체를 조사하면 긴 시간(1개월)이 걸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짧은 시일 내 조사가 끝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 조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이때 고질·상습적인 탈세 행위에 대한 제재도 생겼다. 일반 조사라도 탈세 사실이 고질적이거나 의도적인 경우엔 범칙조사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국세청 수장의 잇단 구속과 불명예 퇴진으로 국세청의 도덕성과 신뢰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07년에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부하 직원한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직 국세청장 신분으로 처음 구속수감됐고, 2009년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그림 로비' 사건으로 낙마했다. 한 전 청장의 경우엔 민간 전문가를 주축으로 한 국세행정개혁위(2008년)를 가동, 당시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친기업적 세정'을 표방한 세무조사 개혁 조치를 냈다. 하지만 한 전 청장 자신이 그림 로비 의혹과 고위층 주변에 인사를 청탁했다는 설에 휘말리면서 낙마해 반쪽짜리 개혁으로 남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세청 개혁이란 과제는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해결사로 등판한 건, 세무 행정 경험이 없는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2009년 7월 국세청장 취임)이었다. 당시도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해 국세행정개혁 과제를 발굴하는 국세행정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를 계기로 대기업(외형 5000억원 이상)의 정기 세무조사 주기를 4년 순환조사로 정례화하거나, 국세청 내 납세자보호관에 세무조사 견제 권한을 줬다.
"납세협력비용 줄이고, 정치 세무조사 안 하겠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세무조사 개혁은 제도보다는 개개인의 인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시의 개혁이 인적 신뢰 회복이었다면, 2010년대가 되자, 제도 개선 개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손톱 밑 가시 빼기'란 표현을 쓰면서, 기업·서민이 체감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정비하자는 기조를 세운 것이다. 국세청도 이 흐름에 따라 국세행정 규제개혁을 발표하며 세무조사 제도를 개선했다. 이때 대한상공회의소와 손잡고 협력 체계(납세불편개선 전담팀)를 짰다.
양 기관은 10대 세정 과제를 선정했고, 세무조사 분야에선 3가지를 꼽았다. ①조사 실적을 의식한 무리한 세무조사 금지 ②과도한 해명자료 요구 축소 ③조사 기간 단축 등이 개선 과제였다. 특히 해명자료 관련 개혁 과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을 땐 연간 375억원 수준의 납세협력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2017년에는 국세청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발생했다. 당시 한승희 국세청장이 '정치 세무조사'라는 과거사 앞에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의심하지만 애써 부인해 왔던 국세청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는 결단이었다.
그해 민·관 합동으로 꾸려진 국세행정개혁 태스크포스(TF)는 과거 정치적 논란이 된 총 62건의 세무조사에 대해 점검했다. 그 결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겨냥한 세무조사 등 5건의 조사에서 국세기본법상 중대한 조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국세청은 정치 세무조사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던 비정기 세무조사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2020년부턴 납세자 권익 보호 중심으로 세무조사 손질이 이뤄졌는데, 이 기간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다. 코로나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 만큼,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세무조사 1만4000건 수준까지 확 줄이겠다는 방향성을 세웠다. 최근까지도 '1만4000건 내외'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어, 사실상 세무조사 운영 기준(가이드라인)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세무조사 스마트 모니터링' 제도를 도입하거나, 비대면 중심인 간편 조사 방식으로 전환하는 부분도 주요 개혁 사례로 꼽힌다.

세무조사, '징벌→교정·안내' 무게중심 이동
신뢰 위기가 촉발한 과거 개혁과 달리, 지금은 별다른 위기 국면이 아님에도 세무조사가 손질 대상으로 떠올랐다. 정치인 출신 임광현 청장의 취임 이후 나타난 새로운 기류다.
국세청은 최근 '미래혁신 추진단(민관합동)'을 출범시켜 세무조사를 비롯한 국세행정 전반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자상한 세무조사'라는 표현이다. 세무조사에 자상하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세무조사는 납세자의 탈루 가능성을 검증하는 강제 절차다. 아무리 개선을 거듭해도 납세자 입장에서 불편과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국세청 관계자도 "현장에 장기간 체류해 납세자에게 불편을 끼친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 자상한 세무조사는 현장 조사 방식을 달리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세무조사 기조는 청장의 취임사에서 제시된 바 있다. 임광현 청장은 "단순한 신고 실수는 함께 바로잡으며, 성실히 신고하도록 안내하는 자상한 조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세무조사를 더 이상 징벌의 수단이 아닌, 성실신고를 뒷받침하는 지도형 절차로 바꾸려는 움직임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일본의 세무조사는 잘못 신고한 것이 드러나더라도 과세 대신 스스로 시정하는 식의 지도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사가 적발보다는 지도에 더 가깝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일본에서는 조세 불복이 적은 편이다. 현재 국세청이 추진하는 교정·지도 중심인 세무조사도, 조세 불복(이의신청, 심판청구 등)을 줄이려는 의도도 함께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이번 세무조사 혁신의 성패는 납세자의 체감 개선과 조세 불복 감소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위기 국면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던 세무조사 개혁이 이번에는 진정한 제도 혁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