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고액자산가의 세금 회피 의지는 생각보다 적극적이고 집요하다.
차명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분을 다시 해외신탁에 넣는다. 자산은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신탁 구조로 이전된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이중·삼중의 재산은닉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해외재산을 숨기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해외금융계좌에 이어 올해부터 해외신탁을 신고 대상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해외금융계좌는 잔액 합계가 5억원을 초과해야 신고대상이 되지만, 해외신탁은 최저 신고금액 기준이 없다. 신고 대상에 해당하는 해외신탁이라면 재산가액과 관계없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해외신탁 신고 제도의 핵심은 단순히 해외에 재산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세청은 그 재산이 어디서 나온 돈인지, 누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이전되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신고하지 않은 소득이 신탁재산으로 들어가면 소득세 문제가 발생한다. 배우자나 자녀가 수익자로 지정되면 상속세와 증여세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이임동 국세청 국제세원담당관은 최근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해외신탁은 재산은닉 방법 중 가장 진화한 형태"라며 "앞으로는 국세청이 해외신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조세회피 방지와 역외자산 양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담당관은 인터뷰를 통해 해외신탁 신고제도의 의미와 헷갈리는 신고대상 기준 판단 여부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했다.
※ 알면 쉬운 신탁 용어
-위탁자: 신탁을 설정하고 재산을 맡기는 사람.
-수탁자: 위탁자로부터 재산을 넘겨받아 신탁 목적에 따라 관리·운용하는 사람이나 기관.
-수익자: 신탁재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받거나, 나중에 신탁재산을 넘겨받을 사람.

Q. 올해부터 해외신탁이 처음으로 국세청 신고대상에 포함됐다. 실제로 해외신탁을 통한 조세회피 적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제도를 도입한 것인가?
해외신탁 신고 제도는 위탁자와 수익자가 다른 신탁의 특성을 악용해 해외신탁에 자산을 은닉하는 탈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도입됐다.
과거에는 신고하지 않은 해외재산을 신탁재산으로 편입해 소득세 신고를 누락하거나, 배우자나 자녀를 수익자로 설정해 증여세·상속세 신고를 회피하는 사례가 있었다.
실제 세무조사 진행 중 계좌 송금·수신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외신탁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국가 간 정보교환 과정에서 적발하는 경우도 있다.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지분을 신탁에 넣는 사례도 있다. 차명으로 만든 페이퍼컴퍼니에 본인의 자산을 넣어놓고, 페이퍼컴퍼니의 지분을 신탁에 넣으면 과세당국은 이를 찾아내기 어렵다. 더구나 해외에 신탁을 설정한 경우 실제 수익자나 지배자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려워 국세청이 정당한 과세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실제 금융사 PB 등이 고액자산가에게 절세라는 명목으로 해외신탁을 활용한 컨설팅을 해주기도 한다. 해외 부동산이나 금융계좌를 신탁에 넣는 사례도 있다.
해외신탁은 재산은닉 방법 중 가장 진화한 형태다. 본인 명의가 아닌, 타인의 명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이전되어 소유자 정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올해부터 국세청이 해외신탁 신고를 받으면 조세회피 방지와 역외자산 양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직접투자 및 해외부동산·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에 이어 올해 해외신탁 신고제도가 시행된 것은 국세청이 해외자산을 빈틈없이 파악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세정상 큰 의미가 있다.
Q. 해외신탁을 이용한 은닉 수법은 언제부터 나타났나? 과거부터 이런 사례가 있었다면 왜 이제야 해외신탁 신고 제도를 도입한 것인가?
이런 수법은 사실 2000년대 초반에도 일부 수출기업이 악용하고 있었다. 해외 수익이 발생하면 소득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서 보유하면서 신탁에 맡기는 것이다. 2000년대에도 이와 같은 세금 신고 누락 사례가 적발된 바 있다.
하지만 관련 제도는 한꺼번에 도입되기 어렵다. 그래서 해외에 보유한 지분을 먼저 신고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 다음에 해외부동산 신고, 2011년에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순차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해외신탁 신고는 재정경제부에 요청해서 2년 전에 법 개정이 이뤄졌고,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다. 해외신탁 외에 추가적으로 다른 내용을 신고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제도 운영 상황을 봐가면서 고민해봐야 한다.
법 개정은 재경부 소관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국세청이 해외신탁 외에 다른 것을 추가로 신고하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도 개선 사항이 있다면 재경부에 건의할 수 있다.
Q. 신탁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기도 하고, 국세청이 해외신탁을 파악하는 것이 왜 과세권 확보에 도움이 되는지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쉽게 설명해달라.
재산 은닉 사례 중 해외신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딱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외신탁은 미신고 소득이 맡겨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해외신탁에 크게 신고된 소득으로 형성한 자산이 맡겨진 경우와 신고되지 않은 소득으로 형성한 자산이 맡겨진 경우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자산가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세금이다. 신탁에 들어간 자산의 유입 경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소득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산가들의 자산은 최종적으로 자녀가 수익자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는데, 자산을 이전하면 또 상증세 문제가 생긴다.
소득 신고가 누락된 자산이 해외신탁에 포함될 경우, 소득세, 증여세, 상속세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국세청은 이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Q. 해외금융계좌는 잔액 합계가 5억원을 초과해야 신고 대상이 되지만, 해외신탁은 최저 신고금액 기준이 없다. 소액 신탁까지 모두 신고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제도 도입 전, 해외신탁도 해외금융계좌처럼 최저 신고금액 기준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해외신탁은 주로 고액자산가들이 자산운용이나 상속·증여 목적으로 설정하다 보니, 재산가액이 크고 종류도 다양하고 구조도 복잡하다.
이러한 신탁의 특성을 반영해 해외신탁 신고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신고대상 해외신탁의 범위를 넓게 하고 최저 신고금액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
해외신탁재산가액과 관계없이 다양한 형태의 해외신탁이 신고되면 국세청이 해외신탁의 종류와 구조 등을 폭넓게 파악할 수 있으며, 향후 제도 집행 및 보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Q. 해외금융계좌와 달리 해외신탁 신고는 본인이 신고 대상인지 많이 헷갈릴 것 같다. 더구나 미술품, 가상자산, 귀금속, 비상장주식 등을 신탁에 맡겼을 경우 어떻게 평가하는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납세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신탁이 신고대상인지 판단하는 것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고대상 해외신탁의 정의에 따라 신탁계약이나 신탁증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세청뿐만 아니라 납세자들도 신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세법상 신고 대상 해외신탁은 외국의 법령에 따른 신탁 중 우리나라 신탁법에 따른 신탁과 유사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 가족신탁을 설정했거나 해외부동산·가상자산을 해외신탁에 이전한 경우 등 그 형태나 신탁재산의 종류와 관계없이 해당 신탁이 우리나라 신탁법상 신탁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모두 신고대상이 된다.
가액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법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는 시가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가격이 있다면 그 시가대로 하면 된다. 시가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취득가액으로 신고하면 된다.
Q. 2024년 이전에 이미 해외신탁을 설정한 경우에도 '실질적 지배·통제'를 한다면 신고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2024년 이전에 설정한 신탁을 올해 신고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세법에서 '실질적 지배·통제'의 예를 들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세법에 따르면 위탁자가 해외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는 경우란 위탁자가 해외신탁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 수익자를 지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권리 또는 해외신탁 종료 후 잔여재산을 귀속받을 권리를 보유하는 등의 경우를 말한다.
위탁자가 신탁재산의 운용 및 투자방법에 대한 지정 권한을 보유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해외신탁을 지배·통제하는 경우에도 매년 해외신탁 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실질적 지배·통제 여부를 판단할 때는 신탁계약이나 신탁증서의 구체적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익자를 지정하거나 신탁 운영 방법을 결정할 권한, 신탁 해지권 등을 가지고 있으면 실질적으로 신탁을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신탁증서를 보면 위탁자와 수익자, 수탁자 등 세 주체가 등장한다. 신탁증서에는 이 주체들의 권한과 역할이 규정돼 있다. 어떤 조건이 만족됐을 때, 그 자산이 수익자에게 가도록 하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면 실질적으로 신탁을 지배하는 것이다.
또 신탁재산을 채권, 부동산, 주식 중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할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Q. 예를 들어 고액자산가가 배우자 명의로 해외신탁을 설정했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본인이 하는 경우, 이 신탁의 실질적인 지배는 본인이라고 판단하면 되는 것인가?
그런 경우에는 명의자인 배우자가 아니라 내가 실질적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본인이 거액의 자산을 신탁에 맡겼다고 한다면, 위탁자가 권한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신탁의 수익을 자녀에게 주거나, 이 돈은 채권에 투자하라는 등의 결정을 하는 것은 보통 위탁자가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선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Q. 해외신탁 신고 제도 시행으로 국세청은 기존 해외금융계좌 신고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어떤 정보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나? 첫 신고 이후 미신고 혐의는 어떤 방식으로 검증할 계획인가?
기존 해외금융계좌 신고만으로는 국세청이 해외신탁에 은닉된 부동산이나 귀금속·미술품 같은 실물자산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국세청이 이러한 자산의 내역과 신탁의 실제 수익자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해외신탁을 이용한 조세회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세청은 신고기간 이후에 국가 간 금융정보 교환자료, 외환자료, 현장 정보자료 등을 바탕으로 해외신탁 미신고 혐의자를 철저하게 분석해 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올해 초부터 제도 설명회를 개최하고 안내책자를 발간할 뿐만 아니라 납세자에게 개별 안내문을 발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성실신고를 안내해 온 만큼, 적발된 해외신탁 미신고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탈루된 세금을 추징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