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오디오클립
  • 검색

"원조교제보다 나쁘다"…고액체납자 압박 20년 변천사

  • 2025.06.27(금) 07:30

명단공개부터 감치까지…체납정리 관련 제도는?

"악의적인 체납이 원조교제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는 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는 2003년 9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지적한 것입니다. 여야 의원들은 악의적으로 세금을 체납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오늘날의 명단공개 제도의 시작이 됐습니다.

명단공개 제도는 개인정보와 인권 보호라는 가치가 우선인지, 고의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체납자에 대한 처분이 우선인지를 선택하는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국세기본법(81조의 8, 납세자 비밀유지의무)에는 납세자의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는데요. 그래서 그동안 체납자의 명단은 공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03년 9월 국정감사 이후, 국세청 세정혁신추진위원회 회의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는데요. 기존에는 비교대상이 아니었던 체납자 인권 보호와 체납 근절이라는 공익적 목표를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저울질한 것이죠.

회의에서는 악성 체납자 정보가 계속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컸고, 당시 이용섭 국세청장이 명단 공개를 수용하면서 법 개정(2003년 12월)이 이뤄졌습니다. 

명단공개가 결정된 데는, 국민적 공감대도 한몫했습니다. 당시 국세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2426명 중 91%인 2217명이 명단공개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렇다고, 파산 등 부득이하게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철퇴를 가할 수는 없었는데요. 그래서 모든 체납자가 공개 대상이 아닌, '납부기한이 2년 이상 지난 세금 체납액이 10억원 이상'인 체납자로만 제한했습니다. 

고액체납자 이 사람들입니다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이 외부에 처음 공개된 것은 2004년 10월입니다. 개인은 518명·법인 583개사로, 이들이 내지 않은 체납 총액은 4조6881억원이었습니다. 

세금을 가장 많이 체납한 사람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1507억원)이며, 법인 중에서는 한보가 825억7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처음 시행하는 명단공개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면서 밀린 세금을 모두 납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1506명(법인 포함)의 명단과 직업 등의 신상 명세가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1101명의 명단만 공개됐습니다.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 공개가 이뤄지자 여론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기사 댓글 등에서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는데요. "신상 공개로는 부족하다, 사진 공개를 해서 톡톡히 망신을 줘야 한다", "공개만 할 게 아니라 감옥에 보내야 한다" 등 강한 요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 공개의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명단공개 대상자가 2005년 2135명에서 2006년 2636명, 2007년 3046명으로 늘어났던 것이죠.

이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기존 명단공개 대상자가 지속적으로 포함되면서 나타난 통계 착시라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었습니다. 논란을 없애기 위해 국세청은 2008년부터 신규 공개자만 현황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명단공개 대상 범위는 2010년 '납기 2년 이상 지난 국세 체납액 7억원 이상'으로 확대됐고, 여러 차례 기준금액이 낮아지면서 현재는 '1년 경과 2억원 이상'이 대상이 됐습니다. 국세청은 체납자의 성명, 상호(법인명), 나이, 직업, 주소, 체납액의 세목·납부 기한과 체납 요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명단이 공개된 고액·상습 체납자는 9666명(체납 총액 6조1896억원)으로, 이 명단에는 유명 연예인 개그맨 이혁재(체납액 2억원)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명단에 오른 연예인들은 꽤 많았는데요. 몇몇은 대중의 뭇매를 맞고 연예계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2014년부터 '연간 5억원 이상의 조세를 포탈해 조세포탈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도 신상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2012년 국세기본법 개정에 따른 것으로, 2012년 7월 이후부터 2014년 6월까지 유죄 확정 판결문을 받은 2명이 공개대상자가 됐습니다. 현재 공개대상 기준금액은 '연간 포탈세액 2억원 이상'까지 낮아졌습니다. 

"체납자는 해외로 못 나갑니다"(출국금지)

고액체납자는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로 해외여행이나 업무 출장에 큰 제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국 규제가 생긴 것은 1973년 '체납세 정리 준칙'이 제정된 이후입니다. 2010년에 국세징수법에 규정됐고, 2011년 9월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5000만원 이상 체납한 사람에 대해 출국을 제한합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청 50년사(1966년~2015년)에 따르면 1974년부터 2015년까지 1만7881명에게 출국 규제 조치가 적용됐습니다. 

지난해 출국금지를 당한 체납자는 3831명입니다. 체납액 기준으로는 2억원 이상(1136명) 체납자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10억원 이상(1124명)이었습니다.

"체납하면 감옥갑니다"(감치제도)

재산이 있으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틴 체납자들은 구치소에 수용될 수 있는데요. 

2019년 12월 개정된 국세징수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국세와 관세를 합쳐 '2억원 이상의 세금을 3회 이상, 1년 이상 체납'한 사람을 최대 30일간 유치장에 감치하도록 했습니다.

감치는 체납 세금의 납부를 강제시키기 위한 제재로, 전과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치됐다고 해서 납부 의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며, 감치됐더라도 체납 세액을 납부하면 즉시 석방됩니다. 

개정법 시행으로부터 1년이 지난 2021년 1월부터 체납자 감치가 가능해졌으나, 구치소에 간 체납자는 한동안 없었습니다. 

첫 사례가 나온 것은 2021년 9월로, 체납자 3명(체납액 48억원)이 감치 결정을 받았습니다. 당초 감치 대상자에는 4명이었는데, 이 중 한 명이 체납 세금을 모두 납부하며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2024년 말 현재, 국세 누계 체납액은 11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이 중 '정리 보류'된 체납액은 전체의 82.5%(91조4000억원)를 차지합니다. 정리 보류는 체납자의 재산이 없거나 소재가 불분명해 국세청이 징수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상 징수가 어려운 체납액이죠.

국세청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를 활용한 탈세 추적 시스템을 고도화해 세금 징수 성과를 높일 방침인데요. 국세청은 이 시스템으로 연간 최소 1조원 이상의 추가 세수를 거둘 수 있다는 전망을 했습니다.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