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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판에서 AI까지…국세행정시스템 어떻게 변해왔나

  • 2024.10.10(목) 07:00

# 1997년 1월 6일, 서울 양평동에 터를 잡은 국세청 전산실에서 국세통합시스템(TIS) 개통식이 열렸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납세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980년부터 수기로 하던 국세업무를 조금씩 전산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지만 주먹구구식이었다. 이 시기부터 개인과 법인의 세원, 과거 세금신고 내역, 세무조사 대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 국세청 전체를 아우르는 획기적인 전산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탄생한 것이 TIS다. TIS를 손수 가동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던 임채주 전 국세청장은 회고담에서 "TIS 개통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주판' 튕기던 국세공무원들

1966년 6월, 국세청 개청 3개월 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내린 지시는 '세수 700억원 달성'이다.

이 시기 국세공무원의 무기이자 두뇌가 된 것은 '주판'으로, 집집마다 방문해 주판알을 튕기며 세금을 걷는 국세공무원의 모습은 흔했다.

스마트폰으로 고지서를 받고, 세금을 납부하는 현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주판으로 세금을 계산하고 현금으로 돈을 받는 모습은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주판은 세수 7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국세청 개청 당시에는 대부분의 납세자가 기장을 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납세자가 얼마를 벌었을 것이라고 예상해 과세하는 '추계 과세'를 할 수밖에 없었고, 납세자의 반발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납세자와 과세당국의 마찰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에 국세청은 어떻게 하면 납세자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지 고심했고, 소득자료에 따라 과세하면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과세자료에 의한 근거 과세'를 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자료'였다. 일선 세무서의 서류함에는 종이로 된 과세자료가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한정된 시간과 제한된 인력으로 일일이 과세자료를 들춰본 뒤 세금을 계산하고 고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필요한 자료를 때에 맞춰 찾아내 활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납세자 수가 늘어나는 것도 국세청의 골칫거리였다.

1965년 450만건에 불과했던 과세자료의 양은 1969년 1560만건으로 3.5배나 급증했다. 불과 4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에 국세청에서는 '자료 전산 처리'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결국 컴퓨터를 이용한 자료처리시스템(ADP)이 도입됐다.

이 시기에 도입된 전산시스템은 1975년과 1977년에 각각 시행된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도입의 기틀이 된 것은 물론 자료 전산화로 징수 업무가 투명해지는 효과까지 생겼다.

1986년에 인별 징수부·체납액 정리부 등을 출력해서 세무서에 하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1987년부터는 서울 소재 세무서에 PC를 설치해 납세고지서 등을 발급했다. 이 때 사업자등록증의 전산 발급도 이뤄졌다.

1990년대 들어선 세무조사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장부를 전산화한 법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장부 조사 외에 전산 조사를 하기 위한 조직(본청 조사국 전산조사과)이 탄생했다. 

1966년 당시 세무조사요원들이 가지고 다니던 가방. 연필 등 각종 필기도구와 당시 '필수품'이었던 주판이 보인다. '황금 보기를 돌과 같이 하라'는 의미의 見金如石(견금여석) 문구는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작성한 것을 복사해 부착한 것으로 세무조사요원들이 청렴한 자세로 업무를 수행하라는 의미였다. [제공: 국세청]

전 세무관서,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어서 단계적으로 실시를 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때 마침 금융실명제 실시로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를 해야 하는 점을 들어 대통령을 설득해 사업을 성사시켰다.(추경석 국세청장 회고담)"

문민정부 시절, 국세청이 가진 무기는 업그레이드됐다. 1997년 당시 시행한 금융실명제에 발맞춰 TIS가 도입됐다. TIS는 현재 국세행정시스템인 NTIS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IS 도입으로 국세청의 전 세무관서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되고, 방대한 양의 과세자료 처리가 가능해졌다. TIS가 개통되면서 세목별로 분류돼 있던 일선 세무서의 조직을 기능별로 전환하는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전자세정의 새로운 기틀이 마련된 건 2002년부터다. 국세청은 이 시기에 '홈택스'를 선보였고, 인터넷을 통한 납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종전까진 납세자가 세금신고서를 작성해 세무서를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했지만, 홈택스가 도입되면서 간접세(부가가치세 등)에 대한 전자신고가 가능해진 것이다. 2004년부터는 법인세·종합소득세까지 전자신고 가능 세목 범위가 넓어졌다. 

홈택스 서비스 등 전산시스템을 바탕으로 국세청은 2005년 현금영수증 도입을 할 수 있었다. 2004년 자영업자의 소득포착률은 62%였다. 자영업자가 100만원을 벌었다면, 이 중 62만원만 신고하고 38만원에 대해선 탈세한다는 의미다.

이는 '유리지갑'으로 불리우는 직장인을 비롯한 다른 납세자 입장에서는 성실납세에 대한 의욕을 꺾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에 국세청은 공평과세와 성실납세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전자시스템을 십분 활용해 자영업자의 소득을 양성화하려고 애쓴 것이다.

실제 현금영수증 제도 도입 첫 해인 2005년 자영업자의 소득포착 비율은 75%로 1년 만에 13%포인트나 올랐다.

이후 국세청은 사업자에 대한 정확한 소득 파악을 위해 2010년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으로 부가세 탈루를 예방하는 효과와 더불어 사업자 간 정확한 거래 규모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사이버 세무서' 시대 열어

잘 나가던 TIS도 세월 앞에서는 버티기 어려웠다. 개통한 지 10년이 지난 TIS는 급변하는 환경과 갈수록 높아지는 납세자의 요구 수준을 충족시키기 버거웠다.

이에 국세청은 2010년 8월 전산시스템을 전면 손질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202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국세통합시스템을 기존 TIS에서 NTIS로 바꿨다. 

이를 통해 기존에 개별적으로 운영됐던 홈택스·현금영수증·전자세금계산서·연말정산간소화·근로장려세제·공익법인공시·국세법령정보·고객만족센터(현 국세상담센터) 8개 사이트가 통합됐고, 각각 사용자 인증을 해야 했던 불편함이 사라졌다.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수정신고·경정청구·기한 후 신고가 전자신고로 가능해졌고, 신고서류·증빙서류 등을 PDF 파일 형태로 온라인 제출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굉장히 편리한 NTIS이지만, 개통했던 2015년 2월 3일에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저사양의 PC를 보유한 납세자를 중심으로 홈택스에 로그인이 되지 않거나, 인터넷 환경설정 문제로 전자세금계산서 발급이 지연됐다. 

이듬해 1월 25일은 전국의 세무·회계사무소 직원들에겐 악몽 같은 날로 기억된다.

부가세 신고 기한 마지막 날 밤, 국세청 홈택스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몇 시간이 지나면 신고불성실가산세 등 패널티가 부과되는 상황이었다. 밤 11시를 조금 넘기고 나서야 신고 기한을 연장한다는 국세청의 공지가 발표됐다.

전산시스템의 먹통은 NTIS와 세무·회계사무소에서 사용하는 외부 프로그램과의 연동에 문제로 밝혀졌는데, 당시 국세청이 신고기한 연장 여부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세무대리인과 납세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AI가 상담해주고, 조사대상자도 고른다 

2016년 3월, 구글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벌인 대국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세상에 큰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2년에는 '챗 GPT'가 등장하면서 간단한 질문으로 훌륭한 답을 얻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그야말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장으로 국세행정에 AI를 활용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 됐다. 

디지털 국세행정의 대표격을 꼽자면 이른바 'AI 국세상담관'이다. 

국세상담의 낮은 통화성공률은 납세자의 울화통을 터지게 만들 뿐더러, 국세공무원에게도 크나큰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종소세 신고나 연말정산 시기 등 특정 시기에 납세자들의 상담전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종소세 신고 기간 통화성공률은 24%에 불과했다.

이에 국세청이 국세상담센터에 AI 도입을 적극 검토해 올해 종소세 신고 기간에 시범 실시한 것이다. AI 상담원은 납세자가 국세상담센터에 전화를 걸면, 단순 안내에 대해 먼저 대답해준 뒤 복잡한 내용에 대해선 실제 상담원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응대한다.

올해 종소세 신고 기간 때 AI 서비스로 진행한 통화 성공률은 98%다. AI 상담이 도입되기 전의 통화 성공률과 비교하면 무려 74%포인트나 올랐다.

다만 생성형 AI 기술이 아닌 시나리오 대화형 기반이란 점에서 질문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대답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국세청은 지속적인 AI 학습을 통해 더욱 정확한 답변을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국세상담 외에 세무조사 대상 선정 등 다른 분야로 AI 활용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달 국세청이 발표한 '국세행정 운영방안'엔 AI가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①내년에 착수되는 정기조사로 ②법인사업자가 대상이 되며 ③AI가 조사 대상의 절반을 선정한다. 일반적으로 정기조사 선정 주기는 5년으로, 연간 수입금액 2000억원 이상인 법인사업자가 조사 대상이 된다.

AI는 법인사업자의 신고 내용과 그간 축적된 세무조사 실적을 '텍스트 마이닝(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분석 기법)'하고, 이를 학습해 탈세 가능성이 높은 사업자를 찾아내 조사대상으로 선정한다. 

이제는 AI가 성실 신고자와 불성실 신고자를 선별해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작업을 구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밖에 국세청은 3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더 똑똑한 홈택스를 만들 계획이며, 이런 고도화 사업 가운데 핵심은 AI 기술을 홈택스에 접목해 납세자의 신고를 돕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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