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이명구 관세청장의 취임식 직전 정부대전청사 기자실에서 만난 이 청장의 첫 이미지는 날카로웠다. 전형적인 엘리트, 관세 한 길을 걸어온 딱딱한 공직자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좀 달랐다. 관세청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는 답변들이 기자들과의 첫 만남에서 이어졌다.
관세청장으로서의 역할과 과제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결은 무엇인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이유다.

"사람을 이해하라" 앞서갔던 MBTI 교육
이명구 청장의 MBTI는 ENFP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활동가'로 해석되는 유형이다. 흔히 공직자들은 ISTJ가 많은데, ISTJ가 '안정된 삶을 위해 기여하는 현실주의자'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 청장 역시 주변에서 ENFP 유형을 잘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MBTI에 맞춰 이 청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람을 좋아하고, 기존 시스템에 적응하기보다는 변화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MBTI와 관련한 이 청장의 또 다른 일화도 있다. 2019년 서울본부세관장을 역임할 당시, MBTI가 국내에서 크게 유행할 거라고 예상해 세관 전 직원이 들을 수 있도록 MBTI 강사를 섭외해 강의를 진행했다. 이 청장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사실 조사·심사 직원이 업무 중 만나는 사람 성향을 파악할 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추진한 건데, 막상 해당 직원들은 현장에 나가있다 보니 대부분 못 들었다더라"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청장의 혈액형 역시 활동적인 B형이다. 그는 본청 기획재정담당관을 맡으면서 처음엔 '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겠나' 싶었지만, 기업 지원 파트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생각보다 즐거웠다고 말했다. 관세공무원 길을 선택한 뒤 기획해서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계획에 없던 일들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고 오히려 재미를 느꼈으며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변화를 즐기는 긍정주의자'인 그의 성향과 맞아떨어졌던 업무 형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는 다시 가도, 고등학교 때로는…
하얀 얼굴에 단정한 인상과는 달리, 이 청장은 어린 시절 경남 밀양의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가 살던 마을은 서른 가구 남짓한 곳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까지 왕복 20리, 거리로는 약 8km 길을 늘 걸어 다녔다고 했다.
걷는 것 자체는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기 때문에 별로 힘든 생각을 못했지만,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배고픔이었다고 한다. 특히 토요일엔 도시락 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가는 길에 가게들이 있긴 했지만 돈이 없어 사 먹을 수는 없었다. 대신 강가로 내려가 물을 마시고, 찔레꽃이나 잔디처럼 보이는 풀을 조금씩 뜯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이 청장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시내로 나와 조그만 방 한 칸을 빌려 살았다. '한겨울엔 밖보다 안이 더 추웠다'고 회상하면서, 그 방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엔 방을 데우기 위해 연탄을 땠는데, 새벽마다 일어나 연탄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가스 중독으로 목숨이 위험한 일이 잦았다. 실제로 주변에 그런 일을 겪은 친구도 있어 겨울 내내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며 지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자 이 청장은 "군대는 다시 가라면 가겠는데, 고등학교 때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쉽지 않은 성장기를 지나온 경험이 지금의 변화와 활동을 즐기는 사람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현재의 성향을 다시 설명하는 장면처럼 들렸다.

정부 기관 슬로건 최초로 AI를 넣다
지난 9월, 관세청의 비전선포식이 있던 날 서울세관에서 이 청장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의 혁신 의지는 돋보였다. 통관과 경제안보 수사를 담당하는 관세청의 미래 AI가 어떻게 발전할지 알고 싶었고, 마침 그날 관세청이 선포한 비전은 'AI로 공정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이었다.
당시 인터뷰에도 언급했듯이, 정부 기관의 슬로건에 'AI' 문구를 넣은 것은 관세청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새로웠지만, 과연 청사진 그대로 진행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막막한 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이 청장의 성격과 맞물려 관세청의 AI 도입 속도는 세금 3대 기관 중에서도 가장 빠른 편이다.
이 청장의 업무 스타일을 잘 아는 한 관세청 관계자는 "요즘 청장님이 관세행정에 AI를 접목할 수 있는 다른 분야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질문을 많이 하신다"며 "실무 도입 방안을 구체적으로 물으셔서 예정된 회의 시간보다 길어질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청장의 AI 관심에 따라 관세청은 최근 AI혁신팀을 갖추고 자체 AI 모델 개발 경험을 기반으로 관세행정 AI 도입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스마트한 관세행정 구현을 위한 조직적 드라이브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태도·인격은 업무 지식을 담는 그릇
이 청장이 후배들에게 가장 자주 강조하는 건 '인격적인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관세·국세·지방세 같은 업무 지식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인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조직과 현장 어디에서도 의미가 없다는 믿음이다. 온유·진실·겸손, 세 가지 단어를 특히 강조한 그는 그 반대인 혈기와 거짓, 교만한 사람은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릇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담겨도 오래 가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을 뽑거나 추천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가장 먼저 보는 기준은 능력보다 태도다. 당장의 성과만 내는 용병형 인재는 길게 보면 조직을 성장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다.
결국 그의 리더십은 단순하다. 지식과 성과는 따라오게 되어 있지만, 태도와 인격은 끝까지 남는다는 신념이다. 쉽지 않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자유로운 변화를 즐기게 된 이 청장의 행보가 그 신념의 바탕이자, 그를 설명하는 한 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