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을 마련을 위해 계약서를 쓰는 순간, '자금조달계획서'까지 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내 돈 주고 내가 집 사는데, 왜 돈 출처를 따지지?"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런데 이 계획서를 대충 쓰거나 거짓으로 썼다가는 국세청 세무조사 타깃이 될 수 있다. 막연한 걱정이 아니다.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후속 조치로 국세청의 자금 검증의 강도가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금출처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과세 잣대인 자금조달계획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렇다면 자금조달계획서를 누가 내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세무 리스크가 발생하는지 살펴봤다.
집 살 때 '출처'가 더 중요해졌다

직업(소득)이 없는 어린 자녀가 갑자기 고가의 주택을 취득했다면, 이른바 '부모 찬스'로 편법 증여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주택을 살 때 자금이 어디서 났는지 출처를 밝히기 위해 도입된 것이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제도다.
규제 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곳이라면, 거래가격과 상관없이 주택 매매계약 당사자는 자금조달계획서를 관할 지자체에 제출(계약체결 후 30일 이내)해야 한다. 부동산 규제가 빈번한 서울로 보자. 올해 10월 15일까지는 4개 자치구(강남·서초·송파·용산)만 해당했는데, 같은 달 16일부터는 서울 전역의 주택 거래가 신고 대상이 됐다. 비규제 지역에서도 6억원을 넘는 집을 사면 신고 의무를 짊어진다.
규제 지역에서는 자금조달 항목별로 증빙자료를 함께 내야 한다. 주택자금 출처가 금융기관 예금액이면 예금잔액증명서를, 증여·상속액이면 증여·상속세 신고서와 납세증명서를 첨부해야 하는 것이다.
국세청은 그동안 한 달 주기로 자금조달계획서 전산 정보를 받았지만, 이제는 이를 실시간으로 받아 거래 즉시 분석하는 구조로 바꿨다. 자금의 출처를 사후가 아닌 거래 시점에서 곧바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상시 감시 체제에 들어간 셈이다.
자금조달계획서 한 장이 세무조사를 정한다
자금조달계획서를 내지 않거나, 허위·부실하게 쓰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세무조사다. '증여추정' 혐의로 국세청에 통보되면서 세무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법(45조)에서도 '소득 대비 재산취득가액이 클 경우 조사 대상자로 선정된다'고 명확하게 기재됐다.
실제로 국세청은 매년 수천 건의 부동산 거래를 들여다보고 있다. 주택 거래량이 많은 서울 지역이 세무조사 타깃이 되기 쉽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거래 관련 조사는 3719건이었고, 이 가운데 39%(1457건)가 서울지방국세청 관할에서 이뤄졌다. 그다음은 중부청(659건)·부산청(475건)·인천청(375건)·광주청(258건) 순이었다.
유형별로 보면 자금출처조사는 전체 부동산 거래 조사 건수의 약 9%(338건)를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은 대체로 10% 안팎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부동산 세무조사에서 자금 출처가 여전히 핵심 감시 대상이라는 걸 보여준다.

# 30대 사회초년생 A씨는 서울의 수십억원대 아파트를 샀다. 자금조달계획서에는 "기존 보유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자금"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세무조사 대상에 올랐다. 기존 아파트를 분양받을 당시 A씨는 소득·재산이 거의 없는 20대였고, 자금 출처가 애초에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분양 대금 전액을 어머니에게서 현금 증여받고도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국세청이 자금조달계획서를 활용한 추징사례다. 지난달에 자금조달계획서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으며 "개인 간 채무 등을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가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10·15 대책 이후 자금조달계획서의 실시간 분석체계가 가동되면서, '부모 찬스' 거래나 불투명한 가족 간 자금 이동이 우선 검증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세청이 주로 문제 삼는 유형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①앞선 사례처럼 소득·재산에 비해 과도한 고가주택을 취득했거나 ②증빙 없는 가족 간 '빌린 돈' ③법인·차명 계좌를 활용한 우회 자금 등이다. ④부담부증여(재산을 증여할 때 채무까지 함께 넘기는 것)를 한 뒤 담보대출 원리금이나 전세보증금을 부모가 대신 갚아주는 경우도 국세청이 주로 보는 패턴 중 하나다.
집값 20%까진 증여세 안 내도 된다?
일반적으로 과세 시 입증책임은 국세청에 있는데, 증여추정은 납세자에 입증책임을 지운다. 이때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부분을 모두 증여로 본다면 권리 침해로 볼 여지가 크다. 납세자로서도 과거 소득이나 지출 등을 따져 출처를 100% 증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세법에서는 너무 사소한 금액까지 증여로 의심하지 않겠다는 기준을 두고 있다.
상증세법 시행령(34조)에 따라 '입증되지 않은 금액이 취득가액(또는 상환액)의 20% 또는 2억원 중 적은 금액에 미달'했을 때 증여추정을 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0억원짜리 주택이라면 8억원까지만 출처를 입증해도 된다는 의미다.
국세청의 내부 업무처리 규정(훈령)을 보면, 연령대별로 증여추정 배제 기준이 따로 있다. 취득재산이 주택이라면 30세 미만은 5000만원, 30세 이상은 1억5000만원, 40세 이상은 3억원이다. 10년 이내 주택취득액 합계액이 이 금액을 넘지 않으면 증여추정 배제 대상이 된다.

45세 납세자가 5억원짜리 주택을 취득했다고 치자. 일단 증여추정 배제 기준(3억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된다. 출처를 3억원만 소명했다면 어떨까. 미입증 금액(2억원)이 취득가액의 20%(1억원)보다 크기 때문에, 2억원에 대해 추정 과세를 한다. 증여추정은 증여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만큼, 증여공제도 3000만원으로 따라 적용받는다.
많은 납세자가 증여추정 배제 기준을 증여세 면세 한도로 오해하고 있다. 40세 이상이 3억원 이하의 주택을 샀다고 해서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증여추정 배제는 증여로 먼저 추정하지 않을 뿐"이라며 "실제 증여 사실이 확인되면 배제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증여세는 과세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정력의 한계로 모든 사례를 다 추적·과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시각이 짙다.
이정근 세무사(세무법인 엑스퍼트 논현지점 대표)는 "배제 기준 자체가 워낙 낮다. 이 범위에 있는 증여 행위라면 사실 리스크가 없다고 본다"며 "국세청이 강조하는 고가주택(30억원 이상), 연소자, 신고가, 재건축·재개발 이 키워드가 자금출처조사 주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