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 행위입니다. 체납을 하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 등의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재산을 은닉하고 세금 납부를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체납이 발생하면 국세공무원은 이를 징수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합니다. 이를 '체납정리'라고 합니다.
체납정리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납세자의 재산을 찾아내 체납액을 징수하거나, 여력이 없어 징수가 불가능한 경우 정리보류 또는 결손처분을 합니다.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국세공무원이 고액 체납자의 집 앞에서 잠복하거나 강제로 문을 열어 숨겨둔 금괴, 명품 가방, 돈다발 등을 찾아내는 장면이 많이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실제 국세공무원이 현장에 나가면 일부러 재산을 은닉하는 악의적인 체납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형편에 세금을 내지 못해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고 하는데요.
국세공무원이 들려준 체납정리 에피소드를 시작합니다.

#. 다 쓰러져 가는 집과 택시기사
몇 차례 독촉에도 세금을 내지 않던 체납자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강제징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체납자는 택시 운전을 하고 있지만 벌이가 적어 세금을 납부하기 어렵다고 사정했지만, 제 입장에서는 법에 따라 체납처분을 하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벌이가 없어도 직업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체납액을 납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찾아간 집에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벽에는 새카만 곰팡이가 피어있고, 찬바람이 창문 틈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체납자의 연로하신 어머니가 누워계셨던 것이죠.
그 장면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졌고, 결국 체납처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강제징수하다가 찾아낸 토지보상금
이분은 하던 사업이 망해 세금을 체납했어요. 체납액을 낼 재산도 능력도 없었죠. 하지만 이런 사연을 가진 체납자가 한 둘도 아니고 체납처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제징수 절차를 밟던 도중,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체납자가 몰랐던 토지보상금을 발견한 것이죠. 토지보상금을 징수하려면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했는데요.
체납자가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체납자는 "세금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는데, 토지보상금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흔쾌히 동의를 해줬습니다.
#. 거래처 대금 대신 받아준 국세공무원
공장을 운영하는 체납자는 수입이 없다면서 세금을 내지 않고 있었는데요. 사정을 들어 보니, 이 체납자는 거래처에 납품한 물건 대금을 1년 가까이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거래처에서는 물건 품질에 하자가 있다며 1년이 넘도록 대금을 결제하지 않는 악성 거래처였습니다.
이 거래처의 재무 상태를 살펴보니,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해당 거래처를 찾아가 대금을 달라고 따질까 고민했습니다. 국세공무원이 권한을 남용한다고 할까 걱정돼 많은 고민을 했지만, 국세청 입장에서는 권한이 충분했습니다.
체납한 세금을 강제징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체납처분을 하기 위해 해당 거래처로 찾아가 대금을 지급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해당 거래처는 1년을 질질 끌며 주지 않던 대금을 세무서 계좌로 보냈는데요. 이 대금은 체납세액으로 충당했습니다.
#. 바지사장의 억울한 사연
사업 실패로 체납하게 되는 것은 흔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강제처분을 하던 중 체납자가 명의만 빌려줬을뿐, 실제 사업자가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실사업자가 타인에게 세금 문제는 없다고 안심시키며 명의를 빌린 것이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체납자가 자신이 실제 사업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했는데요.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해당 체납자는 회사로부터 받은 소득(이익)이 없어서 이를 증명하기 비교적 쉬웠고, 결국 실사업자에게 체납 책임이 넘어갔습니다.
#. 체납자 차 끌고왔다가 과장님께 혼난 사연
강제징수를 할 때 자동차 등의 자산은 점유하지 않으면 이를 처분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체납자의 사업장에 찾아갔는데요. 체납에게 본인의 차량인 에쿠스의 차키를 받아 세무서로 끌고 왔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체납처분을 했다는 것이 뿌듯했지만, 당시 과장님은 "이 차가 몇 달 동안 세무서 주차장에 묵혀있으면 책임질거야?"라고 혼을 냈습니다.
당시 세무서는 주차장이 협소해 딱 한 대만 주차할 수 있었는데, 자칫하다가 차량이 훼손되면 그 책임을 우리가 져야 했습니다. 과장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하셨겠죠.
하지만 이미 차량을 끌고 온 상황이라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주차된 세무서장님 차를 빼고 압류한 차량을 세워놨습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바로 공매를 진행했습니다. 세무서에 차를 보러오는 사람이 많았는데요. 에쿠스 차량은 1200만원에 팔렸고, 1순위인 지방세를 제한 후 국세 900만원을 충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