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내연녀, 사실혼 등 아침드라마에 나올 법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는 세금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상속세'입니다.
상속세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발생하는 세금입니다. 가족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을 위해 유산을 남긴 망인의 뜻을 기리고 애도하는 것이 도리인데요.
하지만 국세공무원이나 세무대리인 모두가 하나같이 하는 말은, 상속개시가 되는 순간 가족들이 상처를 주며 싸우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차라리 내가 더 받겠다는 싸움이면 낫다고 하는데요.
가족들이 가장 상처를 받는 일은 피상속인(망인)의 '외도'입니다. 내연관계에 있던 불륜 상대방에게 거액을 증여한 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그에 대한 상속세 부담은 모두 가족이 짊어지게 되는데요.
피상속인의 외도를 몰랐던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세 조사 과정에서 충격을 받는 것은 물론, 거액의 세금 부담까지 떠안게 되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죠.

택스워치는 오래 전부터 조세심판원의 결정문을 재구성한 '절세극장'을 연재하고 있는데요. 심판원의 결정문이라면 수준 있는 내용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상속·증여의 경우 불륜, 바람, 외도, 사실혼 등 자극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왜 이런 자극적인 불복 사례를 살펴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세법이 유가족에게 두 번의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5년 이내에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세 합산과세 대상이 되는데, 돈을 받은 불륜 상대방은 입을 싹 닦고 이로 인한 상속세 추가 부담은 가족들의 몫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가족들이 아무리 불복을 제기해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나라가 불륜을 편들어주는 것만 같아서 원망스럽죠. 아무리 제도의 취지가 편법 상속을 막기 위한 것이라도 해도, 유가족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규정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택스워치가 여러 세무대리인이 직접 보고 겪은 제3자 사전증여재산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서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사례를 보시고, 사전증여재산이 상속세 합산 과세대상이 되는 세법 규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①아버지 통장에서 인출된 거액의 현금
#. 눈뜨고 당한 아들: 아버지는 한평생을 열심히 회사만 다니시면서 재산을 일궈내셨습니다. 서울에 아파트 두 채와 주식과 현금 등 재산이 50억원 정도 있으셨죠.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부모님 두 분이서 사시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휴대폰에 있는 메시지를 보게 되면서 평화는 깨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내연녀가 있던 것이었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차마 이 사실을 말씀드릴 수는 없었고, 모른 척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요.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고, 저희 가족은 상속세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2년 전에 한 여자에게 10억원이라는 거액을 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지셨죠. 저는 그 여자가 내연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연락처를 알지 못해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사이 국세청은 내연녀에게 증여세를 부과한 뒤, 제 가족에게는 상속세 수억원을 추가 납부하라고 통지했습니다.
②구치소 출소 후, 내 재산이 사라졌다
#. 배신당한 남자: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곧장 이혼 도장을 찍었죠. 정신적 충격은 꽤 오래갔고, 직장이었던 은행의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던 중, 부실 대출로 은행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 됐습니다.
그런데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 뒤, 제 명의로 된 부동산(임야, 약 1만4000평)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전처가 내연남과 짜고 빼앗은 것이었죠(임의경매로 취득). 형사고발을 하려고 했는데, 저의 부친과 딸이 극구 말렸습니다.
이때 전처는 부동산을 처분하고, 그 매각 대금을 제게 주겠다고 제의했죠. 이후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매각 대금의 일부를 반환하겠다는 차용증까지 작성했습니다.
#. "부부니까, 증여세 내야죠": 국세청은 제가 전처로부터 받은 부동산 매각 대금에 대해 증여세를 매겼습니다. 제가 부동산 매각을 주도적으로 관여했고, 전처의 재혼남이 사망한 뒤에 지속적으로 연락한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가족으로 판단한 것이었죠.
저는 국세청의 과세처분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다행히 심판원은 저와 전처가 증여추정 등이 적용되지 않은 관계, 즉 가족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심판원은 "과세요건 사실의 존재는 증여추정 등의 별도의 규정이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세관청이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③"어리니까 모를거야" 딸 등쳐먹는 새엄마
#. 재혼 후 몹쓸병 걸린 남자: 저는 젊은 나이에 아내와 사별하고 아이를 혼자 키웠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여자를 만나 살림을 합치기로 했죠. 재혼 뒤에는 지병으로 병원 신세를 졌는데, 그때 아내는 "갑작스러운 상속은 세금 문제로 골치가 아플 수 있으니까, 사전에 재산을 나누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재산 관리를 일임해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 새엄마에게 쫓겨난 딸: 스무 살이던 해, 아버지는 제 곁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새엄마는 저에게 "아버지가 시골 땅이랑 재산을 조금 남기셨다"라는 얘기를 꺼냈죠. 그렇게 상속받은 유산은 2억원 가량이었고, 저는 그 돈으로 안산시의 한 빌라를 샀습니다. 독립을 강요했던 새엄마의 영향이 컸죠. 지금은 남남처럼 지내고 있고, 새엄마는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네요.
#. 재산 독차지한 새엄마: 남편과 재혼해서 지내다 얼마 전 사별했습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고, 남편은 전처 사이에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망하기 전에 재산을 전처가 낳은 딸 앞으로 모두 증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죠. 그러던 중, 남편이 제게 재산 배분을 맡기는 거 아니겠어요. 세무사의 도움을 받아 사전증여 계획을 짰고, 증여재산은 무려 50억원이었습니다. 남편의 딸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했죠. 어린애가 상속세 신고니 재산분할이니, 그런 말을 알겠어요. 법정상속 지분대로라면 10억원이나 줘야 하는데, 아깝잖아요. 누구는 "사기가 아니냐"고 말하는데, 아무렴 어때요. 그 애가 아직도 유류분 청구를 안 하고 있는데.
④문 닫을뻔한 가업 살린 '미스대구' 선발대회
#. 억울한 딸: 지난 2018년, 대구의 한 세무서로부터 '상속세 신고 내용이 잘못됐다'는 한 통의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운영하던 의류 제조업체를 물려받으면서 가업상속공제 제도 적분에 세금을 아낄 수 있었는데, '세금을 더 내라니' 날벼락 같은 얘기였죠. 고지서에는 공제 요건인 '피상속인의 가업 영위기간 10년'을 지키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자등록을 한 건 2008년 2월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때는 2007년 3월부터였죠. 2007년 3월부터로 계산하면 가업 영위기간 10년을 채울 수 있었지만, 사업자등록을 했던 시기부터 계산하면 가업 영위기간 10년을 채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조업 특성상, 사업을 언제부터 했느냐는 제품을 처음 제조한 날로 보는 것이죠. 저는 이 증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다행히 2007년 3월 디자인실 담당자가 디자인을 해서 실장을 거쳐 대표이사인 아버지의 결재를 받은 작업지시서가 있었습니다.
2007년 6월 당시, 지역 신문에 보도된 기사도 있었는데요. 아버지가 미스대구 선발대회에서 상을 마련해 시상하거나 패션쇼를 개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증거를 내밀자, 심판원은 부당한 과세처분이라는 저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⑤좋은 마음으로 나눴는데 '세금폭탄'이 된 현실
#.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운 세무사: 제가 실제로 맡았던 사건이었는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과거에 정부가 토지를 강탈했던 사건에 대해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보상을 하라는 결정을 받은 A씨의 이야기인데요.
300억원의 보상금을 받은 A씨는 참 착했습니다. 보상금 신청을 A씨 혼자 했기 때문에 보상금을 혼자 꿀꺽해도 아무도 몰랐겠지만, A씨는 부친이 소유했던 토지에 대한 보상금이니 형제들과 사이좋게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죠. 300억원의 보상금 중 일부를 형제 4명에게 20억원씩 나눠 줬습니다. A씨는 본인 몫의 보상금을 또 배우자와 자녀에게 나눠 줬죠.
그런데 야속하게도 A씨가 보상금을 형제와 가족에게 나눠준 후 4년 만에 사망하게 됐습니다. 피상속인이 돌아가신 날을 기준으로 5~10년 이내 증여한 재산은 상속세 합산과세 대상이 됩니다.
A씨의 자녀들이 받은 상속재산은 80억원 정도였지만, A씨의 형제에게 나눠 준 보상금이 상속세 합산과세 대상이 되면서 상속세가 무려 100억원이나 나왔습니다. A씨의 자녀들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국세청은 현행법상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과세했는데요.
A씨의 자녀들은 결국 상속세를 추가 납부해야 했습니다. 세무대리인 입장에서 굉장히 안타까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