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월 상속세 자녀공제액을 10배 상향하는 세법개정안을 내놓자 여론은 뜨거워졌습니다.
정부의 숙원인 유산취득세 개편이 거대 야당이라는 벽에 부딪혀 정부가 자녀공제액 상향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쉽다고 하더라도, 세 부담이 상당 수준 경감되기 때문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정공법보다는, 우회법을 쓴 것이지만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에게 세 혜택을 더 준다는 명분은 생각보다 잘 통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상황인 걸 보면 말입니다.
정부 개정안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에 질세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 기준을 상향하는 안을 내놨습니다. 정부와 야당이 상속세 공제를 놓고 경쟁하는 모양새가 됐죠.
정부안과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표면적으로는 공제액을 크게 상향해 세 부담을 경감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적인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죠.
상속세 인적공제, 어떻게 적용할까?
현행 상속세 제도와 정부안의 세 부담 차이를 살펴보려면, 현재 상속공제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속세는 상속재산 전부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아닌 인적공제를 한 뒤에 과세표준을 산출해 세율을 적용해 과세합니다. 인적공제액이 얼마냐에 따라서 세 부담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기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상속세 인적공제에는 ▲배우자공제(실제 상속가액과 5억원 중 큰 금액) ▲기초공제 2억원 ▲자녀공제 1인당 5000만원 ▲미성년자 공제(1000만원X19세까지의 잔여 연수) ▲연로자 공제(1인당 5000만원) ▲장애인 공제(1000만원X기대여명 연수) ▲일괄공제 5억원이 있습니다.
공제 적용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배우자공제+(기초공제+자녀공제 등)' 방식과 '배우자공제+(일괄공제 5억원)'입니다. 만약 기초공제나 자녀공제 등을 더해도 일괄공제 5억원에 미치지 못한다면, 일괄공제 5억원을 적용합니다.
정부 개정안, 세 부담 얼마나 줄어들까?
정부는 인적공제 항목 중에서 자녀공제를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과 세율도 완화해 '과표 1억원 이하·세율 10%'를 '과표 2억원 이하·세율 10%'로 완화했습니다. 최고 과표구간인 30억원 초과의 경우 세율을 50%에서 40%로, 과표도 10억원 초과로 인하했죠.
이를 적용하면, 다자녀일수록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현재보다 세 부담이 많이 줄어듭니다.
상속세 과세가액이 20억원일 때 현재 상속세는 자녀 1명일 때 5000만원, 자녀 2명일 때 1억3300만원, 자녀 3명일 때 1억9000만원이 나옵니다.
정부 개정안은 어떨까요? 과세가액이 20억원이면서 자녀 1명일 때는 1000만원, 자녀가 2·3명일 때는 상속세가 아예 없습니다. 과세가액이 30억원이면서 자녀가 3명이라면 상속세는 4억4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4억원이나 줄어듭니다.
과세가액이 90억원이면서 자녀가 3명일 때는 상속세가 15억5000만원으로, 현행보다 7억4000만원 경감됩니다.
정부안은 상속세 과세가액이 클수록, 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하죠.
<용어설명>
*상속재산: 피상속인이 사망 시점에 남긴 모든 재산
*상속세 과세가액: 상속재산에서 비과세 재산, 공제액(장례비용, 채무 등)을 제외한 금액
*상속세 과세표준: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인적공제, 일괄공제 등을 제외한 금액
민주당 개정안, 정부안과 차이는?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두 가지입니다.
임광현 의원은 일괄공제를 8억원으로, 배우자공제를 10억원으로 상향하는 안을 내놨습니다. 안도걸 의원은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를 각각 7억5000만원으로 상향하는 안을 내놨죠.
임 의원안부터 살펴보면 상속세 과세가액 20억원이면서 자녀가 1명이면 상속세 부담이 없습니다. 자녀가 2명일 때와 3명일 때는 각 3000만원의 세 부담이 있죠.
정부 개정안이 과세가액 20억원이면서 자녀 1명일 때 1000만원이고 자녀가 2~3명일 때는 세 부담이 없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자녀에 대한 혜택은 임 의원안이 적어 보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과세가액이 50억원부터인데요. 이 구간부터는 자녀 수와 관계없이 세 부담이 현재보다 모두 1억2000만원 줄어듭니다. 과세가액 70억~90억원 구간은 자녀 수와 무관하게 1억5000만원씩 세 부담이 줄어드는데요.
과세가액과 자녀 수가 많을수록 계속해서 세 혜택이 늘어나는 정부안과는 차이가 있죠.
안도걸 의원안은 임 의원안보다 세 혜택이 다소 적지만 흐름은 비슷합니다. 과세가액 50억원 구간은 자녀 수와 관계없이 현행보다 1억원의 세 부담이 줄어들죠. 과세가액 70억~90억원 구간은 자녀 수와 무관하게 1억2500만원씩 세 부담이 줄어듭니다.
민주당안은 과세가액이 20억~30억원인 구간에 세 부담 경감 혜택이 크게 설계했습니다. 서울에 집 한 채 있는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죠.
정부안 vs 민주당안, 무엇이 더 합리적일까?
정부안과 민주당안 중 합리적인 상속세 개정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자녀가 많은 사람은 정부안이 타당하다 여길 것이고, 자녀가 적은 사람은 민주당안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출산율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속세제도 다자녀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내가 일평생 노력해 일군 재산에 대해, 자녀 수가 적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배우자가 없는데 배우자공제를 확대하는 민주당안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상증세 전문가는 어떤 답을 내놨을까요?
최용준 세무법인 다솔 WM본부 대표 세무사는 "상속세 부담이 자녀 수와 연동하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며 "그렇다고 배우자공제를 확대하는 민주당안도, 배우자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차라리 일괄공제를 높이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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