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후 통상 환경에 드리운 먹구름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한국 주력 수출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압박, 원산지 규정 강화, 단순한 상품 수입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넘어, 심지어는 운송수단인 선박 자체에도 새로운 항만이용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보호무역을 확대하면서 전방위적인 보호무역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중간선거 후 레임덕이 올 테니 1년 반 또는 최대 3년 반만 버티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트럼프 2.0 통상정책은 보여주기 식 단기 정치 이벤트가 아닌 장기 구조 변화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우선, 미국 내 정치지형을 보자. 미국 제조업 공동화, 중산층 소득 침체, 러스트 벨트의 몰락은 단지 트럼프의 지지층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당조차 공급망 재편과 제조업 복귀, 대 중국 견제에 공감대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은 ‘우회적 보호무역’에 다름 아니다. 트럼프는 이 흐름을 좀 더 직설적이고 강압적으로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미국 다수 유권자들의 정서는 이미 ‘자유무역’을 떠난 듯하다. 트럼프 미대통령이 주창하는 미국산 제품을 다시 만들어내자는 제조업 부흥 구호는 미국 대중의 자존심과도 직결된다. ‘Made in USA’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질서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끄는 미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정서가 쉽게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미국의 기업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은 더 이상 FTA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IRA와 같이 법률을 통한 차별적 보조금 체계, 통관 시 신고절차 강화, 품목분류 변경을 통한 추가 관세 부과 등 정교한 관세 기반 산업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WTO와 같은 전통적인 규범이 무력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10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통상질서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론은 명확하다. 버텨 보자 식의 소극적 방어가 아니라 적극적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트럼프 2.0 체제를 일시적 위기로 간주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국 더 큰 피해를 불러올 뿐이다. 오히려 보호무역을 새로운 ‘무역 질서’로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전환이 요구된다.
관세와 통관을 핵심 변수로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 2.0 시대의 무역에서는 관세율 그 자체 만큼이나 통관절차의 복잡성과 규정 적용이 무역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예전에는 관세는 일종의 세금으로서 수치로만 이해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품목분류(HS 코드) 하나 바뀌는 것만으로도 관세율이 몇 배가 달라지고, 원산지 판정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비해 그렇지 않은 경우 폭탄 관세를 맞게되는 상황이다.
세이프가드나 무역확장법 232조 같은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대응하려면, 각 수출품목이 어떤 규정에 따라 취급될 수 있는지를 사전에 면밀히 분석하고, 통관 과정에서 어떤 문서와 설명이 요구될지까지 고려해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통관은 더 이상 ‘마지막 절차’가 아니라, 수출 전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미국 내 생산거점 확대 또는 현지 유통망 다변화를 검토해야 한다
고율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가장 실질적인 대응 방안 중 하나는 아예 미국 안에서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 1.0 시절 이미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미국 내 공장을 설립하며 이러한 대응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중소·중견기업에게는 직접적인 미국 내 생산은 먼 이야기다. 멕시코·캐나다 등 USMCA 국가에 위탁 생산거점을 두는 전략도 고려할 수 있다.
단, 이러한 ‘우회수출’이 관세회피로 간주되지 않으려면, 미국 통관 당국이 요구하는 원산지 기준, 역외 가공 규정, 증빙 서류를 사전에 철저히 검토하고 준비해야 한다. 복잡하지만, 정확히 준비하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한미FTA 내 ISDS 조항을 유지하고 관세 리스크에 대비한 법적 대비를 해야 한다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현지 투자를 하는 한국 기업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수출통관 이상의 법적 보호가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SDS 조항(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미FTA에 포함된 ISDS 조항을 방어하는 외교적·법률적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ISDS 조항이 약화되거나 폐지될 경우, 고율 관세나 차별적인 규제로 인해 미국 진출 우리 기업이 피해를 입어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 내 투자 시에는 반드시 주정부와의 투자관련 계약서에 ‘보호조항’을 명확히 넣고, 향후 분쟁으로 인한 국제중재 가능성까지 고려한 법률 검토를 사전에 철저히 해야 한다.
기업-관세사-정부 간 실질적 협력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트럼프 2.0의 보호무역 체계는 대기업보다 오히려 중소·중견 수출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자체 법무팀이나 해외 통관에 대응할 전문인력을 갖추기 어려운 이들 중소·중견 수출기업에게는 정부의 지원과 관세사의 전문적인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품목분류 오류, 원산지 검증 실패, 통관 지연 등은 단지 관세의 문제가 아니라, 수출 기회 전체를 날려버리는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
관세사는 수출입 과정에서 기업이 간과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고, 미국 통관 당국이나 미국 현지 관세법인 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대신 수행하는 실질적인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역시 민관 협의체를 통해 최신 규제 동향을 공유하고, 중소·중견 수출기업이 대응할 수 있도록 미국 관세 및 통관 실무 매뉴얼 지원과 관련 전문가 연계를 확대해야 한다.
과거의 무역은 시장이 이끌고 관세는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관세와 통관이 무역의 성패를 가르는 주도 변수가 되었다.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관세를 경시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트럼프 2.0은 이러한 변화를 세상에 가장 노골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 복잡한 시기를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트럼프 2.0이 만들어낸 새로운 보호무역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제는 기업, 정부, 관세 전문가 모두가 지난 80년 동안 익숙했던 자유무역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바뀐 무역의 규칙과 언어에 익숙해지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할 때이다. 바로 지금이 그 출발점이다.
☞신민호 관세사는?
대문관세법인 대표와 서울지방관세사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법무법인 충정 관세팀장을 거쳐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택스파트너로 활동했고, 관세법인 HnR의 대표관세사를 지냈다.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다국적기업부터 가상자산에 대한 컨설팅까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2~2023년에는 택스워치에 '해외여행 꿀팁'을 총 10편 연재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