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10월 21일 기준) 국회에는 세법개정안이 200건 넘게 계류되어 있다. 법안 발의 주체가 정부든 국회의원이든, 경기 부양이 세법개정안의 핵심이다. 투자·고용을 늘리고, 결혼·출산 지원에 무게를 두는 부분은 정부·의원발의 세법개정안 모두 꽤 닮아있다.
그러나 수백 건에 달하는 세법을 고치는 작업은 정부·국회의 접근법이 다르다.
날 선 대립각을 세우는 부분은 감세이다. 경제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감세가 경기 부양에 긍정적 신호를 줄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일부 계층에만 집중적으로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성격도 있어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법개정안 250건…조특, 소득, 상증 순으로 많아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심사소위원회(이하 조세소위)는 오는 14일부터 본격적인 세법 심사에 들어간다. 조세소위는 정부가 제출하는 세법개정안 등을 포함해 모든 세법 제·개정안을 심의하는 곳으로, 세법 심사의 1차 관문으로 여기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4년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21일 기준으로 국세 부문 16개 법률에 대한 250건의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비과세·감면 부분의 운용이 많은 조세특례제한법이 126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소득세법(58건), 상속세 및 증여세법(21건), 부가가치세법·종합부동산세법(각 7건) 순이었다.
통상 조세소위는 심사대에 오른 세법 전체를 한번 훑어보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세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사회적 관심이 다소 덜한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 판정을, 여야를 비롯해 이해관계자 간 의견 마찰이 있으면 통과 여부에 대해 보류 판정을 내린다.
조세소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재위는 이를 최종 의결하고, 이후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구조다. 세법을 포함한 예산안 등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는 시점(12월 1일) 전까지 조세소위를 진행한다고 가정한다면, 약 2주일 정도의 세법심의 시간이 남았다.

세법 개정 변화, 관계부처가 적극 설명해야 한다
올해부터는 세법심의 과정이 전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세법을 집행하는 국세청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부 부처와 유관 단체 관계자들의 조세소위의 참석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기재부는 관계부처의 의견을 듣고 조세소위 위원들에게 정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정책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어려웠고, 설득이 부족하면서 정책 입안이 어렵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기재부는 쟁점이 되는 사안은 모두 관련 부처 관계자들을 불러 조세소위 위원들에게 직접 설명하게 하고, 정부 부처뿐 아니라 한국세무사회장 등 민간 단체장들도 회의에 참석시킨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속세 완화…'부자감세' 프레임 넘을까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 세법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향후 5년(2025~2029년)간 20조원 규모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세수 감소 효과는 주로 상속·증여세 개편으로 발생하는데, '부자 감세'라는 야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세법심의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안에서 '자산과세' 분야만 떼어내서 보면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현 50%에서 40%로 낮추거나, 자녀 상속공제액을 1인당 5억원(현 500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밸류업·스케일업 우수기업에 대해선 가업상속공제 한도액을 올리고, 기회발전특구 내 창업·이전한 기업은 한도 없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도록 했다.

이미 여야는 본격적인 세법심의 전부터 전초전을 치른 바 있다. 지난 8일 국회예산정책처가 주최한 '2024년 세법개정안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과표 30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이 1251명인데, 세율을 줄였을 때 1조7565억원의 혜택을 받는다"며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줄인다는 이런 발상을 어떻게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국제적인 수준을 비교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세수 중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11%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그다음은 1.53%인 프랑스다. 박 의원은 "상속세가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산가들이 싱가포르, 포르투갈 등 많은 나라로 이주하고 있다"며 "상속세를 낮추면 당연히 단기적으로는 세수 결손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5년간 19조7942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봤다. 이 중 18조6459억원은 상속·증여세 수입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투세는 폐지, 가상자산 과세 향방은
내년 시행을 앞뒀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금투세 과세 대상이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하다며 반대입장을 고수해 온 민주당이 금투세 폐지를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엔 금투세 폐지안이 계류되어 있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여당이 당론으로 추진한 1호 법안이기도 하다. 법안 발의 취지는 고금리 상황에 더해 주식 투자자 수가 늘어나는 등 대내외 경제 상황 변화와 이에 따라 금투세 도입이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야는 이달 예정인 조세소위에서 금투세 폐지를 협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금투세 폐지안이 국회의 벽을 넘는다면 기존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체계가 유지된다.
이 때문에 금투세와 궤를 같이하는 가상자산 과세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내놓은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가상자산은 주식처럼 경쟁매매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고 투자자들에게 주식과 유사한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금투세와 연계해 가상자산 소득 과세도 이뤄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정부안은 가상자산을 팔아 얻은 이익에 대한 과세 시행 시기를 2027년으로 미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거래 수익을 기타소득으로 보고, 2025년부터 이 수익에 세금이 매겨져야 한다.

세무사들이 원하는 세(무사)법 개정은
세무사들도 세무사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단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한국세무사회는 15개의 법안을 기재부에 건의했는데, 정부안에는 ▲결격사유 조회 법적 근거 마련 ▲세무사 업무에 대한 광고 기준 신설 ▲명의대여 관련 몰수·추징 대상 범위 확대 등 3건이 반영됐다.
현재 세무사들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법정 직무에 대한 보수 기준'이다. 세무사회에선 "성실납세와 직결된 법정 직무는 덤핑 등 과당경쟁이나 불성실 고가수임 등을 제한하는 보수 기준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회계법인들은 회사별 최저 감사 시간에 근거해 감사 보수를 받고 있다.
정부안에 담긴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도 세무사회로선 반드시 막아야 할 숙제다. 이 제도는 소득‧법인‧부가·양도세에 대해 전자신고를 하면 세무대리인 1인당 1~2만원을 공제받는 것인데, 정부는 전자신고가 정착됐다는 이유로 아예 폐지를 꺼낸 것이다.
세무사 직무에 보수 기준을 마련하거나, 전자세액공제를 현행으로 유지하는 안은 현재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