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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상속세를 유가족이 내라니…'내연커플' 편드는 세법

  • 2024.10.24(목) 07:00

상속세 합산과세 대상 '제3자 증여'에 분통

'피꺼솟'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피가 거꾸로 솟는다'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매우 화난 것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이다. 

믿었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불륜 상대방에게 돈까지 준 사실만으로도 가정을 지킨 배우자와 자녀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륜 상대방이 받은 돈에 대한 세금을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이 내야 한다면 그야말로 '피꺼솟' 상황이 된다.

더 억울한 것은 따지고 싶어도,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보면, 많은 세무대리인들이 상속세를 처리하면서 안타까운 사례가 '불륜'이라고 한다. 불륜 상대방에게 증여한 것이 고스란히 유가족에게 세금 부담으로 돌아오지만, 도의적으로 이를 책임지는 불륜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유가족은 불복을 제기하지만, 법도 불륜 상대방의 편을 들어준다.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사전증여재산은 상속세 합산과세…유가족은 '피눈물'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사망하면서 남긴 재산이 배우자나 자녀, 부모 등에게 무상으로 이전되면서 발생하는 세금이다.

상속인은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1순위는 직계비속(자녀·손자녀)과 배우자, 2순위는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배우자, 3순위는 형제자매, 4순위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사전증여재산도 상속세 과세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상속은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개시가 된다.

하지만 상속재산의 경우 사망 시점에 남긴 재산에 대해서만 상속세가 과세되지는 않는다.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5~10년 전에 증여한 재산의 경우 '사전증여재산'으로 분류돼 상속세 합산과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망하기 3년 전 제3자에게 10억원을 증여하고 20억원을 남긴 채 사망했다면, 20억원에 대한 상속세율 40%가 아닌, 30억원에 대한 상속세율 50%를 적용하는 것이다.

사전증여재산의 경우 상속인과 제3자에 대해 상속세 합산과세 대상 기간을 다르게 적용한다. 상속인은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 10년까지의 증여재산을, 제3자의 경우 5년까지를 상속세 과세대상으로 본다.

제도의 취지는 상속세 탈루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문제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누구에게 얼마를 증여했는지 가족들이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상속세를 다 납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가족이 모르는 재산이 제3자에게 증여된 사실이 드러나 상속세와 가산세를 추가 납부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사전증여 분쟁, 10건 중 9건은 '불륜'

가끔 뉴스를 보다보면, 회사를 창립해 일군 아버지가 함께한 직원들에게 1억원씩 증여했는데 유가족이 상속세 폭탄을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는 좋은 마음으로 회사 창립멤버에게 증여했지만, 증여한 뒤 뜻하지 않게 돌아가시면서 상속세는 오롯이 유가족이 부담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아버지가 좋은 마음으로 증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억울하긴 하지만, 화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무대리인들은 제3자 증여로 유가족이 상속세를 추가로 부담하는 사례의 대부분은 '내연녀'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아버지가 생전에 가족 몰래 내연녀에게 증여한 부동산이나 현금이, 돌아가신 후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례의 대부분은 내연녀가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고 꽁꽁 숨기고 있다가, 국세청에서 상속세 조사가 나오면 뒤늦게 증여세를 신고한다. 

이때 내연녀가 받은 증여재산이 상속재산에 포함돼 유가족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가 추가로 늘어나지만, 내연녀는 증여세만 납부할뿐 상속세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박정수 비앤택스 세무회계 세무사는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이 나중에 사전상속재산에 포함돼 상속인들이 그 차액분을 내는 경우는 상당히 많아 봤다"며 "가장 많은 사례가 내연관계나 간병인인데, 유가족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이 내연관계에서 증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재훈 세무법인 hkl 대표세무사는 "상속세 조사 이후 집안싸움이 많이 일어난다. 피상속인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금융계좌거래내역이 다 오픈되니까 가족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내연녀한테 증여한 것도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지만, 형제자매 간에도 누구에게 돈을 더 줬다는 것으로 불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유철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피상속인이 2~3년 전에 사용한 돈의 행방이나 목적이 확인되지 않는 것을 상속재산에 넣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부모와 자녀가 대부분 따로 사는 현대사회에서 자녀 입장에서 부모가 사용한 돈을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3자 증여' 상속세 과세대상 제외하면 해결될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속재산 합산 대상에서 제3자에 대한 증여재산을 제외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 자체가 상속세 회피를 위한 편법 증여를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책없이 제3자 증여재산을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것이 어렵다면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 과세 방식은 유산세로 피상속인의 재산 전체에 대해 상속세를 과세한 뒤, 이를 상속인이 나눠내는 구조다.

정부가 추진하는 유산취득세의 경우 상속인이 받는 상속재산에 대해서만 과세하기 때문에 타인이 받는 상속재산에 대해 세금을 부담할 일은 없는 것이다.

박 세무사는 "제3자 증여에 대한 규정이 없으면 제3자한테 미리 증여하고 상속세를 탈루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것"이라며 "유산취득세로 개편되면 이런 일은 사라지겠지만, 당장 개편이 어렵다면 제3자 증여재산의 상속세 과세대상 기간을 현재 5년에서 2~3년으로 줄이면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 세무사는 "국세청의 상속세 조사 과정에서 제3자 증여가 드러날 경우, 제3자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유가족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유가족은 제3자가 누군인지도 모른 채, 상속세를 추가 납부해야 한다"며 "우선 국세청 조사반이 상속인에게 제3자의 인적사항을 알려줘 증여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다. 또 제3자 증여재산을 상속세 과세대상에 포함시키는 기간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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