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른의 언어로 알고 있는 세법 상식을, 아이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엄마의 대답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아이의 가치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금 상식에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이야기들. 아이의 질문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도록, 그 방법을 독자 여러분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는 기사보다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형식도, 틀도 없습니다. 15년간 세금 기사를 써 온 엄마 기자와 이제 막 "왜요?"를 묻기 시작한 딸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여정입니다.

"엄마, 나 실리콘 네온사인 디자이너 될 거야. 연 매출이 10억원이래"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소영이가 유튜브에서 본 실리콘 네온사인 디자이너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었다. 자신이 나중에 꼭 10억원을 벌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장래희망이 100번도 더 바뀌었을 법한 초등학생이 하는 말이기에 흘려들을 수도 있지만 '연 매출 10억원'이라는 말에 괜스레 기자정신이 발휘됐다.
소득과 매출의 개념을 모르는 아이가 실리콘 네온사인 디자이너라는 직업만 가지면 10억원이 전부 본인의 돈이 될 것이라는 착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소영아, 매출 10억원이라고 해서 10억원이 전부 네 돈이 아니야. 매출은 물건을 팔고 받은 돈이야. 10억원어치의 물건을 팔고 나면, 그 돈으로 가게 임대료, 재료비,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해. 그리고 남는 돈이 사장님 돈인 거야. 10억원 중에 절반이 사장님 돈이 될 수도 있고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서 10억원 중에 1억원만 사장님이 가져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얼마가 남는지 뜻하는 '이익'이 중요한 거야"
"그러면 연봉은 뭐야?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연봉을 받잖아"
"회사다니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지? 이걸 1년 단위로 말하면 연봉이라고 해. 1년 동안 얼마를 받기로 회사와 직장인이 약속을 한 거지. 연봉에서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도 떼고 난 나머지는 다 본인의 돈이 되는 거지"
"엄마, 그러면 나 연봉 10억원 받는 직업을 가질래"
이 말에 나는 '풋'하고 웃어버렸다. 연봉 10억원을 받는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최근 한 인터뷰가 생각났다. <참조기사: [인터뷰]"고액납세자가 우리 사회의 적인가요?">
해당 인터뷰는 병의원 세무를 전문으로 한 김규흡 세무법인 진솔 대표세무사와 박성진 택스스퀘어 대표세무사와 진행했다. 그때 들었던 답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의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인데 왜 탈세의 유혹에 빠지냐'는 질문에 두 세무사는 "의사들은 본인의 노동력을 투입해서 돈을 버는 구조라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어요. 주 6일 동안 열심히 일해서 10억원을 벌어도 절반은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로 빠져 나가니까 허탈함을 느끼는 것이죠"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영아, 의사는 돈을 많이 벌거든. 그런데 많이 벌면 세금이랑 사회보험료를 많이 내야 해. 네가 소득이 10억원이면 절반은 나라에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순간 소영이의 표정이 당황한 듯 굳어버렸다. 그렇게 당황한 표정은 자전거를 잃어버린 줄 알았을 때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소영이의 표정에서 '내가 번 돈의 절반이나 떼어가다니'하는 분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누가 보면, 이미 10억원을 벌기라도 한 줄 알겠다.
"엄마, 그러면 나 미국으로 도망갈래"
이 말을 듣자, 난 또 웃을 수밖에 없었다.(미국 디즈니랜드 여행을 꿈꾸는 소영이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높은 세율로 해외로 이민을 고려하는 고액자산가들의 마음과 초등학생의 마음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소영아. 그런데 미국도 세금이 싼 건 아니야. 조세피난처라고 해서 높은 세금을 피해서 돈 많은 사람들이 가는 나라가 있는데, 그런 나라는 홍콩, 싱가포르,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위스 등이야"
"그러면 나 거기 가서 살래"
"있잖아. 만약에 대한민국에서 소영이가 낸 세금이 꼭 필요하다면 어떡할거야? 소영이가 낸 세금으로 학교도 짓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려면 세금이 꼭 필요하대. 그러면 10억원 중에 얼마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면 소영이가 다른 나라로 안 가고 여기서 살겠어?"
한참을 고민하던 소영이가 대답했다.
"흠… 1억원이면 생각해 볼게"
아이의 말이 웃기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묘하게 씁쓸했다. 세금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이들은 정말 이기적인 걸까, 아니면 세금에 대해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떠나는 걸까?
그 물음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았다.
[어린이도 이해하는 세금이야기]매출과 이익, 연봉, 조세피난처는 뭐예요?
우리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등의 서비스를 샀을 때 돈을 내죠. 그건 판매가격이에요. 편의점에서 과자를 1000원에 팔았다면, 이게 판매가격이죠.
편의점 사장님이 과자를 10봉지를 팔아 1만원을 벌었다면, 사장님의 매출은 1만원이 된 거예요.
그런데 사장님이 1만원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을까요? 가게 임대료, 재료비, 직원들의 월급까지 모든 비용을 매출에서 빼야 해요. 만약에 이런 비용들이 8000원이라고 한다면, 사장님이 번 돈은 2000원이에요. 2000원이 이익이 되는 것이죠.
다르게 말하면 2000원은 사장님의 소득이 되는 거예요. 사장님은 2000원에 대한 소득세를 내야 해요.
직장인들이 받는 연봉은 1년 동안 회사로부터 받는 월급을 뜻해요. 직장인들은 가게 임대료, 재료비 등이 들지는 않지만 연봉이 소득이 되는 건 아니에요.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내야 하거든요.
사회보험료에는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이 있는데 이건 너무 어려워서 다 외울 필요는 없어요. 나이가 들거나, 다쳤을 때, 아플 때를 대비해서 미리 돈을 내는 거예요.
돈을 많이 벌수록 내야 하는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는 커져요. 소득이 10억원을 넘어가면 45%를 세금으로 내야 하니, 어마어마하죠.
우리나라는 상속·증여세 부담도 커요. 상속·증여세는 부모님 또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돈에 대해 내는 세금이에요.
물려받은 재산이 30억원을 넘으면 절반(50%)을 세금으로 내야 해요.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상속·증여세 때문에 '조세피난처'인 해외로 이민을 가요.
조세피난처는 세금이 낮거나 없는 나라를 뜻해요. 이런 나라는 홍콩, 싱가포르, 스위스, 네덜란드, 아일랜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