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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출마한 후보에게 왜 세금으로 돈을 줘?"

  • 2025.06.20(금) 07:00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 #2

제게는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11살 딸 소영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보는 세상이 넓어지면서 슬슬 세금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른의 언어로 알고 있는 세법 상식을, 아이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엄마의 대답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아이의 가치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금 상식에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이야기들. 아이의 질문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도록, 그 방법을 독자 여러분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는 기사보다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형식도, 틀도 없습니다. 15년간 세금 기사를 써 온 엄마 기자와 이제 막 "왜요?"를 묻기 시작한 딸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여정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소영이의 입은 뾰로통해진다. 국회의원 선거 때도 그랬고, 이번 대통령 선거 때도 아이는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학교에 있을 때도, 밤에도 왜 도대체 시끄럽게 하는 거야?"라고 투덜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소영이를 보며 나는 별 생각없이 "본인을 뽑아달라고 저러는 거지. 엄마가 출퇴근 할 때 지하철역에서도 사람들이 뽑아달라고 소리지르고 노래 틀고 그래. 저것도 다 세금인데 말이야"라고 말했다.

"엄마, 저게 왜 다 세금이야? 자기 돈으로 선거에 나오는 거 아니야?"

아이의 말을 듣자 나는 멈칫했다. 물론 선거보전금 제도가 왜 있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치를 한다는 건,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야. 그래서 '나를 뽑아주면 이렇게 바꿔볼게요'라고 약속하고, 이걸 알리기 위해 포스터도 만들고, 유세차도 돌리는데 문제는 홍보를 위해 돈이 든다는 거지. 돈이 없는 사람은 홍보를 못 하잖아. 그래서 나라에서 선거보전금이라는 제도를 만든 거야. 돈 때문에 정치 못 하는 사람은 없게 하자고 말이야"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생각해보니까 이상해. 기호 1번이랑 2번 차만 계속 다니잖아. 나라에서 다 돈 주는 거면 왜 나머지 후보들은 유세차 없는데?”

"모든 후보가 다 받는 건 아니야. 전체 유권자 중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 10% 넘으면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거든. 그래서 보통은 기호 1번, 2번 같은 정당 후보만 보전받지"

아이가 이해를 할 듯 말 듯하자 난 이렇게 말했다. 

"작년 겨울에 5학년, 6학년 언니들이 전교 회장, 부회장 선거 나왔지? 그 때 후보들이 선거 포스터 만들어서 교문에서 선거운동을 했잖아. 만약에 포스터 만들 돈이 없어서 선거에 나오고 싶은데 못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슬프겠어? 그 언니가 돈은 없어도 학교를 위해서 정말 일을 잘할 수도 있는 거잖아?"

"엄마, 그 때 정말 어이없는 공약이 많았어. 어떤 언니는 급식에 매일 치킨이 나올 수 있게 하겠다고 하고, 어떤 언니는 학교를 놀이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했어. 진짜 인기 없는 공약은 '즐거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였는데, 그 언니는 정말 착하고 좋은 언니거든. 그 언니가 인기가 없어서 마음이 아팠어"

소영이는 그 때 선거 공약을 말하며 피식 웃었다. 내 눈에는 아직도 아기 같이 보이는 소영이가 공약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웃겼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공약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대견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숙제를 빌미로 아이한테 했던 약속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제 아이에게 "숙제하면 부루마블 두 시간 해줄게"라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면 안되겠구나라는 반성도 살짝 했다.(부루마블 게임은 한 시간이 넘어가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소영아, 그런 공약 보면 무슨 생각이 들었어? 학교 급식에 매일 치킨이 나오면 그건 누구 돈으로 해? 학교를 놀이공원으로 만들면 누구 돈으로 놀이기구를 설치해? 그게 이뤄질 약속 같았어?"

"아니! 그 공약으로 뽑힌 언니도 약속 안 지켰어. 말도 안되는 공약이야. 그런데 그런 공약 아니면 인기가 없어서 안 뽑히더라고. 엄마, 그러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한 후보한테 선거에 나올 수 있는 돈(선거보전금)을 주는 게 맞는 거야?"

아이가 이 말을 하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선거보전금을 토해내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다 국민들이 낸 세금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선거보전금 제도가 좋지 않으니 없애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금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한 마디로 딱 정의내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였나 싶었다. 그래서 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소영이에게 말했다. 

"엄마도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내세운 후보한테 내가 낸 세금으로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 건 솔직히 싫어. 그런데 살다 보면 약속을 못 지킬 때도 있잖아. 너도 놀이터에서 먼저 놀게 해주면 숙제 다 한다고 해놓고 못 한 날도 많잖아. 그래도 다음엔 숙제하려고 노력했잖아.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바뀌어 못 지킬 수도 있어. 그게 사람 사는 사회야. 공약을 안 지켰다고 바로 보전금을 끊으면 누가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할까? 오히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려고 하겠지. 엄마는 지키지 못할 꿈이어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 마음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조금은 불완전해도 서로를 믿어보는 것 아닐까?"

[어린이도 이해하는 세금이야기] 선거보전금, 왜 주는 걸까요?

선거보전금은 후보자가 선거에 쓴 비용 중 일부를 나라에서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본인의 의지로 출마해 놓고는 왜 세금으로 선거 비용을 보전해 주는지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어요. 

사실 이 제도는 돈이 많지 않아도 누구나 선거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정치에는 돈이 많이 들어요. 포스터, 유세차, 영상 제작 등 모두 비용이죠. 돈 많은 사람만 출마하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공정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출한 비용 전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득표율 15% 이상이면 쓴 돈 전액 돌려받지만, 10~15% 미만이면 비용의 절반만 돌려줘요. 10% 미만이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죠.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제21대 대통령 선거(2025년 6월 3일)에서 이 대통령의 득표율은 49.42%,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41.15%,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8.34% 였어요. 이 대통령과 김 후보는 선거 비용 전액을 돌려받지만, 이 후보는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거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후보별(정당별) 선거 비용은 수백억원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선거를 한 번 치르면 국민들이 낸 세금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셈이죠. 제20대 대선(2022년 3월 9일)의 경우 윤석열 전 대통령(국민의힘)은 394억원, 이재명 당시 후보(더불어민주당)은 431억원의 선거 비용을 보전받았죠. 

그 외 투표소 설치와 선거관리요원 인건비 등 선거관리 비용까지 더하면 20대 대선에서는 총 4210억원이 소요됐습니다. 이를 유권자 수로 나누면 1표당 1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1만원을 버리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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