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른의 언어로 알고 있는 세법 상식을, 아이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엄마의 대답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아이의 가치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금 상식에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이야기들. 아이의 질문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도록, 그 방법을 독자 여러분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는 기사보다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형식도, 틀도 없습니다. 15년간 세금 기사를 써 온 엄마 기자와 이제 막 "왜요?"를 묻기 시작한 딸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여정입니다.
엄마, 방귀세를 내는 나라가 있대. 너무 어이가 없어
사회 문제집을 풀다가 나온 '방귀세'에 소영이가 황당해했다. 사실 이건 사람 방귀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소가 되새김질하면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에 대한 세금이었는데, 이를 방귀세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과세하는 나라가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란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황당한 세금은 존재했다. 돈이 필요한 국가에서는 황당한 세금을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인 것이 로마 시대의 소변세, 중세 유럽 국가의 창문세 등이다. 이러한 세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는데, 소영이는 분통을 터뜨렸다.
"창문에 세금을 내라니 그게 말이 돼? 그러면 우리집에도 세금을 만들어야겠어. 가장 많이 먹는 사람한테 세금을 내라고 하자. 숙제를 많이 내주는 사람도 세금을 내"
그렇게 대식가인 아빠와 숙제를 하라고 잔소리 하는 엄마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그런데 소영아, 황당한 세금이 또 생길 수도 있어. 바로 인공지능(AI) 로봇세야. 로봇이 자꾸 생기면 사람들 일자리가 사라지니까 세금을 걷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그게 말이 되는 얘기야? 로봇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세금을 내? 로봇이 세금 낼 돈이 어딨어? 그러면 AI 쓰는 사람들은 다 세금내야 해? 엄마도 기사 쓸 때 AI를 쓰잖아. 그러면 엄마도 기사 쓸 때마다 세금 내야겠네"
AI 로봇세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목소리가 커지는 소영이를 보면서 이 세금이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유튜브 등 미디어에 익숙하고 유치원 시절부터 AI를 접한 아이들에게는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기술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참으로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I 로봇세 이야기가 나오는 사회적 배경을 소영이에게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I 기술과 세금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부, 사회적 구조 등에 대해 어린이의 눈높이로 설명하려고 하니 막막했다. 내가 설명한 것들을 아이가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아는 동화의 틀 안에서, AI 로봇세라는 낯선 주제를 아이의 시선과 상상력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 입장에서는 조금은 낯선 형식일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과 세금의 관계를 상상해보는 실험으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엄마가 들려주는 택스동화]신데렐라와 AI 요정

신데렐라는 아빠가 새엄마랑 재혼한 후, 용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힘들었어요. 새엄마는 자립심이 중요하다며 집안일을 한 만큼만, 용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신데렐라 생각에는 이건 너무 불공평했어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집안일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용돈은 겨우 간식 하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왕궁에서 무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 무도회에서 춤을 잘 추면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기에 꼭 가고 싶었어요. 아이돌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신데렐라! 난 요즘 시대에 맞는 공정한 새엄마니까 네가 왕궁 무도회에 갈 기회를 줄게. 대신 일한 만큼 버는 거야. 여기에 있는 빨래와 청소를 다 하면 시간당 계산해서 최저임금을 주도록 하지. 그 돈으로 드레스와 구두를 준비해서 무도회에 가렴"
왕궁으로 가는 새엄마와 새언니들을 보며 신데렐라는 황당했어요.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이었어요. 빨래와 청소를 다 하면 4시간이 걸릴 테니 신데렐라가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4만120원이었어요.
4만원으로 대체 어떻게 드레스와 구두와 마차를 살 수 있나요? 새엄마는 요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요? 1000원을 들고 편의점을 가면 껌 1개 밖에 못 사는데 4만원으로 드레스를 사라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어차피 4만원으로 드레스도 못 사는데 무도회는 포기하고 마라탕이나 배달시켜 먹으면서 유튜브나 볼까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요정이 나타났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AI 요정 'GPT-엘라 4.0'입니다. 기존 버전보다 업그레이드 되면서 성능도 좋아졌어요. 편하게 '엘라'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당신의 삶이 효율적으로 되도록 도와드릴 수 있어요. 드레스가 필요하신가요? 말만 해주세요. 무엇이든 다 들어드릴게요"
"당신은 누구인데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당신이 드레스를 만들어줘도 저는 드릴 수 있는 돈이 4만원 밖에 없어요"
"저는 AI 요정이에요. 힘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죠. 당신이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4만원이면 저를 가동시키는데 충분해요. 대신 효과가 지속되지는 않아요. 유리구두와 드레스, 마차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지만 효과는 밤 12시까지만이에요. 이거라도 괜찮으시다면, 저를 사용하시겠어요?"
"좋아요. 제게 어울리는 드레스와 유리구두, 마차를 만들어주세요"
휘리릭~ AI 요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드레스 생성 중입니다… 스타일링 알고리즘 최적화 중… 마차는 GPS 연동 중입니다!" 짜잔! 드레스와 유리구두, 마차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완성됐어요. 드레스 장식이 사람이 만든 것보단 조금 어색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어요. 4만원에 드레스라니 가성비 최고잖아요.
신이 난 신데렐라는 왕궁 무도회로 달려갔답니다. 문지기가 무도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어요.
"저기 잠깐 서보세요. 이 드레스와 유리 구두는 본인이 직접 구입한 것입니까? 사람이 만들었다기에는 좀 어색한데…"
"AI 요정 엘라가 도와줬어요. 엘라 덕분에 저는 가진 돈이 없어도 드레스를 마련할 수 있었답니다"
"요새 AI 요정 때문에 골치 아파요. AI 요정이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을 만들어주느라 드레스 만드는 사람, 구두 만드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소식 못 들으셨어요? 그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서 가족들까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어요. 그래서 너그러운 우리 왕국의 왕께서는 AI 요정이 만든 드레스를 입은 사람에게는 세금을 걷기로 했어요. 그 돈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도와주기로 했죠. 그러니 세금을 내셔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신데렐라는 어이가 없었어요. 드레스 살 돈이 없어서 AI 요정에게 도움을 받았기로서니 그걸 가지고 누군가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세금을 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문지기 아저씨! 돈 많은 사람들만 드레스 사 입고 무도회에 오는 게 맞는 거예요? AI 요정이 만들어준 드레스는 왜 안 돼요? 저한테 걷은 세금으로 도와줄 사람들도 나중에 돈 없으면 AI 요정의 도움을 받을 텐데, 그 사람들한테도 세금 내라고 할 거예요?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세금이에요?"
하지만 문지기 아저씨는 세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어요. 신데렐라는 고민했어요.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이 세금을 내고 무도회에 입장할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말이에요.
신데렐라는 결심했어요.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유명한 아이돌이 되면, 지금 낸 세금이 불공평하다고 이건 아주 나쁜 세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기회가 생길 지도 몰라요. 그러면 팬들이 내 말을 듣고 왕에게 이 세금을 폐지하라고 같이 외쳐주지 않을까요?
[어린이도 이해하는 용어 설명]
*최저임금: 근로자가 일을 했을 때, 반드시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시급이에요. 이 기준보다 적게 주는 건 법 위반이에요. 2025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이에요. 월급으로 치면 209만6270원이에요. 최저임금은 매년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가 협의를 통해 결정해요.
*물가: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가 서비스의 평균 가격 수준을 뜻해요. 작년에 1000원이던 라면이 올해는 1200원이 됐다면 물가가 20% 오른 것이죠. 물가가 오른다는 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줄어든다는 뜻이에요. 과거에는 1000원으로 라면 1개를 살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같은 1000원으로 라면을 사지 못하는 거죠.
*방귀세: 소가 되새김질을 하면서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농도가 강해서 지구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끼쳐요. 그래서 뉴질랜드는 2025년부터 트림을 하는 가축이 발생시키는 메탄가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지만, 농민들의 반대로 폐지하기로 했어요. 덴마크는 2030년부터 방귀세를 도입하기로 했어요. 2030년부터 덴마크에서는 가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1톤당 6만5000원 가량의 세금을 내야 해요.
*소변세: 고대 로마에서는 소변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소변 속의 암모니아가 빨래·가죽 가공·청소 등에 사용됐기 때문이에요. 이걸 본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공중화장실에서 모은 소변에 세금을 매겼습니다. 이를 두고 아들이 "이건 너무 창피한 세금 아니냐"고 하자, 황제는 소변세로 번 돈을 들이밀며 "돈은 냄새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어요. 이 말은 나중에 굉장히 유명해졌어요.
*창문세: 1696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행됐다가 유럽으로 퍼진 이 제도는 집에 있는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어요. 당시 사람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걷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쓴 것인데요. 큰 집에 사는 부자들은 창문 수가 많을 것이고 그래서 세금을 많이 내도 된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사람들이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면서 집 안 환기가 불가능해지고 햇빛도 안 들면서 폐결핵과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퍼졌어요. 결국 창문세는 생명을 위협하는 세금이라는 이유로 150년 후에 폐지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