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른의 언어로 알고 있는 세법 상식을, 아이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엄마의 대답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아이의 가치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금 상식에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이야기들. 아이의 질문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도록, 그 방법을 독자 여러분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는 기사보다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형식도, 틀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세금 기사를 써 온 엄마 기자와 이제 막 "왜?"를 묻기 시작한 딸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이야기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보는 여정입니다.
얼마 전, 소영이는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직접 쓰게 해달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참조기사: "딸! 민생소비쿠폰 가져. 어차피 나중에 네 빚이야">
그날 대화에서 자연스레 '독신세' 이야기가 나왔고, 소영이의 말은 나를 한참 생각에 잠기게 했다.
어른들에게 독신세는 아직도 실현 가능성 낮은 상상 속 세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결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저출산 문제를 겪는 일본은 내년부터 '저출산세(국민 1인당 매달 500엔)'를 걷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초등학교의 학급 수는 급감하고 있고, 아이들은 이를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통계청은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40%가 65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라 내다본다. 그 시점은, 바로 지금 이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때다.
2050년이 되면, 독신세는 정말 '상상 속 세금'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까?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소영이와 그 친구들인 채윤, 서현에게 저출산 해법과 독신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인터뷰 형식이었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너무나 기발했다. 그래서 그날의 대화를 재판극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기로 했다.

[조세법정] 독신세 과세는 과연 정당할까?
장소: 어느 키즈카페
사건번호: 저출산2025-1호
피고: 소영이 이모(자유롭게 사는 30대 후반 독신)
판사: 소영(공정한 척하지만 할 말은 하는 11세 어린이)
검사: 소영이 엄마(대한민국 미래가 걱정되는 워킹맘)
변호사: 서현, 채윤(비혼의 자유와 출산 형평성을 주장하는 초등학생)
지금부터 대한민국의 조세 미래를 가늠할 '어린이 조세법정'을 개정합니다!
판사(공정한 척하는 소영): 자, 조용! 지금부터 '독신세 과세는 정당한가'에 대한 재판을 시작합니다. 피고는 삼십대 후반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저의 이모입니다. 아직도 할머니 집에 살고 있죠. 이모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흰머리가 더욱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검사와 변호인 출석 확인했고요. 피고는 출석하지 않았지만, 재판은 진행하겠습니다.
검사(억울한 워킹맘): 존경하는 판사님, 그리고 어린이 여러분!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저출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학급 수가 줄고, 놀이터는 점점 쓸쓸해지고 있어요.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세금을 낼 다음 세대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아이 키우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듭니다. 학원비, 집값, 간식값, 키즈카페까지. 그런데 이모는요? 혼자 돈 벌고, 혼자 쓰고, 여행도 가고, 저축도 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에서, 미래의 자신의 아이가 냈어야 할 세금을 이모가 대신 내야 합니다. 어차피 나중에 복지 혜택은 이모도 누릴 테니까요. 복지 혜택에 드는 세금, 누가 낼까요? 바로 여러분이 내는 것입니다.
변호사(이상주의자 서현·채윤): 검사님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기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입니다. 소영이 이모가 현재 독신으로 살고 있지만, 사실은 결혼하고 싶은데 못 한 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결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에게 세금까지 부과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비록 이 자리에 출석하지 못했지만, 피고인 '이모'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를 낭독해드리겠습니다.
"저도 결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가는 소개팅마다 잘 안 됐어요. 대신 돈을 벌어서 조카에게 쓰고 있어요. 조카가 사달라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비싼 건 꼭 이모한테 말해요. 이런 것을 사주는 것도 아이 양육에 보탬이 되는 일 아닌가요?"
(재판정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판사 소영이의 눈이 흔들린다. 이모가 사줬던 아이패O, 자전거, 닌텐O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검사 엄마는 순간 멈칫했다가 표정을 재빨리 갈무리한다.)
검사(팩트가 중요한 기자이자 엄마): 변호사님의 의견 존중합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이모가 출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이를 양육하지 않음으로써 양육비가 들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세를 내야 합니다.
판사(연애 장려하는 소영): 듣고 보니 검사의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채윤 변호사는 중학생 오빠가 있죠? 그런데 왜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오빠가 여자친구를 많이 만나야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도 많이 낳을 것 아닙니까? 채윤 변호사는 당장 오빠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세요!
변호사(당황한 채윤): 제가 오빠의 여자친구를 질투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오빠를 만나는 그 여자친구가 불쌍해서입니다. 절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전 어른이 되면 아이를 꼭 2명 낳을 거예요.
변호사(의료기술 발전을 기대하는 서현): 저도 2명을 낳을 거예요. 하지만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남자들도 아이를 낳아야 해요. 그래야 인구가 더 많이 늘어나잖아요. 특히 아이를 낳을 때 아프지 않게 하는 기술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을 거예요.
검사(경제 현실에 눈뜬 엄마): 훗! 출산의 고통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다고 생각하세요? 현실은 돈 때문이에요. 집값, 교육비, 생활비에 돈이 정말 많이 들죠. 존경하는 판사님과 변호사님! 마라탕 좋아하시죠? 다이O와 올리브O 쇼핑도 좋아하시잖아요. 그 돈이 얼마인 줄 아세요?
그뿐이면 말도 안해요. 내 시간과 체력까지 갈아넣는게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요. 쉬는 날엔 키즈카페, 평일엔 숙제 봐주기까지 휴…. 제 소원은 퇴근 후 집에서 영화보며 조용히 맥주 한 캔 마시는 겁니다. 하지만 아이 키우느라 그 소원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이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 거라니까요!
변호사(정책감 발휘하는 서현·채윤): 그렇다면 독신세를 부과하는 것보다 출산한 사람에게 지원금을 더 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요? 그리고 요새 학교 교실도 남아돌고 있어요. 학교 건물과 땅의 절반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나라에서 필요한 곳에 쓰면 되는 거죠.
판사(미래 기술에 기대는 소영):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 잘 들었습니다. 여러 주장이 있었지만, 저는 기술의 발전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판단합니다.
요새 인공지능(AI)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죠? AI가 선생님을 대신하게 되면 학원비는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의료기술이 발전해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출산의 공평성도 맞춰질 거고요. 그전까지 누구에게도 벌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라 돈이 부족하면요? 빚내세요. 지금 어른들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낳을 아이들이 빚을 갚겠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이모에 대한 독신세 과세는 다음 조건까지 유예합니다. ①AI 선생님이 등장할 때까지 ②남성도 출산할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전에 나라에서 돈이 부족하면 일단 빌리세요. 이상 판결을 마치겠습니다!
[어린이도 이해하는 세금 이야기] 독신세가 뭐예요?
독신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을 말해요. '독신'에 '세'를 붙여 '독신세'라고 하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혼자사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세금이에요.
독신세는 왜 부과하는 걸까요? 아이가 너무 적게 태어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어요.
아이가 줄어들면 나중에 세금을 낼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해요. 세금이 줄어들면 나라 살림을 꾸려가기 어려워져요. 그래서 독신세로 나라 살림에 필요한 돈을 충당하자는 아이디어예요.
우리나라에는 독신세가 없지만, 일본에서는 내년부터 국민 1인당 매달 500엔의 '저출산세'를 부과할 예정이에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 여론이 워낙 높아서 독신세 도입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거예요. 독신세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에 자녀 양육을 하지 않는 독신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반면, 독신세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며 이를 국가가 강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아래는 우리나라 출생아 수 추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예요. 한해 태어나는 아기가 얼마나 줄었는지 쉽게 알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