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은 지난 10일 고액·상습체납자 710명을 재산추적조사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체납한 세금만 1조원이 넘고, 2024년 말 기준으로 국세 누계 체납액은 110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체납으로 인한 국고손실이 심각한 상황이다.
체납자 중에서는 체납 개시 당시부터 현재까지 책임재산이 부족해 체납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체납자는 체납 개시 전후로 책임재산을 은닉하는 등 체납처분(국세징수법상 강제징수와 동일한 의미)을 면탈하는 행위를 실행하기도 한다.
체납 개시 당시에는 책임재산이 없었더라도 이후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재산을 은닉하거나 탈루하는 경우도 있다.
체납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탈루하는 경우에 과세관청은 민사상 조치로서 체납자의 거래상대방인 수익자 또는 전득자(사해행위로 처분된 재산을 제3자로부터 다시 취득한 사람)에 대해 사해행위취소송을 제기하고, 형사적 조치로서 체납자를 체납처분면탈죄로 고발할 수 있다.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사해행위가 인정되면 수익자 또는 전득자는 해당 재산을 원상회복해야 하고 과세관청은 원상회복된 재산에 대해 징수처분을 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체납처분면탈죄(정확한 죄명은 조세범처벌법위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체납처분면탈죄는 조세범 처벌법 제7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 조세범 처벌법 제7조 제1항은 '납세의무자 또는 납세의무자의 재산을 점유하는 자가 체납처분의 집행을 면탈하거나 면탈하게 할 목적으로 그 재산을 은닉·탈루하거나 거짓 계약을 하였을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은닉'이란 체납자가 체납처분을 면탈하기 위해 재산의 소재를 불명하게 하거나 숨김으로써 그 발견을 곤란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탈루'란 체납자가 체납처분을 면탈하기 위해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함으로써 재산의 감소를 초래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조세범처벌법 제7조에 의해 처벌이 되는 체납처분 면탈행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이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살펴보자.
첫째, 현금 인출을 통한 재산은닉 유형이다. 과세관청이 징수를 위해 체납자의 계좌를 압류할 것에 대비하여 체납자가 자신의 계좌 잔고를 현금이나 자기앞수표 형태로 인출한 다음 은닉하는 유형의 행위이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체납처분면탈행위이다.
예를 들어 체납자 갑이 부동산을 매도하고 대금 13억9000만원을 수령했는데 양도소득세 3억8000만원을 납부하지 않기 위해 부동산 매도대금 13억9000만원이 입금된 계좌에서 총 20회에 걸쳐 현금으로 약 7억3000만원, 자기앞수표로 10억9000만원을 인출했다.
이 돈의 사용처에 대한 객관적 금융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체납자 갑은 체납처분을 면탈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거나 탈루한 경우에 해당해 체납처분면탈죄가 인정된다.
둘째, 차명계좌 내지 타인 계좌에 현금을 보관시키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체납자 갑이 국세 1억6000만원을 체납한 상태에서 자신 명의의 부동산에 담보를 설정하고 대출을 받으면서 과세관청의 징수를 피하기 위해 딸 명의의 계좌로 대출금을 입금받은 경우, 이는 딸 명의의 차명계좌에 현금을 은닉하는 행위로서 체납처분면탈죄에 해당한다.
또한, 체납처분 면탈을 위해 체납자 명의의 계좌에 있던 현금을 타인의 계좌로 이체해 보관하는 경우에도 은닉행위로서 체납처분면탈죄가 성립한다.
셋째, 체납자 소유의 부동산 등을 명의신탁하는 유형이다.
과세관청의 징수를 피하기 위해 체납자의 부동산이나 주식을 친인척에게 명의신탁하거나 거짓으로 매매하는 것처럼 등기를 마친 경우에는 재산을 은닉하거나 거짓계약을 체결하는 행위에 해당해 체납처분면탈죄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체납자 갑이 국세 4억8000만원을 체납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 명의의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 1채를 매제 앞으로 매매를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으나 실제로는 매매한 것이 아니라 명의만 이전한 것에 불과한 경우, 이는 거짓계약 체결 내지 은닉행위에 해당해 체납처분면탈죄가 성립한다.
넷째, 가족에게 부동산이나 현금을 증여하는 유형이다.
체납자가 체납처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이나 현금을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비록 그 증여가 진실된 것일지라도 이는 탈루에 해당해 체납처분면탈죄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체납자 갑이 체납처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 지분 3/4을 배우자에게 증여하고, 1/4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체납처분면탈죄가 성립한다.
이때 체납자로부터 체납처분 면탈의 사정을 알고도 면탈 대상 재산을 수령하거나 이전받은 배우자나 가족 등은 체납자의 면탈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조세범 처벌법 제7조 제3항에 의하여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하급심 판결례를 보면 체납처분 면탈죄에 대해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상당히 많다. 법원은 악의적인 체납처분면탈행위의 죄질을 상당히 불량하게 평가하는 입장이다.
체납에 대한 경각심 제고와 체납자 관리가 더욱 철저하게 이뤄져 체납으로 인한 국고손실이 최소화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종근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감찰1과장, 인천지방검찰청 제2차장, 창원지방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다. 서울시립대세무전문대학원에서 세무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세청 본청 국세심사위원, 관세청 인천본부세관 관세심의위원, 대한병원장협의회 법제이사, 한국세무사회 법률자문 변호사로 활동하거나 활동하고 있다. 조세범 처벌에 대한 최신 실무와 이론을 정리한 '조세형사법'을 집필했고, 현재 법무법인 율우에서 조세, 형사, 의료, 기업소송 및 자문, 경영권분쟁 등을 담당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