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함께 4대 권력기관장 중 하나로 꼽히는 국세청장에 외부 인사가 발탁된 사례는 문민정부 이후 두 번밖에 없다.
참여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거친 이용섭 전 청장, 공정거래위원장 외에는 공직 경험이 없었던 학자 출신인 백용호 전 청장이다. 두 명 모두 개혁형 인사로, 취임 직후부터 조세 정의·조사 투명성·조직 쇄신 등과 같은 굵직한 과제를 주도했다.

특별 조사 없애고, 접대비 공개(이용섭)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초대 국세청장으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이었던 이용섭 관세청장을 임명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 출신이 국세청장에 임명된 경우는 많았지만, 문민정부 이래 외부 인사 발탁 케이스는 이용섭 전 청장이 처음이었다.
당시는 세풍 사건(국세청 고위직의 정치 자금 모금 사건), 언론사 세무조사 등 여파로 세무조사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크게 훼손됐었다. 국세청이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상태라고 봤기 때문에 '외부 충격'을 통한 개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 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세무조사 시스템 전면 개편계획을 내놓았다. 그간 예고 없이 조사 인력을 급파해서 관련 서류를 압수해 조사하는 '특별세무조사'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별세무조사가 주로 정치적인 목적 등 다른 용도로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이를 폐지하는 대신 상습적 탈세자를 겨냥한 범칙조사에 무게를 뒀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 청탁이나 부조리 가능성을 막겠다는 이유로 세무조사 조직도 노출되지 않게 운영했다.
특히 취임 초 '50만원 이상 접대비 실명제'를 추진했다가 재계로부터 "소비가 죽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기회복을 꾀하던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접대문화를 건전하게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핫라인 전자인사시스템' 도입은 예측가능한 인사행정의 좋은 예로 꼽힌다. 국세청장과 1대1 대화를 통해 인사대상자의 근무 희망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이 전 청장은 간부회의에서 "청장 핫라인 같은 공식적인 채널이 있는데도 외부 청탁을 통해 나약한 청장을 만들려는 시도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특히 지방청 조사국에서 3~5년간 근무한 직원은 반드시 다른 부서로 옮기는 순환근무제도 시행했다.
세금을 성실하게 내서 모범납세자로 선정되면 세무조사 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이 전 청장 재임 때 만들어졌다.

세무조사 선정 공개, 지방청장에 인사권 위임(백용호)
백용호 전 청장이 임명된 2009년은, 전임 국세청장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거나 정치 스캔들에 엮여 낙마하면서 국세청에 대한 국민 신뢰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국세청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국세청 물갈이를 결심했고, 국세청이란 조직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장관급 인사인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국세청장에 앉혔다.
그해 8월, 국세청이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를 계기로 발표한 '국세행정 변화 방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었다.
주요 세정사항을 심의할 기구로 '국세행정위원회'를 국세청 내부에 설치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위원회는 외부 민간위원 위주로 구성했는데, 개혁을 내부에 맡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의 신뢰 위기의 원인이었던 인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인사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도 가했다. 복수직 4급·5급 공무원의 전보권을 지방청장에게 대거 위임하거나, 본청 국장 직위 30%인 3개의 핵심 직위(감사관·납세자보호관·전산정보관리관)에 외부 인사를 앉혔다.
조직 전반의 대수술도 이뤄질 뻔했다. 정권 초부터 청와대·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국세청 개혁 논의를 시작했고, 특히 조직 진단 용역 보고서(부즈앤컴퍼니)에서는 "현행 지방국세청 업무가 국세청 본청과 세무서의 기능을 중복적으로 수행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됐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방안은 '지방국세청 폐지, 본청·세무서 2단계 구조 변경'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이를 거부하며, 조직 개편은 내부에 국세행정위원회와 납세자보호관을 설치하는 데 그쳤다.
백 전 청장은 '워치독'(Watchdog)이라는 비위 수집 기구를 신설, 국민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받겠다고 공언한 바도 있다. 이에 고위직 특별감찰팀·비리정보수집 전담팀을 출범시켰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직은 1년 안에 사라졌다.
'임광현식' 국세청 개혁은?
지금의 국세청이 과거 두 청장(이용섭·백용호)이 임명될 당시와 비교하면, 조직 안팎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국세청은 정치적 중립성·청렴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국민 35.2%만이 국세청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일부에서는 최근 외부 인사를 청장으로 지명한 것은 나름의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고 해석한다. 지금 국세청에 주어진 과제는 관리가 아니라 변화라는 소리다.
더구나 세수부족이 만성화된 이런 시기에 세입기관인 국세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조사통'으로 알려진 임 후보자에게 주어진 미션도 결국에는 '세수확보'라는 점에서 어깨의 짐이 무거워졌다.
30여년 간 국세행정 경험을 쌓은 임 후보자는 조직을 뒤집는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과거 외부 출신 국세청장들이 시도했던 조직을 뜯어고치는 식의 대수술이 아닌, 핵심 기능 부문(세무조사·체납관리 등)만 콕 찍은 핀셋형 수술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임 후보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세무조사는 본연의 목적으로만 활용해야 한다"며 세무조사의 중립성에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임 후보자가 현역 의원 출신이란 점에서, 단순히 세정 집행기관 수장의 역할을 넘어 정책 주도형 국세청장으로 변화할 것으로도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