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사로 다루기 어려운 정보들 중에는 꼭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택스워치 정보보고'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담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기자님, 팩트가 틀렸잖아요. 기사 수정해주세요
언론사 기자라면 이런 전화를 안 받아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기사의 생명은 '팩트(사실)'이고, 그 팩트가 틀렸다면 당연히 기사는 수정돼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팩트가 틀렸다는 전제 하에 기사 수정을 요구하는 취재원들의 태도는 당당합니다. 기자가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전제는 기자의 직무유기라는 낙인을 동반하니까요.
그들을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기사가 틀렸다면 당연히 바로잡고 싶을 것입니다. 불쾌하고 억울할 수 있습니다. '기자가 이런 것도 확인 안 하고 기사를 썼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팩트가 아닌 것을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도 일부 기자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들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기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쓴 기사가 누군가에게는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비상식적 행위가 아닙니다. 저는 상식의 영역 안에서, 언론의 사회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사에도 '팩트'라는 명분으로 공격이 들어오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기자들은 언론사에 입사하면 가장 먼저 이렇게 배웁니다. "팩트가 틀린 건 기자의 잘못이다. 즉시 수정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팩트가 틀렸다"는 말은 기자에게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내 취재가 부족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오고, 자존심도 상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취재원들은 기자의 이 약점을 알아차립니다. 팩트라는 말을 마치 언론을 무력화시키는 만능키처럼 휘두르기 시작한 거죠.
팩트는 숫자, 날짜 등의 명백한 사실로 '맞다 또는 틀리다'로 구별 가능한 정보입니다. 그러나 언론보도는 종종 이 팩트를 해석하고 맥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담습니다. 문제는 이 의견마저 팩트 오류로 몰아가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 2023년 국세청의 밀알정보 활동비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밀알정보는 국세공무원이 일상생활에서 수집하는 징수 관련 정보로, 정보 채택률에 따라 월 10만~3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활동비 지급을 위해 매년 400억원 이상을 집행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예산 집행에 대한 성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국감을 앞둔 국세청에서는 제게 거센 항의를 했습니다.
담당 과장은 제게 "밀알정보는 실제 징수업무에 도움이 되지만, 관련 내용은 기밀이라 밝힐 수 없다"며 "팩트가 틀린 악의적인 보도로 국세공무원의 활동에 지장이 생겼다"고 비난했습니다.
여기서 팩트가 틀렸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활동비나 예산 등은 공개된 숫자이기 때문에 팩트가 틀렸다면 당연히 수정해야 합니다. 국세청에서 주장한 팩트가 틀렸다는 부분은 '밀알정보가 징수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성과가 없다는 지적은 팩트라기보다는 평가이고 해석입니다. 성과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으면서,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보 비대칭 뒤에 숨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국세청장은 매년 명절마다 전통시장 방문 행사를 합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 안팎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죠. 이를 보도한 기자에게 "시장 방문을 바라는 상인도 있기 때문에 해당 기사는 팩트가 틀렸다"고 지적한다면, 이게 맞는 걸까요?
이건 과연 팩트가 틀렸을까요? 아니면 시각의 차이일까요? 이것도 아니라면 정보의 비대칭 문제일까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팩트 오류 주장은 정부부처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택스워치는 매년 세무법인과 관세법인의 매출 순위를 집계해 발표하고 있죠. 이 보도가 나갈 때마다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법인들의 항의는 어마어마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주로 "매출로 보면 우리가 O위인데 왜 순위에 포함인 안 된거죠? 팩트가 틀렸잖아요" 입니다.
하지만 택스워치는 한국평가데이터와 나이스평가정보에 공개된 최신 재무자료를 기준으로 순위를 집계합니다. 자료를 비공개로 한 법인은 순위에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어떤 법인은 자신들의 재무정보를 자발적으로 보내오며 순위에 넣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법인들이 스스로 노력하는 일종의 협력입니다.
여기서 택스워치가 팩트를 틀린 부분이 있을까요? 택스워치는 접근할 수 있는 재무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순위를 집계했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는 팩트가 틀린 게 없습니다. 비공개 자료나 접근이 불가능한 자료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팩트가 틀렸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정보를 다 알 수 없는 언론사는 이런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할까요?
기자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기자의 일입니다. 불편한 기사, 불리한 해석이 나왔다고 해서 그걸 팩트 오류로 몰아붙인다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를 비추는 언론의 기능은 마비됩니다. 언론의 역할은 공익적 차원에서 사회를 감시하는 것과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얼굴에 멍이 들어왔습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친구가 얼굴을 '세 대' 때렸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연히 아이를 때린 친구와 그 부모에게 항의하러 가겠죠.
그런데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한 대만 때렸어요. 나머지는 거짓말이에요"
그렇다면 아이의 말은 거짓이니, 당신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물러서야 할까요? 여기서 때린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핵심은 당신의 아이가 맞았고, 얼굴에 멍이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팩트는 하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팩트를 말하는 사람은 여러 명이고, 그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입니다. 팩트를 공개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보도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보도가 틀린 건 아닙니다. 이건 언론의 역할과 한계를 혼동한 것입니다. 물론 언론이 더 정확하고 신중하게 팩트를 다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언론사와 취재원의 '팩트 공방'은 결국 언론이 어디까지 감시하고 질문할 수 있는지를 묻는, 민주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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