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의 기획 세무조사는 단순한 세원 관리 차원을 넘어 정부의 국정과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업종과 산업을 겨냥하느냐는 곧, 집권 정부가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누가 집권했느냐에 따라 세무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정부에 따라 국세청의 기획 세무조사 테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시장에서는 국세청의 기획 세무조사 방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국세청의 기획 세무조사 테마가 주식시장과 민생침해업종, 고가 부동산 취득 외국인 등으로 분산된 탓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하며 주가 조작 등 자본시장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국세청도 지난 7월 주가 조작 등 27개 탈세 혐의자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에 착수하며 이에 호응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당시만 해도 고위공무원 인사가 마무리되면 자본시장 관련 조사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후 국세청은 자본시장 기획 세무조사를 한 차례 시행한 뒤, 추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자본시장보다 부동산 세무조사가 더 쉽다?
오히려 국세청은 지난 9월 부동산관계장관회의의 후속조치로, 이달 1일 한강벨트 초고가 주택 거래자 등 부동산 관련 탈루 혐의자 104명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 국세청이 기획 세무조사의 방향을 부동산으로 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출신 세무사는 "국세청에서 자본시장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는 하기 힘들다. 여건도, 역량도 되지 않는다"며 "세무조사 착수 전에 분석해야 하는데 자본시장 자료 분석은 금융감독원이나 경찰 등의 공조가 필수다. 이 과정이 쉽지 않다. 국세청은 세금을 추징하는 기관이지, 주가 조작 세력에 대한 조사나 처벌 권한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료 분석이 쉽고 거래관계가 단순한 부동산 세무조사가 더 접근하기 쉬울 것"이라고 밝혔다.
세무서장 출신의 세무사는 "임광현 국세청장은 정치인 출신으로, 정부가 원하는 국정과제나 현안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국세청이 눈치가 있다면 기획 세무조사의 방향을 부동산으로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국세청의 기획 세무조사 방향이 부동산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지만, 이번 조치가 실제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세무사들 사이에서도 이번 부동산 기획 세무조사의 실효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거래 위축으로 단기 안정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전망과, 자산가들이 우회 경로를 통해 거래를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 맞선다.
그럼에도 대다수 전문가는 많은 자산가들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규제 학습효과로 인해 단기 조정 이후에도 가격 상승 기대를 여전히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세청 출신 세무사는 "10·15 부동산 대책이 예상보다 강력해 잠시 가격 조정이 되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며 "이런 분들 때문에 가족 간 대여, 가족법인을 통한 대출 등의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세무조사 핵심 키워드 '자금출처조사'
세무전문가들은 국세청이 부동산 세무조사를 확대하더라도, 그 핵심은 자금출처조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금출처조사는 재산 취득이나 채무 상환 과정에서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할 때 진행되는 조사다.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시 제출되는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해 출처가 불명확하다고 판단되면 소명을 요구하고, 납득되지 않으면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다.
자금조달계획서는 투기과열지구(부동산 가격 상승이 두드러진 지역)나 조정대상지역(정부가 부동산 거래를 규제하는 지역)의 주택을 구매하거나, 규제가 없는 일반 지역에서는 6억원 이상의 주택을 거래할 때 제출해야 한다.
기획 세무조사 타깃은 초고가 주택을 취득한 고소득층뿐 아니라,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20~30대 연소자다. 세청은 지난 1일 이미 세무조사 대상으로 초고가 주택 취득자와 연소자를 선정한 바 있다.
소득 대비 과도한 금액의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언제든 국세청의 소명 요구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상속·증여 전문 세무사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국세청은 자녀에게 편법 증여를 하거나 자금출처가 불분명한 거래를 우선적으로 점검할 것"이라며 "처음부터 자금 흐름을 명확히 관리하고 대여나 상환 내역 등 사후 증빙을 철저히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