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당장 증여 좀 할게요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이런 전화를 받은 세무사가 적지 않았다.
정부는 16일부터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20일부터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해당 지역의 부동산 거래에는 양도세와 취득세 중과세가 적용되면서, 수요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금 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보유세와 거래세 개편에도 나설 뜻을 밝혔다. 연구용역과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논의 등을 거쳐 보유세·거래세 개편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세제 강화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혼란과 관망, 엇갈린 시장의 반응
10·15 대책 이후 시장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다.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 집값은 오른다'며 관망하는 사람들과, 급증한 세 부담에 팔고 보자는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발표한 8·2 부동산 대책은 서울 전역과 과천, 세종 등을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대출 규제 및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를 부과했다.
조정대상지역에서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1세대 1주택 실거주 요건 추가,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등 고강도 규제가 시행됐다.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시기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 경험은 자산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호용 세무법인 화담 청담지점 대표세무사(필명 '미네르바 올빼미')는 "10·15 대책 발표 이후 시장은 소위 ‘멘붕' 상태"라며"8·2 대책 당시 급히 팔았다가 후회한 분들은 이번에는 버티겠다고 하지만, 세금 부담이 너무 커지면 한순간에 양도세로 이익을 다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고 전했다.
자산가 세무대리 전문인 C세무사는 "자녀에게 증여할 사람들은 이미 추석 전에 대부분 진행했다"며 "이제 매도하려는 사람들은 일단 물건을 거둬들이고 버티는 분위기다. 결과적으로는 가격이 다시 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단기적으로 거래가 잠기며 조정이 있을 것이고, 이 시기에 저가 양수도 전략을 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유세·거래세 강화 전망…무엇을 어떻게 대비할까?
정부가 보유세와 거래세 개편 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세무전문가들은 대체로 세제 강화를 예상한다.
대형 세무법인 소속 L세무사는 "고가주택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율(최대 80%)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결국 부동산 세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부동산을 정리할 계획이라면 양도세 중과 유예기간(2026년 5월 9일)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취득세 부담이 커 증여가 쉽진 않지만, 부동산이 상승할 것으로 본다면 지금이 증여 타이밍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P세무사는 "대출 규제가 강화됐지만 여전히 매수 수요는 많다"며 "증여는 취득세 중과로 어렵고, 부담부 증여도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저가 양수도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사는 국세청의 자금출처조사는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여금 상환 등의 '사후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세무사는 "국세청이 정부 기조에 발맞춰 부동산 기획 세무조사를 강화할 것"이라며 "이미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가 있지만, 향후 편법 증여나 자금출처 조사가 더 촘촘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G세무사 역시 "국세청은 고액 부동산 취득을 중심으로 자금조달 계획을 정밀 분석할 것"이라며 "공시가격 인상을 통한 종합부동산세 강화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양포세무사'(양도세 포기 세무사)가 등장했던 시기가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에 세무사들 모두 양도세 박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세청은 전날 부동산 대책 발표를 통해 강남 4구를 포함한 한강벨트 고가 아파트 취득 자금에 대한 출처 검증을 강화하고, 30억원 이상 초고가 거래·외국인 취득·연소자 거래 전수조사, 부담부 증여 사후관리도 강화하겠다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