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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Tax]국세청이 맛집에 진심인 이유

  • 2025.10.28(화) 07:00

 

타지에서 맛집을 가고 싶으면 관공서에 전화하면 됩니다

몇 년 전,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요. 대구지방국세청을 방문했던 어느 날, 맛집을 잘 찾아다니는 국세공무원에게 그 비결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관공서에 맛집을 물어보다니, 이게 말이 될까? 공무원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혹시 그런 전화를 했다간 '진상 민원인'으로 찍히는 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취재기자라는 직업은 장점은 바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물었죠. "공무원한테 맛집을 물어보면 싫어하지 않아요? 주말에 전화해도 되는 거예요?"

그 국세공무원은 뜻밖에도 아주 실용적인 팁을 알려줬습니다.

국세청을 비롯해 시청, 구청 등 대부분의 관공서는 주말에 당직을 서기 때문에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대부분 받는다고 합니다. 특히 이 지역에 처음 와서 맛집을 잘 모르는데 알려달라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하죠.

친절한 응대가 곧 그 지역의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생각 때문에, 싫은 티를 내는 공무원은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주말에 관공서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맛집을 물어본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은 어떻게 맛집을 잘 아는 것일까요? 이번 맛집 리스트 수집에 도움을 준 국세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맛집리스트를 책자로 만든다고?

2014년 말 국세청 본청이 서울에서 세종시로 내려갔습니다. 국세청 출입기자였던 저도 함께 세종으로 향했습니다.

국세청은 타 부처에 비해 2년 가량 늦게 내려간 탓에 정부부처가 몰려있는 1청사가 아닌 2청사에 홀로 떨어져 있습니다. 당시 2청사 주변은 상가 대부분이 공실이었죠.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살다가 갑자기 세종시에 홀로 떨어진 직원들은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식당을 찾아 헤맸습니다. 구내식당 식사만 가지고는 채울 수 없는 허기와 외로움이 컸습니다.

그건 기자였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어느 날, 기자실에 있던 제게 국세공무원 한 명이 다가와 '세종시 맛집리스트'를 주고 갔습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책자였는데, 식당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죠. 직원들이 엄선해 고른 식당 리스트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세종시에 있는 국세청(본청)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지방국세청, 세무서에서도 이미 많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신임 국장이나 지방청장이 부임하면 맛집 리스트를 공유하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지역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본업은 놔두고 맛집을 왜 챙겨?

이쯤되면 의문이 생깁니다. 맛집 정리가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니, 공무원들은 먹는 생각 밖에 안하나 하고 말이죠.

그러나 이 기사를 보는 여러분은 모두 알고 계시죠. 직장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점심 먹을 때라는 것을요. 아무리 직장인이 생존을 위해 점심을 먹는다지만, 맛없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다들 비슷할 것입니다.

국세공무원도 예외가 아니죠. 이에 더해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 조직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국세청은 본청과 지방국세청 7개, 133개 세무서가 있는 거대 조직입니다. 전국 각지에 관서가 있는 탓에 서기관급 이상 간부들은 1년 마다 전국을 떠돌아다닙니다. 6급 이하 직원 역시 2년 마다 전보 인사가 나기 때문에 이동이 잦은 편이죠. 

국세공무원 수는 2만명으로 경찰 다음으로 큰 조직입니다. 전보 시기만 되면 명절기간처럼 국세공무원 대이동이 일어납니다.

이때 타지에서 온 직원에게 건네는 맛집리스트는 타지에 홀로 떨어진 선후배 또는 동료를 배려하는 따뜻함입니다. 타지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일만큼 서러운 것은 없죠.

둘째는 외부 손님 응대 때문입니다. 국세청은 업무상 외부인을 상대할 일이 많죠. 국세청은 납세자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인, 국회의원, 언론 관계자, 기업인 등 다양한 외부 인사를 만날 일이 많습니다.

세무서장이나 지방국세청장의 경우 해당 지역의 기관장이나 여러 단체와 만나는 일도 많죠. 해당 지역의 현안이나 납세자들의 어려움을 듣기 위한 간담회 겸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아무 식당이나 갈 수는 없습니다. 조용하게 대화가 가능하면서 음식도 맛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먹는 게 뭐가 중요하냐? 일을 더 잘하는 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죠.

하지만 식탁 위에서 풀리는 일들도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좋은 음식이 오가는 자리에서는 경계가 누그러지고, 이야기의 온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죠.

얼마 전, tvN에서 방영한 '폭군의 셰프'라는 드라마에서도 외교무대에서 음식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같은 국가행사에서 어떤 음식과 주류, 음료가 올라오는지가 이슈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세 번째 이유는 지역 상권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국세공무원들이 정리한 맛집 리스트를 보면 고급 식당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서민들이 갈 수 있는 저렴한 가격대의 식당입니다.

세금을 걷는 국세청은 지역 경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전자신고 시스템이 없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가가치세 신고기간만 되면 국세공무원이 식당에 앉아 세금신고를 받고 세금을 걷었습니다. 

당시에는 식당 주인을 직접 만나며 경기 흐름이나 민원들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전자신고 시스템이 보편화된 현재는 국세공무원이 소상공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국세공무원들은 지역의 식당을 찾아다니며 최근 경기가 어떤지,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만약 특정 지역에서 폐업하는 식당이 늘어난다면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세정지원 제도가 무엇이 있을지 점검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무서나 지방국세청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구내식당 대신 관공서 주변 식당을 이용하라고 독려하기도 하죠.

국세청이 먹을 것에 진심인 이유, 이제 이해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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