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떠난 뒤에야, 엄마가 남긴 몫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삼남매의 장남인 최 씨는 늘 마음 한켠이 무거웠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건 20년도 더 전 일이었습니다. 장손인 그는 당시 당연히 어머니의 재산을 형제들과 나눠 갖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는데요.
아버지는 곧 재혼을 준비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어머니가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재혼을 생각하는 아버지가 서운했고, 최 씨는 아버지와 심한 다툼 후에 더이상 가족들과는 왕래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유류분 소송을 할 수도 있었지만 '돈 때문에 소송하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그는, 속으로만 억울함을 삼켰습니다.
#아버지와의 화해
"너희 엄마 일은 늘 마음에 남았어. 그때 못 챙겨준 네 몫은 잊지 않으마"
"엄마가 돌아가실 때 제게 남겨줬던 것이라고 생각할게요"
시간은 흘러, 어느덧 노년이 된 아버지는 그동안의 오해와 미움을 조금씩 내려놓고, 재혼한 아내와도 이혼했습니다. 홀로 남은 그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자 자식들을 불러 화해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장남 최 씨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됐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매정했던 자신을 이해하라며 최 씨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했습니다. 최 씨는 20년 넘게 마음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죠.
그 무렵 아버지는 자신 소유의 아파트를 팔았는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남 최 씨의 계좌로 커다란 금액이 두 차례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 돈 일부를 아내에게 보내면서, 그래도 결국 가족은 마음이 통하는 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장남 최 씨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상속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최 씨는 국세청에서 우편을 한 통받게 됐습니다. 상속세와 증여세 결정 고지서였어요.
#유산과 사전증여 사이
"아버지 계좌에서 최 씨 계좌로 거액이 두 번이나 입금됐네요"
"그건 증여가 아니라,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아버지가 대신 정산해 준 거예요"
내용을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 몫이라며 보낸 돈이 사전증여재산으로 분류돼 상속세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중 일부를 아내에게 송금한 내역은 아내 명의의 증여세까지 추가한 상태였어요.
최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건 증여가 아니라,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아버지가 대신 정산해 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 씨는 아버지가 재혼 문제로 가족이 흩어졌을 때 못 나눠준 어머니 유산을, 20년이 지나 이자를 붙여 돌려준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 상속세 신고서에는 자신이 현금과 유가증권을 상속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어머니 명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사용했고, 어머니가 남긴 채권도 대신 회수했다고 증거를 제시했죠.
하지만 국세청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조사 결과, 그 돈은 아버지가 소유하던 아파트를 팔고 받은 양도대금에서 직접 송금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자금 출처부터가 아버지 재산이었기 때문에 상속세법상 사전증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었죠.
#결국 증여세까지…
"어머니 상속세 신고서에 적힌 제 몫은 빼야 하지 않나요?"
"그 역시 추정상속재산이지, 실제 존재한 예금이 아닙니다"
최 씨는 아내와 함께 조세심판원을 찾아 다시 한번 과세의 부당함을 주장했습니다. 최 씨는 심판원에 아버지가 보낸 전체 금액을 어머니의 유산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어머니 상속세 신고서에 장남 몫으로 적혀있던 3억원이라도 증여재산에서 차감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심판원은 그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당시 금액은 실제 존재한 예금이 아니라 어머니 사망 전 인출금 중 용도가 불분명한 금액을 추정해 상속세에 포함한 수치일 뿐, 실질적인 상속분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심판원은 최 씨가 받은 돈이 아버지 아파트 양도대금에서 나온 사실과 이체 시점이 아버지 사망 전 10년 이내인 점을 들어 사전증여가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더불어 어머니 상속 당시, 장남이 실제로 얼마를 받았는지에 대한 정산서나 합의서, 소송 결과가 없고, 20여 년간 이자를 더해 정산해 주기로 한 채무계약서나 약정서도 없다며 입증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근거로 최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최 씨는 그렇게 자신에게 엄마가 남긴 몫이라 믿었던 돈에 대해 아버지의 상속세와, 아내에게 그 일부를 증여한 증여세까지 함께 부담하게 됐습니다.
◆절세Tip
상속세법에서 '추정상속재산'은 피상속인이 사망 직전 일정 기간 안에 많은 금액을 인출했지만 그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을 때, 그 돈을 상속인이 받은 것으로 법이 자동으로 간주하는 재산을 말한다. 따라서 상속세 신고서에 추정상속재산이 기재돼 있다고 해도, 그 금액이 실제 상속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보거나, 이후 들어온 돈을 그 상속분의 정산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