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출산 고령화'
이는 현재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동시에 미래 생존을 우려하게 만드는 주요 현상입니다. 저출산을 가늠할 때 기준으로 사용하는 합계출산율은 가임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합니다.
합계출산율이 인구를 유지하는 2.1명보다 낮은 경우 저출산이라고 합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고령화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처음으로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노인 부양 부담이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대부분은 이 같은 변화를 두고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국가 재정 수요가 늘고, 국민 1인당 조세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반드시 짚어야 할 또 다른 변화가 있습니다. 자산이 이동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출산이 바꾸는 상속과 증여의 풍경
그동안 상속과 증여의 전형적인 모습은 가장이 사망하면 배우자와 여러 자녀에게 재산이 분산 상속되는 구조였습니다. 자녀 수가 많을수록 인적공제 규모가 커지는 구조였죠.
사전증여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경우는 일부 고액 자산가에 한정된 이야기였습니다. 일반인들이 사전증여를 준비하는 것은 상속세 부담 대비 절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대한민국 고도 경제성장기를 지나온 시대적 배경과 부모 사후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0~199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부를 축적한 세대는 대체로 자수성가형 자산가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들은 자신의 성취 방식에 대한 확신이 강하고, 자산을 '내 노력의 결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생전 증여는 때로 자신의 인생 성과를 통째로 내려놓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수성가한 세대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증여 이후 자녀가 자신을 충분히 부양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역시 사전증여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이제 서서히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저출산입니다.
사전증여 플랜이 떠오르는 이유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상속세의 유산취득세 전환 논의도,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검토했던 다자녀 공제 확대 방안도 현재로서는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현행 상속세 체계는 피상속인의 전체 재산에 대해 먼저 세금을 산출한 뒤, 이를 상속인이 나눠 부담하는 유산세 방식입니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각 상속인이 실제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방식이지만, 세수 감소 우려 등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세 부담 완화를 기대했던 이들은 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죠.
최근 추세는 혼인 연령이 늦어지면서 첫 출산 연령도 함께 늦어지고 있으며, 의학 기술 발달로 기대수명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결국 부모 세대는 더 오래 생존하며 자산을 보유하고, 이를 물려받을 자녀는 소수에 그치는 구조가 됩니다. 자산은 오랜 기간 한 세대에 묶여 있다가 더 늦은 시점에, 더 큰 규모로 이전됩니다. 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러 자녀가 상속세를 나눠 부담하는 경우와 한 사람이 전액을 부담하는 경우는 체감하는 부담이 다릅니다. 예컨대 1억원의 상속세가 산출됐을 때, 배우자와 자녀 2명이 나눠 내는 경우와 한 사람이 1억원을 모두 부담하는 경우는 심리적으로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더구나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심리 문제가 아니라, 상속 이후 자산 운용과 세금 대응 여력까지 좌우합니다.
부모가 오래 생존할수록 자산 가치도 함께 커집니다. 이 때문에 상속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사전증여가 부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속·증여 플랜: 가족법인 전환, 지분 이전, 해외 이주
이 같은 변화는 상속·증여 시장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고액 자산가 중심의 단발성 컨설팅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중산층 이상에서도 장기간에 걸친 분할 증여, 부담부증여, 신탁 등을 결합한 구조 설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상속은 시점, 세율, 자산 가치를 모두 통제할 수 없지만, 증여는 시기, 금액,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얼마를 물려줄 것인가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습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사전증여가 주목받는 이유가 된 셈이죠.
전문가들의 발언은 공통적으로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상속·증여는 더 이상 사후에 정리할 문제가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관리해야 할 자산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안수남 세무법인 다솔 대표는 지난해 11월 열린 택스워치 주최 '2025 TAX Leaders Summit(택스 리더스 서밋)'에서 "우리나라에서 부동산과 주식을 보유한 다수의 자산가들은 향후 20년 안에 상속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10년 후에는 상속·증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AI 시대의 치열한 세무 시장에서 상속·증여가 핵심 생존 분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이제 일반인들도 가족법인 전환, 지분 이전, 해외 이전 등 다양한 상속·증여 플랜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한 세무법인은 자산가 컨설팅 수요 증가에 대비해 용산 한남동에 VIP 전용 상담센터를 마련했습니다. 또 송정회계법인은 건물주와 고액 부동산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부동산 법인 전환 및 지분 이전 컨설팅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김현성 세무법인 리원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상속세는 일부 자산가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를 동시에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며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해외 이전까지 고민하는 사례가 늘면서, 세무사 역시 해외 포트폴리오를 포함한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우용 송정회계법인 대표회계사는 "세율이 높은 상속·증여세 대신 법인세를 부담하면서 재산 이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가족법인을 활용을 고민할 것"이라며 "보통 가족법인을 이용한 자산 이전은 장기간의 플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세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는 해외 이전에 대해 이 대표는 "나이가 젊은 성공한 창업자들은 해외 이주로 비거주자가 되는 방안이나 국외전출세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며 "다만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신 나이가 있으신 자산가 분들은 오히려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