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술은 전기설비 관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소재 주식회사이다. 중소기술은 해외 사업 확장을 추진한 끝에 2020년 자메이카 소재 전기회사와 계약기간 5년의 기술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세무법인의 조언을 받은 중소기술은 법인세율(10%로 가정)이 낮은 바하마에 현지법인 ‘바하마 자회사’를 설립하고, 자메이카 전기회사와 체결한 기술자문 계약상 권리·의무를 모두 바하마 자회사에 이전했다. 실질적인 기술자문 업무는 중소기술에서 수행했지만, 계약서상 수임인은 바하마 자회사였다. 자메이카 전기회사는 계약서에 따라 바하마 자회사에 5년간 총 50억원의 기술자문료를 지급했고, 바하마 자회사는 이 돈을 중소기술에 배당하지 않은 채 현지 은행 계좌에 예치해 두었다.
과세관청은 2024년 중소기술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후, 바하마 자회사가 독립된 사업 실체가 없는 기지회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자메이카 전기회사가 지급한 기술자문료 50억원은 형식상 바하마 자회사에 지급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중소기술에 귀속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세관청은 중소기술에 법인세와 가산세 등 합계 약 20억원을 추가로 부과했다. 이에 중소기술은 과세관청이 국제조세조정법상 특정외국법인 유보소득 배당간주규정을 적용하면 추가로 낼 법인세가 15억원에 불과하다며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여 기술자문료 전액이 중소기술에 귀속되었다고 본 것은 잘못이라고 맞섰다.
해외법인과 관련한 역외탈세의 구조
올해 초 재벌가 사위와 관련된 조세사건의 1심판결이 선고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항소심에서 “해외법인의 유보소득을 국내 거주자의 배당소득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분쟁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른바 ‘선박왕’, ‘완구왕’, ‘구리왕’ 등으로 보도된 사건들에서도 해외법인을 활용한 역외탈세 여부를 두고 과세관청과 납세자 사이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과세관청은 납세자가 해외법인을 이용해 탈세를 했다고 주장하고, 납세자는 정당한 사업활동을 과세관청이 왜곡하고 있다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해외법인을 통한 역외탈세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간단한 예와 함께 보자.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20%이고, 바하마의 법인세율이 10%이며, 조세조약은 없다고 가정하자. 김회장은 우리나라에 제조·수출업을 하는 주식회사 A를 설립했고, A는 바하마에 A의 물건을 수입해 판매하는 유통회사 B를 설립했다. A의 순이익이 20억원이고, B의 순이익이 10억원이라면, A는 대한민국에 법인세 4억원(= 20억원 × 20%)을, B는 바하마에 법인세 1억원(= 10억원 × 10%)을 납부해야 한다. 김회장 입장에서는 그룹에서 총 5억원(= 4억원 + 1억원)의 세금을 낸 셈이다.
여기서 그룹 차원의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A가 B에 상품을 원가 이하로 파는 방법이 있다. 이 거래로 A가 10억원의 손실을 입고, B가 10억원의 추가이익을 본다면, A가 대한민국에 납부할 법인세는 2억원[= (20억원 – 10억원) × 20%]으로 줄어든다. B가 바하마에 납부할 법인세는 2억원[= (10억원 + 10억원) × 10%]으로 늘어나지만 그룹 전체의 세금은 4억원(= 2억원 + 2억원)으로 기존 5억원(= 4억원 + 1억원)보다 줄어든다. B가 이익금을 A에 배당하면, A가 배당금에 대해 법인세를 내야하지만, 이는 배당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방법으로 회피할 수 있다.
정리하면, 세율이 높은 국가의 소득을 세율이 낮은 국가로 옮기는 ‘소득의 이전’과 옮겨진 소득을 배당하지 않고 현지에 쌓아 두는 ‘소득의 유보’를 결합해 김회장은 그룹 차원의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국가의 역외탈세에 대한 대응
국가 입장에서는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위 사례에서 B가 국내법인이라면, 국가는 A에서 걷지 못한 세금을 B에게서 걷을 수 있다. 그러나 B가 외국법인이면 빠져나간 세금을 영영 걷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은 여러 제도를 두어 역외탈세에 대응한다.
먼저 ‘소득의 이전’에 대응하는 제도로 ‘이전가격세제’가 있다. A가 B에게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팔았더라도 그 가격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적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A가 얻었을 소득을 계산해 과세하는 제도이다. 다음으로 ‘소득의 유보’에 대응하는 제도가 국제조세조정법이 정한 ‘특정외국법인 유보소득 배당간주’(이하 단순히 ‘외국법인 배당간주’) 제도이다. 이는 국내 거주자가 지배하는 저세율 국가의 해외법인에 유보된 소득 중 일부를 국내 거주자가 배당받은 것으로 간주해 국내 거주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제도이다.
역외탈세와 실질과세원칙
마지막으로 실질과세원칙의 적용이 있다. 국세기본법 제14조는 “과세의 대상이 되는 소득·수익·재산·행위 또는 거래의 귀속이 명의일 뿐이고 사실상 귀속되는 자가 따로 있는 때에는 사실상 귀속되는 자를 납세의무자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조세피난처에 실체 없는 기지회사를 세워 그 회사에 소득을 쌓아두는 경우에 국세기본법상 실질과세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5. 11. 26. 선고 2014두335 판결).
즉 국내 거주자가 조세피난처에 사업수행 능력이 없는 외국법인을 형식적으로 설립해 그 외국법인에 소득을 유보했고, 그 구조가 조세회피목적에서 비롯되었다면, 형식상 그 외국법인에 지급된 돈을 국내 거주자가 직접 받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법인 배당소득 제도와 실질과세원칙의 관계
이제 중소기술 사례로 돌아가 보자. 바하마는 저세율 국가이고, 내국법인인 중소기술이 바하마 자회사의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경우 바하마 자회사에 유보된 소득은 외국법인 배당간주 제도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고, 과세관청은 그 유보소득 중 일정 금액을 중소기술이 배당받은 것으로 간주해 중소기술에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런데 사례에서 과세관청은 외국법인 배당간주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실질과세원칙을 앞세워 자메이카 전기회사가 지급한 기술자문료 50억원이 곧바로 중소기술에 귀속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중소기술은 바하마 자회사에 유보된 소득이 외국법인 배당간주 제도 적용대상이므로 곧바로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다투고 있다. 왜 이런 다툼이 생길까?
외국법인 배당간주 규정에 따라 배당가능 유보소득을 계산할 때에는 처분 전 이익잉여금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등 여러 조정 절차를 거친다. 때문에 자메이카 전기회사가 지급한 50억원이 일단 바하마 자회사에 귀속되었다고 본 뒤 그 중 일부만 배당간주되었다고 보는 경우와 50억원 전부가 곧바로 중소기술에 귀속되었다고 보는 경우 사이에 세 부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쟁점에 대해 대법원은 해당 소득이 외국법인 명의의 계좌에 입금되었더라도 실질적으로 국내 법인 등에 귀속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외국법인 배당간주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국내 법인 등에 직접 과세할 수 있다고 보았다(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8두128 판결). 결론적으로 위 사례에서 중소기술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해외진출 전 주의할 점
주의할 점이 있다. 실질과세원칙은 단지 해외법인에 실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해외법인을 설립한 목적이 조세회피에 있는지, 아니면 사업상 필요 때문인지도 함께 본다. 실무에서도 납세자와 과세관청 사이에 해외법인을 설립된 주된 목적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문제는 납세자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받았던 각종 자문이 오히려 조세회피목적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떻게 하면 세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춘 자문의견서는 나중에 과세관청에 의해 “해외법인 설립의 주된 목적이 조세회피에 있었다”는 증거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해외 자회사를 세우기 전 각종 자문을 받는다면 세금 문제를 중심으로만 자문을 받기 보다 사업상 필요, 지배구조 등 여러 쟁점에 관한 종합적인 자문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 그렇게 남겨진 자문의견은 훗날 과세관청과의 다툼에서 해외법인 설립이 오로지 세금 때문이 아니라 사업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 관련이 없음
☞허승 부장판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7기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서부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수원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을 지냈다. 한국세법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