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오디오클립
  • 검색

[국세청 국감 극장]① 킬러들의 수다

  • 2014.10.08(수) 14:17

국세청장 위증 논란 '고성·호통' 난무
세무조사 고무줄 기준, 뻗치기도 도마에

# 프롤로그

 

사상 최대의 세수 부족이 예견된 2014년 가을. 국세청에 24명의 국회의원이 모였다. 국세청장을 둘러싸고 저마다 한 마디씩 훈수를 둔다. 지하경제 양성화, 무리한 기업 세무조사, 부실 과세의 오명, 국세공무원들의 비리, 전관예우와 낙하산, 특정 지역의 인사 편중까지 국세청을 향한 질타의 소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8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오전부터 고성이 오고가며 긴장감이 조성됐다. 이날 국세청 국정감사의 풀스토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 산뜻한 출발

 

출발은 무난했다. 돌발적인 의사진행 발언도 없었고, 자료제출을 문제삼는 위원도 없었다. 정희수 기획재정위원장(새누리당)의 인사말에 이어 임환수 국세청장의 선서, 국세청 간부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주례사처럼 뻔한 업무보고도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국세청장의 업무보고 시간을 재봤다. 10시9분에 시작해 정확히 10시18분에 끝났다. 10분을 채 넘지 않았다. 내용은 어차피 다 아는 이야기였다.

 

"국세청은 세정 본연의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하여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세입예산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여러 위원님들의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여성은 어디갔나

 

국정감사의 포문을 연 인물은 신계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국회 여성위원회 출신 답게 여성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세청 고위직에 여성 인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같은 당 김현미 의원에 따르면 3급 이상의 고위직 96명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2만명의 국세청 직원 가운데 1/3이 여성이지만 주로 하위직에 분포하고, 고위직 승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국세청장의 답변은 명쾌했다. 임 청장은 "현재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는 인원은 1980년대에 임용됐는데, 행시 출신 여성은 90년대 이후에 들어왔다"며 "다른 이유는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행시 출신이 아닌 비고시 여성 직원들은 승진이 불가능한 것일까.

 

▲ 임환수 국세청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송성권 국제조세관리관으로부터 감사원 특별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노장의 호통

 

기획재정위원회의 터줏대감인 오제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활용해 지하경제 양성화가 미흡하다며 포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GDP대비 26.3%)는 OECD 33개국 중 6번째로 크고, 미국(8.7%)에 비해 3배, 일본(11%)의 2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OECD 평균(18.4%)에 비해서도 10%p 가량 더 탈루된다는 얘기인데, 우리나라 한해 세수가 200조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20조원이 추가로 탈루된다는 분석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세무조사 비율은 0.91%로 일본의 1/6, 미국의 1/2 수준이었다. 지하경제가 만연한데도 세무조사는 훨씬 부족하다는 의미다.

 

오 의원은 "우리나라는 복지에 많은 수요가 있음에도, 지하경제를 방치해서 고소득자와 고재산가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국가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며 "국세청이 지하경제를 없애기 위한 세무조사도 안하고 뭐하고 있는 것이냐"고 다그쳤다. 노장의 호통에 깜짝 놀란 임 청장은 그저 "명심하겠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 국세청이 엿장사?

 

여당에는 '기재위 3선' 이한구 의원(새누리당)이 대표 주자로 나섰다. 그는 임 청장이 퇴임 후 선거에 출마하려는 의심이 든다고 쏴붙였다. 지난 달 말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나온 130만 중소상공인 세무조사 배제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 의원은 "과거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북사업하면 세무조사 봐주고, 이명박 정부는 녹색사업하면 조세 면제를 해 줬다"며 "이런 식으로 선심쓰듯이 하면 국세청이 엿장사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국민을 향한 권위는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가 수년째 요구하고 있는 국세 체납 추심의 민간 위탁 문제도 또 나왔다. 이 의원은 "국세청이 기어코 자산관리공사에 맡겼는데, 거긴 공무원 비슷한 조직이라 제대로 되겠나"며 "지방세처럼 민간 활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임 청장도 "유념하고 검토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세무조사 뻗치기

 

"세무공무원이 세무조사 나와서 그냥 뻗치기 하고 있답니다. 세무조사 목표액 채우기 전까진 안가겠다는 겁니다. 세무대리인 알선해서 이 세무대리인이 하면 깎아주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국세청의 구시대적인 세무조사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홍종학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국세청은 과학 세정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허술한 자의적 세정이 남아있다"며 "세무조사는 속된 말로 찍어서 구시대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반면 고소득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세원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세무조사 건별 부과액과 조사기간이 점점 늘고 있는 반면, 자산가들의 소득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초일류기업의 서비스행정으로 가려면 갈길이 멀다"고 한숨을 쉬었다.

 

▲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장의 위증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저격수의 등장

 

심상정-이정희 의원에 이어 기재위의 '저격수' 계보를 잇고 있는 박원석(정의당) 의원은 오늘도 한 건 했다. 이미 "만약 거짓이 있으면 위증에 대한 처벌을 받겠다"고 선서한 임 청장을 위증죄로 몰아 넣었다.

 

박 의원은 국세청이 올해 초부터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으면서 조세피난처 역외탈세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에 임 청장이 "특별감사 받은 것은 없고, 매년 받는 정기감사였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른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지는 사이 박 의원은 감사원 관계자를 통해 재확인한 결과, "특별감사가 맞다"는 멘트를 받았다. 그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국감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위증한 겁니까. 국세청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의원들까지 합세해 국세청장의 위증 논란으로 고성이 오갔고, 결국 정희수 위원장의 중재에 따라 오후 질의에서 임 청장이 정확한 사실을 발표하도록 기회를 줬다. (임 청장은 오후 질의 시작 직전 박 의원을 비롯한 기재위원들에게 감사원 특별감사를 일반감사로 발언한 점에 대해 "착오가 있었다"며 공식 사과했다.)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