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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출제범위' 공개…기업이 먼저 풀어야 할 숙제

  • 2026.11.05(목) 07:00

[프리미엄 리포트]박재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국세청이 정기 세무조사 착수 시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조사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검증항목도 사전에 공개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사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셈이지만, 그만큼 사전 점검의 중요성도 커졌다. 국세청 조사 실무를 경험한 박재영 변호사가 달라진 세무조사 환경과 기업의 대응 전략을 짚어봤다.

중견 제조업체 D사는 최근 정기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예전 같으면 통지서에 적힌 날짜에 맞춰 조사를 받아야 했겠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결산과 주주총회가 몰린 달을 피해 석 달 안에서 조사 착수 시기를 고를 수 있고, 국세청이 이번 조사에서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항목까지 미리 안내받았다.

D사 경영진은 한숨을 돌렸다. 조사 시기를 고를 수 있고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항목도 알게 되었으니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시험범위가 공개된 시험에서 낙제한 수험생에게 동정의 여지는 크지 않다.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다. 국세청이 먼저 패를 보여준 만큼, 이제 같은 쟁점으로 추징을 당하는 납세자는 '몰랐다'는 항변만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1. 국세청이 먼저 꺼내 든 두 장의 카드

국세청은 개청 60주년인 올해를 '세무조사 대전환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지난 4월부터 두 가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첫째는 '정기 세무조사 시기선택제'다. 정기조사 대상자가 3개월 범위 안에서 조사 착수 시기를 직접 고를 수 있다. 과세관청이 일방적으로 정하던 조사 일정을 기업의 경영 일정에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중점검증항목'의 사전 공개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서 반복적으로 과세한 10개 유형을 추려 공개했고, 조사 착수 시 안내자료로도 제공한다. 

법인세·소득세 분야에서는 법인카드 사적 사용, 대표자 개인계좌를 통한 매출 누락, 정당한 사유 없는 매출채권 포기, 근로 사실 없는 가공인건비, 연구·인력개발비 부당 공제, 가지급금 인정이자 누락, 자산으로 처리할 지출의 당기 비용처리가 꼽혔다. 

부가가치세 분야에서는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 수수, 과세·면세 구분 오류, 개인적 공급에 대한 신고 누락이 포함됐다.

조사 현장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이 목록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조사반이 착수 첫 주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2. 예측가능성의 역설, 좁아진 '정당한 사유'의 문

두 제도는 분명 납세자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다른 의미도 갖는다. 과세관청이 반복적으로 검증하는 항목을 미리 알려준 만큼, 같은 쟁점에서 적발된 납세자가 '몰랐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세기본법 제48조 제1항은 납세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가산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판례는 납세자가 그 의무를 알지 못한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거나, 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에만 정당한 사유를 인정해 왔다. 국세청이 반복 과세 유형으로 공개한 항목에서 같은 문제가 지적된다면, "업계 관행이었다"거나 "몰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항목이 단순한 신고 오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공인건비 계상, 개인계좌를 통한 매출 누락,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 수수는 국세기본법상 '부정행위'로 평가될 소지가 크다. 

부정행위로 판단되면 과소신고가산세가 10%에서 40%로 올라가고(국기법 제47조의3), 부과제척기간도 10년으로 늘어난다(국기법 제26조의2). 사안에 따라서는 조세범 처벌법에 따른 형사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조사 현장에서 납세자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추징세액의 크기보다 이처럼 쟁점의 성격이 바뀌는 순간이다.

3. 석 달의 여유, 무엇에 써야 하나

시기선택제로 얻은 최대 석 달은 분명 귀한 시간이다. 다만 이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가 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 기간에 없던 사실을 뒷받침하려 서류를 꾸미는 일이다. 조사 통지를 받은 뒤 실제로 열리지 않은 이사회의 의사록을 만들거나, 근무 사실이 없는데도 날짜를 거슬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행위는 조사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다. 

그 순간 서류는 소명자료가 아니라 은폐 시도의 증거가 되고, 앞서 본 부정행위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석 달은 사실을 새로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정리하고 입증 자료를 체계화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수정신고 역시 시점이 중요하다. 국세기본법 제48조 제2항은 법정신고기한 후 일정 기간 안에 수정신고하면 과소신고가산세를 감면하지만, 과세관청이 경정할 것을 미리 알고 제출한 경우는 제외한다. 조사 통지를 받은 뒤의 수정신고는 이 예외에 해당해 감면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진짜 기회는 조사 통지 이전에 있다. 중점검증항목은 이미 공개되어 있고, 국세청도 신고 단계에서 스스로 점검하라는 취지로 이를 공개했다. 가지급금 인정이자를 제대로 계산했는지, 대표자 계좌로 들어온 매출은 없는지, 연구소 인력이 실제로 연구 업무에 종사했는지는 조사관이 오기 전에 기업이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출제범위가 공개된 시험, 먼저 풀어보는 기업이 웃는다

국세청이 조사 시기와 검증 항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과세관청과 납세자 사이의 신뢰를 높이려는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그만큼 준비의 책임은 납세자에게 넘어왔다. 공개된 문제를 풀어보지 않고 시험장에 들어간 결과는 온전히 납세자의 몫이 된다.

필자가 속한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디지털 통합 리스크 관리 센터'를 열고 AI 기반 '디지털 사전진단'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가 기업의 재무·거래 자료에서 조사 현장에서 반복되는 쟁점을 먼저 찾아내고, 국세청 출신 전문가들이 그 결과를 검토해 세무 리스크는 물론 형사 리스크까지 짚어 준다. 사람의 눈으로는 놓치기 쉬운 쟁점을 조사관보다 먼저 확인하자는 취지다.

조사 날짜를 고를 수 있게 된 지금, 기업이 정말 골라야 할 것은 조사 날짜가 아니라 준비를 시작할 시점이다.

☞박재영 변호사는?
변호사·세무사 자격을 함께 갖춘 조세 전문가다. 5급 민간경력채용으로 국세청에 입직해 10년 넘게 근무하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 팀장, 송무국 수석팀장, 국세청 본청 법무과 팀장 등을 지냈다. 세무조사 현장과 조세소송 실무를 모두 거친 드문 이력이다.
2023년 7월부터 법무법인(유) 대륙아주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며 세무조사 대응, 조세불복 및 조세소송, 상속·증여 자문을 맡고 있다. 과세관청과 납세자 양쪽의 시각을 모두 아는 것이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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