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를 받던 중 국세공무원이 확인서 작성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조사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막고 세금 문제를 빨리 마무리할 수 있다면 서명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확인서가 나중에 소송에서 불리한 증거가 된다면 어떨까. 세무조사를 끝내기 위해 작성한 서류 한 장이 오히려 납세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세무사가 조세소송까지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무조사 단계에서 어떤 대응을 했느냐에 따라 이후 법적 분쟁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허승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지난 29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린 택스워치 주최 '2026 택스 리더스 서밋' 3회 강연에서 세무조사 과정에서 작성한 서류가 이후 조세소송과 민사 분쟁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고등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지낸 허 변호사는 이날 '조세소송을 통해 보는 조세불복'을 주제로 법원이 조세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세무전문가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을 짚었다.
세무서와 법원은 보는 눈이 다르다
세무조사에 대응하는 세무사와 조세소송을 맡는 변호사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세무사는 과세관청이 어떤 자료를 요구하는지, 과세 실무와 유권해석은 무엇인지를 먼저 살핀다. 당장 세금을 부과받지 않거나 조사 범위가 확대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법원에서는 과세관청의 실무가 법령에 맞는지, 제출된 증거로 과세처분의 근거가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허 변호사는 "과세관청의 실무와 유권해석은 법원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과세관청의 기존 실무를 따랐다고 해서 법원에서도 반드시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미 사실관계가 정리된다고 보는 법원의 인식이다. 허 변호사는 법관으로 근무할 당시 조세사건은 세무조사를 거쳤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잘 정리돼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조사 당시 작성한 확인서나 진술을 나중에 뒤집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조세범칙조사에서 작성한 심문조서는 진술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도 2022년 12월 판결에서 이 같은 법리를 확인했다. 당장 세무조사를 무사히 마치는 데만 집중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금 문제 해결했는데 회사를 잃었다?
세무조사 때 작성한 서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조세소송에서만이 아니다.
허 변호사는 동업으로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들의 사례를 들었다. 사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세무조사를 받게 된 의사들은 세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고 나눌 것인지 등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세무조사가 끝난 뒤 동업자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이때 세무조사에 대응하려고 작성한 계약서가 문제가 됐다. 특정 동업자가 사업의 핵심 수익을 가져가도록 계약이 이뤄지면서 다른 동업자들이 사실상 사업에 대한 권리를 잃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약이 동업자 사이의 권리관계까지 바꿔놓은 셈이다.
허 변호사는 "그 과정에서 세무사가 어떻게 조언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중요한 합의나 의사결정이 문서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세무조사 과정에서 새로 작성한 계약서가 이후 분쟁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평소 세금 문제를 상담하던 세무사나 회계사에게 법적 분쟁에 관한 질문도 한다.
허 변호사는 그렇기 때문에 평소 중요한 합의 내용을 이메일 등으로 남겨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분쟁이 생기기 전에 작성됐다는 사실과 작성 시점을 확인할 수 있어 증거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동업이나 상속재산 분할처럼 이해관계자가 여러 명인 경우에는 세금뿐 아니라 다른 당사자의 권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필요하면 변호사와 협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