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어린 삼남매를 홀로 키우는 B씨를 만났다. B씨의 따뜻한 마음에도 끌렸지만,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삼남매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A씨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고, 친자식처럼 정성과 사랑을 쏟아 키웠다. 어느덧 삼남매는 어엿한 성인이 됐고, A씨는 남편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B씨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태도가 돌변한 삼남매가 A씨에게 상속재산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A씨는 세무사를 찾아갔지만, 차마 이런 속사정까지 털어놓기가 부끄러웠다. 그저 상속재산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만 물었다. 그러자 세무사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다.
"법률상 배우자라면 상속받을 권리가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 한 고객이 세무사를 찾아와 물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아들이 일하면서 연봉 400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을 모아 집을 샀는데, 자금출처조사가 나오면 급여를 취득자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세무사는 아들이 실제로 근무하지 않고 급여만 받아 갔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래서 곧바로 물었다.
"아드님이 회사에서 실제로 근무한 게 맞습니까?"
그러자 고객의 표정이 굳어졌다.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고객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떠났다.
두 사례에서 세무사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공통점은 고객과 충분한 신뢰를 쌓기 전에 세법적 판단부터 앞세웠다는 것이다.
세무전문가는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고객의 내밀한 마음까지 들여다보고 공감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특히 두 번째 사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실제 근무 여부에 따라 세무상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은 그 질문을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서로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심부터 드러냈기 때문이다.
최봉길 최&강 대표세무사(법무법인 율촌 비상임고문)는 지난달 29일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린 택스워치 주최 '2026 TAX Leaders Summit(3회)'에서 '컨설팅과 상담을 접목해 나와 고객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최 세무사는 세무상담에서도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세무사는 "공감을 잘하려면 경청을 잘해야 한다. 공감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라며 "이런 것들이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비언어적 신호다. 공감을 잘해야 신뢰를 형성할 수 있고 상담을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적극적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속 상담 온 여성이 눈물 쏟은 이유
첫 번째는 최 세무사가 직접 겪었던 사례를 각색했다.
A씨가 찾아와 그간의 사정을 말하는 동안 최 세무사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상대방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를 마친 뒤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물었다.
A씨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이에 최 세무사가 "제가 대신 말해도 될까요? 배신감을 느끼셨을 것 같다"고 말하자, A씨는 눈물을 쏟아냈다.
최 세무사는 휴지를 건네고 울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울고 난 A씨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으니 창피하기는 하지만 후련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A씨는 다음 날 최 세무사에게 상속 사건을 맡겼다.
최 세무사는 "심리상담에는 철칙이 있다. 평가·판단·충고·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런데 세무전문가는 문제점을 찾아서 솔루션을 주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평생 평가와 판단, 충고와 조언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세무전문가는 고객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고객의 감정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해결책부터 제시하면, 정작 고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사례에서는 어떻게 질문해야 했을까.
최 세무사는 처음부터 "위장 근로자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의심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신 "정상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월급을 받으신 거라고 하면 당연히 자금출처로 인정이 되겠죠"라고 답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실제 근무 여부가 중요하다는 세법적 판단은 전달하되, 고객을 처음부터 의심하거나 추궁하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다.
세무·법률 상담을 받으러 온 고객은 처음부터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가요?"라는 가정법으로 질문하거나, 자신의 문제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묻기도 한다. 불리한 사실관계를 감추는 경우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개방(self-disclosure)'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감정 등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공개하지 못하는 정보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최 세무사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것, 숨겨 놓고 싶은 것이 있다"며 고객이 전문가를 믿고 신뢰할 수 있어야 감춰진 사실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무상담에서는 고객이 제공하는 사실관계에 따라 과세 여부나 세액이 달라질 수 있다. 세법을 아무리 정확하게 적용하더라도 고객이 중요한 사실을 숨긴다면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공감과 경청은 고객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고객은 왜 불만을 가질까
최 세무사 역시 처음부터 공감과 경청을 잘했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그는 과거 상담할 때 고객의 말을 자주 끊었다고 털어놨다. 고객들이 세무상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이야기를 줄이고 필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만 받아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원하는 대로 세금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상담에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최 세무사는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상담 방식을 바꿨다.
고객이 이야기할 때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기 시작했다. 고객이 말을 마치면 "하실 말씀은 다 하셨나요?"라고 확인하고,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답이 돌아오면 "저도 한마디 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전문가가 먼저 결론을 내리는 대신 고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마쳤는지 확인한 뒤 상담을 이어가는 것이다.
상담 시간도 여유 있게 잡기 시작했다. 고객의 말을 끊고 필요한 답변만 받으려 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최 세무사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문제가 해결됐어도 불만이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세무전문가 자신이 고객의 말을 얼마나 자주 끊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말을 끊는 습관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객이 이야기하는 동안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경청의 일부다. 상담 중 전화를 여러 차례 받는다면 고객은 전문가가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는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반응처럼 보이지만, 고객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물론 세무상담은 심리상담과 다르다. 고객의 감정을 듣는 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세법에 따라 판단과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최 세무사가 강조한 것도 판단과 조언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에 앞서 고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털어놓을 수 있도록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 세무사는 "상담사가 아무리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상담은 실패"라며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 고객이 이를 느끼지 못하면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