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1일, 국세청의 역외탈세 세무조사 결과 브리핑장이 술렁였다. 전체 추징액 4741억원 중 4100억원이 단 '한 사람'에게 부과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언론에 이름이 떴다. 시도상선 권혁 회장. 이때부터 그에게는 '선박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15년간 이어진 세금 다툼은 일단락된 모양새다. 자신은 한국 거주자가 아니라며 과세에 맞섰던 권 회장이 개인 체납액 3938억원을 모두 내겠다는 계획을 국세청에 제출했다. 지난 7월 1000억원을 현금으로 먼저 냈고, 나머지는 나눠 내기로 했다. 남은 세금에 대한 담보로는 해외에 있는 선박 5척을 내놨다.
그렇다면 이 배들은 세금을 모두 낼 때까지 국세청이 넘겨받아 가지고 있는 걸까. 담보로 잡힌 배는 운항도 할 수 없는 걸까.
담보로 잡혀도 배는 계속 움직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담보로 제공된 선박 5척은 모두 해외에 소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해외에 다수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선박은 주로 파나마와 라이베리아 등 편의치적국의 현지법인 명의로 선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세금 담보로 잡힌 배를 국세청이 직접 넘겨받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이 선박에 저당권을 설정해 채권자로 들어가 있는 구조로, 배의 소유권까지 국세청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과 비슷하다. 은행의 담보권이 등기돼도 집주인이 살거나 임대(전·월세)를 놓을 수 있는 것처럼, 담보로 잡힌 선박도 곧바로 운항이 중단되는 건 아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선박을 담보로 제공했다고 해서 경제활동 자체가 제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는 계속 운항하고, 여기서 돈도 벌 수 있다. 운항수익은 채권자인 국세청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권 회장 측 몫이다.
배 5척이면 3000억원 받을 수 있을까
만약 권 회장이 남은 체납액을 내지 않는다면 어떨까. 권 회장이 앞으로 내야 할 세금은 3000억원(2938억원)에 가깝다. 선박 5척은 남은 세금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담보일까.
선박의 담보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법에 정해져 있다. 국세징수법(19조)에 따르면 선박을 담보로 제공했을 때, 감정평가법인 등이 평가한 금액이나 지방세법상 시가표준액으로 가치를 매긴다. 국세청이 임의로 선박 가격을 정해 담보로 받는 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납세담보는 원칙적으로 담보할 국세의 120% 이상 가치가 있어야 한다. 남은 체납액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선박 5척의 담보가치는 약 3526억원 이상이어야 하는 셈이다. 현재 국세청은 선박 5척의 구체적인 평가액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임광현 전 국세청장(현 대통령비서실장)은 MBC 라디오에서 5척의 가치가 "3000억원을 훨씬 상회한다"고만 했다.
권 회장이 약속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세청은 담보로 잡은 선박에 대해 강제징수 절차를 밟게 된다. 국세징수법(22조)은 담보로 보장된 국세를 정해진 기간까지 내지 않았을 때, 해당 담보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배, 실제로 회수할 수 있나
"(해외 선박 압류는) 처음 있는 사례라서…"
임 전 청장이 밝힌 이 말은 또 다른 궁금증을 남긴다. 해외재산을 납세담보로 받은 것 자체가 처음인 데다, 국세청은 '적극행정 면책'을 위한 감사원 사전컨설팅까지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해외에 있는 선박을 실제 처분해 세금을 받아내는 데는 문제가 없을까.
국세청은 자체 법리 검토를 거쳐, 해외 선박도 압류·처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임 전 청장도 "압류·처분이 가능하다"고 보면서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감사원에 컨설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 선박을 실제 압류·처분한 전례는 없다. 국세청도 '가능하다'는 자체 판단을 외부로부터 한 번 더 확인받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강제징수 여부는 권 회장이 남은 세금을 약속대로 낼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