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오디오클립
  • 검색

정부도 중고거래 시대…'나라당근' 아이디어 실현될까?

  • 2025.09.10(수) 09:45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다가 막상 쓰지 않고 묵혀둔 물건, 누구나 집에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일부는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내놓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일은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부처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해 예산을 편성해 구입했지만 막상 잘 사용하지 않거나, 한 번 쓰고 창고에 방치되는 비품이 곳곳에 쌓여 있죠. 회계처리 규정으로 인해 사용가치가 남은 물품을 폐기품으로 분류하는 일도 잦다고 합니다.

다른 부처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품이지만 회계처리 문제와 여러 규정들로 부처 간 비품을 중고로 거래하기가 어렵다보니 쓸 수 있는 물건도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데요. 

이런 중고 비품을 부처 간 거래로 돌려쓰는 건 어떨까요?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필요한 곳에 자원을 돌려 쓰는 '윈-윈'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요. 최근 조세심판원 소속 한 사무관이 일명 '나라당근(나라중고장터)'이란 이름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정부판 당근마켓'을 통해 부처 간 비품을 공유·거래하자는 발상입니다.

총리실의 제안(feat. 조세심판원 사무관)

이 아이디어는 지난달 11일부터 14일까지 국무총리실이 주관한 정책 제안 공모전(총리실의 제안)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혔습니다. 공모전에는 총리실 소속 직원 30여명이 참여했는데, 수상자는 단 4명. 그중 으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나라중고장터였던 겁니다.

제안자는 백재민 조세심판원 기획팀장으로, 실제로 심판원 대기실에 비치할 TV 거치대 예산이 부족해 '다른 부처에 놀고 있는 비품을 활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착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백 사무관은 "일반 국민이 당근마켓을 통해 거래하듯, 기관 간 중고 물품을 거래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현재 정부 기관에서 집기·가구·비품 등 자산으로 취득하는 것들은, 소액을 제외하곤 의무적으로 나라장터(종합쇼핑몰)에서 구입해야 하죠. 2024년 기준 공공조달 전체 거래 실적은 225조원으로, 이 중 물품 조달에 약 37.4%(84조3000억원)가 쓰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용 목적이 종료되면 장기간 창고에 방치되거나 폐기되는 사례가 다수라는 점입니다. 정부 기관이 구입한 비품 등은 '내용연수(회계 기준상 자산가치 평가 기간)'로 관리되는데, 내용연수가 끝나면 원칙적으로 자산가치가 소멸했다고 보고 불용(폐기)으로 분류하는 구조죠.

백 사무관은 "사용 가치가 남아 있음에도 재활용·재사용 체계 부재로 자원 낭비·예산 손실을 초래한다"며 "그러나 현행 불용품 처리는 복잡한 규정과 다단계 승인·감사 절차 등으로 인해 소극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예산 절감을 위해 제안한 것이, 조달청이 주관하는 '기관 간 중고거래 플랫폼' 구축이었던 것입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구매한 가구·전자제품·사무용품 등 자산 가치가 남은 불용품을 기관 간 무상(또는 저가 양도)하는 식이죠.

물론, 현재도 기관 간 중고 물품을 무상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관리전환수요 조회).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선 "필요한 물건을 굳이 중고로 쓸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짙고, 물리적 거리 문제(예: 제주도 기관이 가진 걸 강원도에서 필요해도 운송비·절차 문제로 사실상 불가)로 무상 공유는 잘 안 돌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기관 간 중고거래 플랫폼이 생긴다면 막대한 예산도 아낄 수 있다고 합니다. 가구·전자제품 등 불용품의 20%를 재활용한다면, 신규 구매 비용 4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백 사무관의 주장입니다.

아직은 공모전 수상작에 불과합니다. 백 사무관도 "참가상을 목표로, 이 정도면 필요한 정책이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제출한 것"이라며 "공모전 이후에 피드백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간 수백조원에 달하는 공공조달 구조 속에서 400억원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제도화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해 보입니다.

정부 내에서도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판 당근마켓이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