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이별
"그 사람한테는 내가 책임이 있어."
"알아요, 아버지. 편한대로 하세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건 어느 해 봄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을 전했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시한부 선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는 자식들을 불러 '그 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분은 김 씨 아주머니였습니다. 아버지와 법적으로 혼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년 간 함께 살아온 분이셨죠.
아버지는 김 씨 아주머니께 자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며 조용한 이별을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5000만원을 계좌로 보내셨습니다. 어떤 말보다도 깊은 인사였고, 동시에 관계를 정리하는 의미였죠.
#예상치 못한 분쟁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였으니, 위자료 받아야겠어."
"…. 드릴 테니까 부동산 가압류는 풀어주세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는 유산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뜻밖의 통지를 받았는데요. 김 씨 아주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소송 내용은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이었고, 심지어 아버지의 부동산엔 이미 가압류가 설정돼 있는 상태였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가 생전에 이별을 고하며 돈을 드린 이후, 김 씨 아주머니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아버지를 채무자로 부동산에 법원 가압류를 신청해 놓았던 거예요. 법원은 조정 결정을 통해 아주머니에게 2억원을 지급하라고 했고, 우리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증여세
"김 씨 아주머니에게 지급한 5000만원은 증여입니다."
"그 돈은 재산분할로, 아버지 채무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렇게 아주머니와의 관계도, 법적 분쟁도 정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국세청에서 고지서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국세청은 아버지가 아주머니에게 준 5000만원은 증여라며, 증여세와 상속세를 더 내야 한다고 했어요. 저희는 바로 과세전적부심사청구를 신청해, 아주머니가 받은 돈은 아버지의 재산분할금이므로 상속인의 채무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는데요.
다행히 국세청은 저희 주장을 받아들여 증여세 부과를 취소했습니다. 김 씨 아주머니가 소송으로 청구한 내용과 부동산 가압류 등 생전 정황을 검토한 끝에, 5000만원은 증여가 아닌 정당한 채무 변제라고 인정한 거죠.
하지만 남은 문제는 상속세였습니다. 저희는 김 씨 아주머니에게 지급한 2억원을 상속재산에서 공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국세청은 이를 상속 이후 발생한 채무라며 거부한 거예요.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 돈은 아버지가 생전에 관계를 정리하면서 드린 것이니까요. 게다가 법원의 결정으로 2억원까지 아주머니에 준 마당에, 그 돈에 대한 세금까지 더 내야 한다니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심판의 시간
"재산분할 소송을 위한 가압류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진행된 거예요."
"생전에 관계를 정리했으므로, 2억원은 상속재산에서 공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하나였어요. 김 씨 아주머니에게 지급한 재산분할금이 아버지의 채무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죠.
우리는 김 씨 아주머니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사실혼 해소에 합의했고, 아주머니가 아버지를 채무자로 가압류 신청을 했다는 점을 심판원에 주장했어요. 또 아버지는 생전에 5000만원을 지급했으며, 이후 소송은 상속인인 우리가 이어받은 것뿐이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결국, 심판원은 우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심판원은 아버지가 생전에 사실혼 관계를 해소했고, 그에 따라 발생한 재산분할청구권은 아버지의 채무라고 했어요. 재산분할금 2억원은 상속재산에서 공제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국세청의 상속세 거부 처분은 취소됐지만, 우리 가족은 기나긴 분쟁에 모두 지쳐버렸습니다.
◆절세Tip
상속세는 상속재산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차감하고 계산된다. 단, 해당 채무가 사망 이전에 발생한 것이고, 법적으로 입증 가능한 상태여야 공제가 가능하다. 사실혼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도 생전 분쟁이 개시되었다면 피상속인의 채무로 인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