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달리기에서 배턴을 넘긴 주자는 트랙을 떠납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앞 주자가 더 오래 뛰었어야 기록을 인정한다'는 규칙이 생긴다면, 이미 자기 구간을 마친 주자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올해 세제개편안을 두고 가업승계 현장에서 나오는 걱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 5일 국정감사 관련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를 적용받은 1278건 가운데 522건(40.8%)은 증여 당시 부모의 경영기간이 10년 이상 20년 미만이었습니다. 종전 법이 요구한 10년을 채우고 정당하게 승계를 시작한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개편안대로라면 이들 상당수는 훗날 상속 단계에서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어려워집니다.
국회에서는 두 가지 보완책이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미 증여한 기업을 보호하는 경과조치이고, 다른 하나는 가업 해당 여부를 미리 확인받는 사전심사 제도입니다. 방향은 반갑습니다. 다만 둘 다 아직 확정된 것이 없고, 어떤 문구로 도입되느냐에 따라 보호의 크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증여로 끝나지 않고, 상속에서 다시 판정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는 부모가 생전에 회사 주식을 자녀에게 넘길 때 10억원을 공제하고, 과세표준 120억원까지 10%, 그 초과분은 20%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단계에서 승계 관련 세금이 정리된 것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특례로 증여한 주식은 기간에 관계없이 부모의 상속재산에 다시 합산되고, 그때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지가 최종 세 부담을 결정합니다.
문제는 그 공제 요건을 상속 시점의 세법으로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개편안은 가업상속공제에 필요한 부모의 경영기간을 최소 20년으로 늘리고, 30년에 못 미치면 부족한 기간만큼 사후관리기간을 늘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회에 낸 법률안에는 이미 증여 특례를 받은 기업에 종전 요건을 적용한다는 경과규정이 없습니다. 15년간 회사를 경영하고 주식을 모두 넘긴 뒤 물러난 부모라면, 부족한 경영기간을 추가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경영기간 15년, 주식가치 100억원(전액 가업자산 상당액)이고, 합산되는 금액 전부에 상속세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지금 특례로 증여하면 증여세는 9억 원입니다. 그러나 상속 때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하면 이 주식의 합산으로 상속세가 50억원 늘어나고, 이미 낸 9억원을 빼더라도 41억원을 더 내야 합니다.
경과조치는 날짜보다 문구가 중요
보도에 따르면 국회는 개편안 발표일인 지난 8월 3일 이전 증여분에 종전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경과조치가 나오면 다음 세 가지는 꼭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기준일입니다. 8월 3일은 검토 중인 방안일 뿐 확정된 날짜가 아닙니다. 기준일을 발표일로 정하느냐, 법 시행일로 정하느냐에 따라 그 사이에 증여한 기업의 결과가 갈립니다.
둘째, 대상입니다. 주식 일부만 먼저 증여하고 나머지는 상속으로 넘길 계획인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경과조치가 이미 증여한 주식에만 적용되는지, 같은 가업의 나머지 주식에도 미치는지는 큰 차이입니다.
셋째, 보호하는 요건의 범위입니다. 개편안은 경영기간뿐 아니라 가업의 정의, 공제 업종, 사업용 토지의 공제범위도 함께 바꿉니다. 경과조치가 경영기간만 종전대로 인정한다면, 기술·노하우 보유 여부나 업종, 토지 요건은 여전히 새 기준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사전심사는 시험 전 채점 기준표
개편안은 가업에 해당하는지를 따로 따지는 가업상속공제심사위원회를 신설합니다. 다만 정부안의 절차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신고할 때 심사자료를 제출하고, 과세관청의 조사를 거쳐 위원회가 심사하는 방식입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공제 여부를 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시험을 다 치른 뒤에 채점 기준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전심사 제도가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속 전에 가업 해당 여부를 확인받을 수 있다면, 부족한 요건을 보완하거나 승계 방식을 바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공제를 기대했다가 상속 후에 수십억 원의 세금을 마주하는 일을 미리 막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사전심사는 아직 논의 단계이고, 정부안에 들어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도입되더라도 심사가 가업의 정의만 보는지 업종과 토지까지 보는지, 심사 결과가 상속 시점까지 효력을 유지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미리 받은 결과라도 상속 시점에 사업구조나 사실관계가 달라졌다면 그대로 유지된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갖춰야 할 것은 계산과 기록
경과조치와 사전심사가 어떤 모습으로 확정되든, 기업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합니다.
이미 증여를 마친 기업은 앞으로 나올 부칙에서 기준일과 대상, 보호하는 요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경과조치가 경영기간만 보호하는 경우를 가정해, 새 기준의 업종과 토지 요건을 적용하면 공제액이 얼마나 되는지 미리 계산해 두어야 합니다.
아직 증여하지 않은 기업은 경과조치를 기대하고 서두르거나,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부모의 경영기간과 앞으로의 경영 계획, 회사 가치의 변화를 놓고 시행 전후의 증여세와 상속세를 함께 비교한 뒤 결정할 일입니다.
어느 쪽이든 공통으로 준비할 것은 심사에 내놓을 자료입니다. 회사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가 무엇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 업종별 매출과 사업장 토지의 사용현황, 지분과 경영 참여의 변화를 평소에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사전심사가 도입되면 신청의 근거가 되고, 도입되지 않더라도 상속 후 심사에서 공제를 입증하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기록이 있다는 것과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업종이나 토지처럼 자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요건은 따로 점검해야 합니다.
승계 신뢰는 문구와 기록으로
경과조치와 사전심사는 같은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법을 믿고 승계를 시작한 기업이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국회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지는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와 별개로 기업은 자기 회사의 요건을 숫자와 기록으로 설명할 준비를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승계는 증여한 날 끝나지 않고, 상속의 마지막 심사를 통과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 이우용 회계사는?
빅4 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 업무를 시작해 세무자문본부로 자리를 옮긴 뒤, 법인의 법인세 신고와 세무자문, 경정청구(세금 환급) 등 다양한 세무 실무를 수행했다. 8년차 회계사 시절 세무자문본부 매니저를 끝으로 PB 명가로 불리는 하나은행 컨설팅팀으로 이직해 2년 반 동안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자산 규모 500억원 이상 VIP 고객 200여명, 총 10조원이 넘는 자산을 대상으로 가업승계 컨설팅을 맡았다. 현재는 송정회계법인 서초지점(상속증여센터) 대표회계사로서 가업승계 컨설팅에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