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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값 세무조사, 9년 만의 데자뷔…국세청 물가관리 어디까지?

  • 2026.10.16(금) 15:42

#. 2017년 3월, 치킨 프랜차이즈 BBQ가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하자 농림축산식품부가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세청은 "농식품부로부터 사전에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며 "농식품부가 치킨 가격 인상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의뢰해도 법적 요건이 맞아야 조사를 하는 것이지, 요건이 되지 않는데 무턱대고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농식품부는 "조류인플루엔자로 산지가격이 올라 치킨 가격을 인상한다는 것은 업체들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국세청에서 이들 업체가 부당이득을 취한 부분에 대해 세금을 잘 냈는지 확인해 달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당시 농식품부는 국세청과 협의조차 하지 않은 채 세무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세무조사를 거론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그렇게 한차례 논란으로 끝났던 치킨값 세무조사 문제가 9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치킨값이다. 치킨과 짜장면, 소주 등은 국민이 일상에서 가격 변화를 쉽게 체감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다. 정부가 이들 품목의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가와 관련한 국세청 세무조사는 과거 정부에서도 반복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벌어지자 온라인 판매상과 수출 브로커 등 52개 업체에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민생침해 탈세를 겨냥한 조사가 이뤄졌다. 

과거에도 물가와 관련된 세무조사는 있었지만, 최근에는 국세청이 '물가 불안 조장 탈세'를 전면에 내세우고 식품·생필품 등 생활물가 관련 업종을 대상으로 잇따라 세무조사를 발표하면서 조사권 행사의 범위가 다시 쟁점이 됐다.

물가 세무조사 질타에…국세청장 "물가 관련 규정 있다"

지난 1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은 국세청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158개 업체를 대상으로 물가 관련 세무조사를 실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라면과 생리대 등 구체적인 품목의 가격을 언급한 뒤 관련 업종에 대한 세무조사가 발표되는 점을 문제 삼았다. 치킨업계 역시 최근 세무조사 대상에 올랐다. 국세청은 지난 9월 중순 BHC와 푸라닭 등에 대한 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이 대통령은 같은 달 30일 치킨 가격을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원은 "국세청이 물가당국이 아닌데도 세무조사권을 물가관리에 적극 활용하면 기업에는 가격 인상 자제를 요구하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조사권 남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임광현 당시 국세청장(현 대통령비서실장)은 "물가안정이 국세청의 목적은 아니지만, 국세청 업무 가운데 물가와 관련된 규정이 있다"며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관련 업체들을 조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업무 규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가격을 올렸다는 이유로 세무조사를 할 수는 없다"며 "탈세 혐의가 있는 업체에 한해 조사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부처나 대통령실로부터 세무조사를 요청받은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임 전 청장이 언급한 물가 관련 규정은 무엇일까.

실제로 「국세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에는 조사2과장의 업무 가운데 하나로 '물가안정에 관한 지원업무'가 명시돼 있다.

반면 국세기본법 제81조의4는 세무공무원이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세무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다른 목적을 위해 조사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81조의6에서는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요건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 비정기 세무조사의 경우 무자료거래나 구체적인 탈세 제보, 탈루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 등이 있어야 한다.

물가안정이나 상품 가격 인상 자체는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사유가 아니다.

이 두 규정의 역할은 다르다. 직제 시행규칙은 국세청 조직의 업무 분장을 정하는 규정이고, 국세기본법은 세무조사권 행사의 요건과 한계를 명확히 한다. 따라서 직제 시행규칙에 물가안정 지원업무가 있다고 해서 세무조사 대상 선정 요건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직제 시행규칙에 규정된 '물가안정 지원업무'가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물가안정 지원업무에 세무조사도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물가안정 지원업무에 세무조사도 포함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국세청은 그렇게 보고 있다"며 "물가와 관련된 부분도 국세청이 할 수 있는 업무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국세기본법의 조사권 남용 금지 규정과 물가안정 지원업무 규정의 관계에 대해서는 "물가 불안을 조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세기본법상 명백한 탈루 혐의가 있는 납세자를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물가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와 상관없이, 실제 세무조사는 국세기본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실시하므로 두 규정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탈루 혐의 있다면 끝?…조사 대상 선정 과정도 따져야

조세 전문 변호사들은 실제 세무조사에 탈루 혐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법적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 대형로펌의 조세 전문 변호사는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도 적법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법과 판례의 입장"이라며 "세무조사 목적의 위반도 문제지만, 대상자 선정 과정이 적절한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무검증을 시작한 동기가 물가 폭리를 의심해 조사한 결과 탈세 혐의가 나왔다고 해도, 그 자체로 모든 절차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이 탈루 혐의를 발견해 조사를 실시하는 것과 물가를 올린 업체를 먼저 선정한 뒤 탈루 혐의를 찾아내는 것은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국세청이 물가 불안 조장 업체의 탈루 혐의를 실제 포착했다는 설명과 별개로, 조사 대상 선정의 최초 동기와 절차가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성글 국세청 조사국장은 지난달 14일 '물가 불안 조장 탈세 혐의자 세무조사' 브리핑에서 "국세청은 가격 상승을 주도한 계란 생산농가의 문제점을 포착하고 세무검증을 실시했다"며 "이 중 탈루 혐의가 명백히 포착된 11개 업체를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입·유통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 국장은 "수입 물가 안정을 위한 관세 혜택을 편법으로 빼돌리는 수입·유통업체의 문제에 주목하고 세무검증을 실시했다"며 "그 결과, 할당관세 혜택을 받아온 업체 중 허위로 경비를 부풀리고 매출 신고를 누락한 12개 사업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공개한 설명에 따르면 물가 관련 문제점을 포착한 뒤 세무검증을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탈루 혐의가 확인된 업체를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다. 

직제 시행규칙에 규정된 '물가안정에 관한 지원업무'라는 표현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세청은 이 업무에 세무조사가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법령에는 지원업무의 구체적인 범위가 규정돼 있지 않다.

국세청 조사국 출신 조세 전문 변호사는 "물가안정 지원업무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국세청의 재량이 지나치고 넓게 인정되고 있다"며 "국세청의 재량권이 크기 때문에 납세자가 조사 과정의 위법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로펌의 변호사도 "'지원'이라는 것은 부수적이라는 의미다. 물가안정에 관한 주무부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규정"이라며 "이 규정은 주무부처에서 요청했을 때 국세청이 가지고 있는 자료의 일부를 그 목적 범위에서 제공하는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국세청이 주도적으로 물가 관련 업체를 조사하는 것이 지원의 수준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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