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올해 종부세는 또 얼마나 나올까요?

대표 김 씨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답답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법인 보유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가 확 치솟았기 때문이죠.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아이디어를 꺼냈습니다. 갖고 있는 주택을 신탁으로 빼두면 종부세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어요.
#종부세와 형식 위탁자
"친구야, 한번만 도와줘. 종부세 때문에 죽겠어"
"형식적 이전이라는 내용이 있으니까 뭐…. 그래"
법인은 대표 김 씨와 부동산 관리신탁 계약을 맺었습니다. 서류상으론 법인이 위탁자(맡기는 사람)이자 수익자, 김 씨는 수탁자(맡아 관리하는 사람)였고, 곧바로 등기도 마쳤죠. 겉보기엔 법인이 가진 주택이 대표 개인 명의의 신탁재산으로 바뀐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 첫 문장부터 묘하게 찜찜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소유권 명의만 수탁자 명의로 변경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신탁이라고 하면 수탁자가 재산을 관리하고 운용해 수익자를 돕는 구조를 떠올리게 마련인데요. 이 계약은 애초에 명의만 옮기는 걸 목적으로 적어둔 겁니다.
수탁자인 김 대표는 그저 이름만 빌려주는 사람처럼 되어 있었고, 처분도 관리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결정권은 계속 법인에 남아 있었죠.
명의를 바꾼 후에도 불안했던 김 씨는 며칠 뒤, 법인이 제3자인 하 씨에게 위탁자 지위를 넘기는 계약을 추가로 체결합니다. 서류상 최종 위탁자를 하 씨로 바꿔두면, 종부세 부담도 하 씨에게 갈 거라는 계산이었죠.
그런데 이 계약서에도 '실질적 이전이 아니라, 형식적 지위만 이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말 그대로 재산을 진짜로 넘기는 건 아니고, 주택 관리만 위임한다는 뜻이었어요.
위탁 대가도 너무 적었습니다. 주택가치와는 상관없이 관리 업무만에 대한 금액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법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조항까지 포함돼, 아무리 봐도 하 씨가 위탁자 지위를 진짜로 떠안을 이유가 없는 계약이어서 별 일은 없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대표가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거든요.
#체납, 압류, 그리고 소송
"취득세, 재산세, 종부세 체납으로 살고 있는 아파트를 압류합니다."
"저는 그 집을 관리한 적도 없고, 수익을 받은 적도 없는데요?"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택의 최종 위탁자인 하 씨에게 취득세와 재산세를 부과한 것이었습니다.
하 씨는 당황했어요. 서류상 명의만으로 수천만원이 넘는 세금을 감당할 순 없었죠. 체납이 쌓이자 예금 권리 압류가 들어왔고, 급기야 하 씨가 가진 아파트에 압류 등기까지 걸렸습니다. 하 씨의 생활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노후자금마저 압류당할 처지였죠.
결국 하 씨는 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나는 그 주택을 취득한다는 위탁자가 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김 대표의 부동산 업무를 돕는 역할만 하겠다고 약속했을 뿐, 대표가 나를 속여 대리권도 없이 계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위탁자 지위변경 계약이 무효라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습니다.
국세청은 지방세와 별개로 신탁 구조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신탁계약이 실질 이전 없이 형식만 만든 조세회피 구조라고 보고, 이전의 종부세를 다시 합산 법인에 추가 고지했어요.
그러나 김 씨와 법인은 "지방세는 하 씨에게 부과됐는데, 왜 종부세는 우리가 내야 하냐"고 주장했어요. 그러면서 이중과세라면서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습니다.
하지만 심판원의 판단은 단호했습니다.
신탁이라면 최종 위탁자가 재산을 적극적으로 관리·처분할 권한을 가져야 하지만, 이 사건의 위탁은 위탁자 하 씨가 명의만 가진 채 아무 권한도 없는 구조였다고 본 거예요.
세금을 피하려고 종이 위에서만 소유자를 바꿔놓는 동안, 서류상 위탁자가 된 하 씨는 취득세와 재산세를 떠안고 압류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법은 정확히 법인의 회피 목적을 파악했고, 법인의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절세Tip
종부세는 원칙적으로 재산세 납세의무자가 부담하며, 신탁주택도 수탁자 명의로 등기돼 있더라도 최종 위탁자가 납세의무를 갖는다. 다만 신탁이 명의만 옮긴 수동신탁이나 명의신탁처럼 실질이 없으면 신탁으로 보지 않고, 실질 귀속자에게 과세한다. 위탁자 지위를 이전할 때는 형식 변경만으로 납세의무가 옮겨지지 않으며, 수익 귀속, 경제적 위험, 관리 권한까지 실질적으로 이전되는 구조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