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입장에서 세무조사는 '칼'과 같은 존재다. 누군가 내 목에 칼을 겨눴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깜짝 놀라서 허둥대다가 시간을 흘려보내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반면 전략적으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사람은 큰 피해없이 무사히 빠져나올 가능성이 크다.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추징액이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다. 세무조사의 성패는 '전략적이고 침착한 대응'이다.
황재훈 세무법인 에이치케이엘 대표세무사는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세무조사를 통보 받은 후,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향후 조사 진행과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그래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조사팀이 장부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정도만 살펴볼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라며 "내부 이메일이나 계약서 초안 등 원시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이 조사팀에 늦게 소명하거나 설명한다면, 조사관들은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버린다"며 "그 이후에 소명을 한다면 조사관이 이미 내린 판단을 번복하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조사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Q. 기업이 세무조사를 통보받으면 당황해서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대처해야 기업이 받는 타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까?
세무조사를 통보 받은 후, 해야할 일을 꼽자면 ▲조사 배경과 유형 파악 ▲조사팀 구성 확인 ▲전문 세무대리인 선임 ▲내부 TF팀 구성 ▲보안 관리 강화 ▲과거 세무조사 이력 검토 ▲조사대상 기간과 범위 확인 ▲원시 자료 검증 ▲쟁점사항 예측 및 대비 ▲임직원 대응 요령 교육 ▲전산자료 정비 ▲대표이사 역할 등이다.
이렇게 말하면 챙겨야 할 것이 굉장히 많아 보이고 어려워 보이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간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먼저 조사 배경과 유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정기 세무조사이냐, 특정 거래나 탈세 제보에 따른 특별 조사(비정기 세무조사)인지에 따라 대응방식이 달라진다.
조사팀 구성 확인은 사실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주무부서가 어디인지, 조사관의 직급과 전문 분야가 무엇인지 파악하면 조사의 방향과 깊이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무부서가 재산세 담당이라면 조사의 방향이 재산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조사팀에 직급이 높은 사람이 포함됐거나, 각 과의 수석팀이라고 할 수 있는 1팀이 조사한다면 중대한 사안일 수 있다.
기업이 세무조사를 통보받으면 즉시 TF팀을 만들어야 한다. 재무부서에서 알아서 하라고 던져줄 일이 아니다. 재무·회계팀을 중심으로 영업, 구매, 인사 등 부서 담당자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각 부서의 협조가 원활해야 정확한 자료 제출과 소명이 가능하다.
TF팀을 만들어 직원 보안 교육도 빠르게 해야 한다. 직원들이 세무조사를 받는 사실을 여기저기 떠들거나 유튜브에 올리거나 하면, 투자자들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세무조사를 받았을 때 어떤 항목이 추징됐는지, 해당 거래가 지속되고 있는 지도 검토해야 한다. 조사반은 과거 지적받았던 사항들이 개선됐는지부터 볼 것이다.
조사대상이나 기간도 잘 파악해야 하는데, 조사범위를 벗어난 자료를 제출하면 괜히 조사대상이나 기간을 확대하게 만들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세무조사 대응의 가장 핵심은 원시 자료 검증이다. 대부분 장부만 잘 작성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 내부 이메일이나 기안서, 계약서 초안과 변경된 계약서 등 원시 자료를 살펴본다.
예를 들어 계약서 초안에는 물건을 개당 100원에 거래하기로 했다가, 최종 계약서에는 80원으로 기재됐다면 조사반은 물건가격을 저렴하게 해 준 이유가 무엇인지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원시 자료를 잘 점검해야 한다.
Q. 조사관들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부분이 있나?
세무조사 첫 단계에서는 조사관들이 큰 부분을 잡으려고 한다. 매출누락이나 가공경비 등이다. 조사관은 장부를 보더라도, 거꾸로 올라가면서 본다. 예를 들어 2022년도가 조사대상 연도라고 해서 1월부터 시간 순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12월부터 본다.
연말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저 역시도 국세청에서 조사관으로 일했을 때 세무조사를 나가서 12월부터 봤다.
조사관들끼리는 소위 말해 기업이 12월 때 장부를 장난질 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매출 등이 안 맞을 때, 기업은 대부분 연말에 장부의 숫자를 맞춘다.
또 조사관들은 매출 신장률이 업종 평균보다 현저하게 낮거나,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비중이 높은 경우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는 조사반에서 무조건 들여다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수관계에 있는 법인과의 거래는 오해가 없도록 요건을 잘 맞춰놓는 것이 하나의 팁이다.
접대비를 용도에 맞게 사용했는지 여부도 중요하고, 앞서 말했듯이 조사관들이 원시 자료도 검토하기 때문에 이것도 잘 관리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조사관이 재무·회계 담당 직원뿐 아니라, 영업과 생산직 등 실무자들과 면담을 한다는 것이다. 재무·회계부서 직원은 이미 조사관들의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을 알고 있지만, 영업직원들은 현장을 뛰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할 가능성이 크다.
조사관들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세무조사를 받을 때 재무·회계부서 직원이 아니더라도, 영업직 등 현장 직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거래상대방과의 관계가 갑을(甲乙)관계인지 여부도 중요하다. 제가 국세청 조사관으로 있을 때 가장 중요하게 봤던 것이 갑을관계인 기업의 거래였다. 리베이트가 있는 것이 아닌지, 다른 혜택을 준 것이 아닌지 살펴본다. 그래서 갑을관계에 대한 내부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Q. 기업 입장에서 조사관이 무엇을 중점적으로 볼 지 어떻게 알고 대비하나?
조사팀이 세무조사를 하기 전, 해당 기업에 대해 분석하는 분석팀이 있다. 분석팀에서 분석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만 중요하다.
이를 파악하기 힘들어도 방법은 있다. 조사대상 연도의 특별한 거래행위나 사주와의 거래 등을 확인하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또는 조사팀의 소명요청서의 내용을 보면 어떠한 부분을 혐의사항으로 두고 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분석보고서는 조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자료로, 조사 배경과 예상되는 추징 항목이 포함될 수 있다. 조사관들은 이것을 위주로 살펴본다.
하지만 분석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사를 하면 실제와 다른 점이 많다. 분석팀은 추측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내용도 있다. 조사팀은 보고서를 중심으로 기업에 소명을 요구하는데 이 때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의할 점은 늦게 소명할수록 조사관들이 최초에 내린 판단을 번복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사 초기에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
조사 기간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사 초기에는 전체적인 설명을 하고 중반에는 쟁점 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명하고, 후반부에는 마무리와 함께 향후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작은 것은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쟁점이 되는 것은 서면으로 설명해야 한다. 조사관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알아서 확인해보세요"라고 하지 말고 잘 설명해줘야 조사대상 범위가 커지지 않는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기업 대표이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조사팀의 의사결정은 팀장, 과장, 세무서장, 국장 순서대로 올라간다. 조사팀이 파악한 사실관계 등의 내용이 결재권자에게 보고되는데, 이 때 내부적으로 잘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과장이나 국장을 만나야 한다. 관리자는 민원인이 신청하면 만나서 소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대표이사가 직접 방문해 사실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세무대리인한테만 맡겨서도 안 된다.
Q. 기업 대표이사의 역할을 강조하셨는데, 그렇다면 세무대리인은 어떤 역할을 하나?
세금 추징은 조사관이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납세자에게 소명을 요구하는데 이 때 충분한 설명과 증빙을 제시해야 한다. 최종 추징항목이 결정되면 조사관이 납세자에게 확인서를 요구하고 추징세액이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세무대리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세무대리인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조사관과 소통하면서 납세자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다. 제출할 자료도 꼼꼼하게 검토해 불필요한 오해나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
세무조사 대응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으로 가급적 세무대리인을 통해 조사팀과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Q. 기업 입장에서는 추징액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할텐데, 추징액을 줄이는 팁이 있다면?
매출누락이나 가공원가 계상 등 명백한 범칙행위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탈세는 범죄행위로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대표이사가 모르는 직원들의 일탈도 많다. 영업직원이 물건 대금을 횡령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사팀은 대표이사의 지시에 의해 직원이 일탈행위를 했는지 의심한다. 평소에 철저한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분석팀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부당행위다. 특수관계자 거래나 유사접대비 해당여부 등인데 이에 대해선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일부러 제3자와 거래를 하면서, 특수관계자 법인과도 그 정도 가격에 맞춰 거래하는 것도 팁이다.
조사팀이 반드시 추징할 항목과 아닌 것을 구분해 작은 것은 양보하는 것이 좋다. 이는 고도의 협상 기술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업종별 관행도 조사팀에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설업이라면 공사진행률에 따른 수익인식 기준 등을 자세히 설명해야 불필요한 오해가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세금 절감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무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무리한 절세 시도는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을 통해 추징액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인 세무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Q. 세무조사 결과, 억울한 과세라는 생각이 들 때는 불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불복 청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불복은 과세전적부심사청구, 이의신청, 심사 및 심판청구, 소송 등의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과세가 향후 기업이 영업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조사팀에 잘 설명해야 한다.
불복 절차에서는 청구이유서 작성이 중요하다. 소송은 여러 번 재판을 하지만 전심단계인 심판청구 등은 단 한 번에 끝난다. 심판위원들은 하루에 8~9건의 사건을 3~4시간 동안 판단해야 하는데, 봐야 할 자료가 굉장히 많다.
두꺼운 자료를 위원들이 단시간 내에 모두 읽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희 세무법인은 별도로 2~3장 정도되는 요약본을 준비한다. 대형 판넬도 준비해서 그림이나 사진, 사건흐름 도식표 같은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다.
예상되는 질문을 뽑아 모의 위원회를 열어 준비도 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당사자를 무조건 참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복은 사실관계 다툼이 많은데, 세무대리인은 사실관계보다는 논리적으로밖에 말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명의신탁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세무사는 논리적으로만 설명한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는 납세자가 더 잘 알고 있다.
이런 전략으로 세무법인 에이치케이엘의 불복 승률은 90% 이상이다. 불복에 있어서는 저희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Q.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 세무조사를 활용해 발전·성장할 수 있을까?
오너 입장에서 세무조사는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내는 것이 1차 목표다. 두 번째는 추징된 항목에 대한 원인 분석을 하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추징 항목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직원의 책임 소재와 향후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인지 정도는 잘 살펴서 장기적으로 내부통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를 계기로 기업이 투명해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야 직원들도 대표이사의 생각을 따라 간다. 잘한 직원은 표창도 해주면서 격려도 해주면 된다.
특수관계자 간 거래의 경우 세무 분야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모든 것이 연결돼 있어서 세무조사를 받고 나면 이 부분에 대한 노하우도 얻을 수 있다.
조사경력 14년, 조사대응 14년…'창과 방패' 다 겪은 베테랑 세무사
세무대 14기로 1996년 국세공무원으로 첫 발을 디딘 황재훈 대표세무사는 조사 경력만 14년이다.
성북·개포·역삼·동작·삼성세무서 등 서울의 주요 지역 조사과부터 시작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2·4국, 본청 조사국까지 주요 조사부서는 다 거친 베테랑 조사요원이다.
'기업의 저승사자'라고 불리우는 서울청 조사4국에서 근무하던 시절인 2001년에는 현대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1년이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라고 해도 보통 2~3개월이면 끝나지만, 당시 현대그룹 세무조사는 비자금을 찾는 목적이 있었다. 이 때 황 대표는 3개월 동안 은행 마대자루에 있는 수표나 전표를 뒤졌다고 한다.
이밖에 삼성이나 SK, 언론사 비정기 세무조사 등 굵직한 조사도 수행했다.
본청 조사국에서 근무할 때는 분석팀에서 분석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분석보고서는 조사팀이 세무조사를 하기 전, 참고하는 자료로 세무조사의 첫 단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황 대표는 분석팀에서 근무한 3년 내내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대부분 공시자료나 인터넷으로 얻는 정보만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황 대표는 직접 다른 기관에 가서 정보도 얻어오고 해당 기업의 공장 등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분석했다.
2011년 서울청 조사4국을 마지막으로 국세청을 나온 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세무조사대응팀장으로 12년을 근무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서울청 조사4국의 세무조사를 대응하는 업무가 주로 그의 일이었다.
'창과 방패'를 모두 겪어본 황 대표만의 노하우로 지난 2022년 세무법인 에이치케이엘(구 비케이엘)을 설립해 김진현 전 중부청장, 이판식 전 광주청장, 이응봉 전 강남세무서장, 장찬용 전 강남세무서 조사과장, 김인수 전 서울청 조사3국 팀장, 박정순 전 서울청 국제조사 팀장 등 굵직한 경력을 가진 국세청 출신 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
세무법인 2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를 돌파하고, 세무법인 순위 상위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 만 48세인 황 대표는 "세무법인 상위 20위권 내에서 제일 젊은 세무법인 대표인 만큼, 앞으로 대한민국 세무 업계에서 1위가 될 비전과 실행력을 가졌다"며 "성과는 구성원과 함께 배분하고, 경영진도 2년 마다 교체할 계획이다. 누구 한 명의 소유가 아닌 구성원이 힘을 합쳐 100년, 200년이 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세무법인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