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알을 낳는 거위,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특허의 주인공이 가려진지 두 달이 훌쩍 지났지만 후유증은 더 심해지고 있다. 신규특허 사업자 선정결과가 발표되기 7시간 전부터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주가가 의혹의 발단이 됐다. 철통 보안이 유지돼야 할 면세점 선정결과가 사전에 새어나간 것 아니냐는 의심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면세점 심사과정 전체를 책임진 관세청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다. 무혐의로 결론지은 자체감사결과는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고, 아직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의 입만 바라보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검찰수사까지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수장인 김낙회 관세청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김 관세청장이 면세점 입찰공고 이후에 한화그룹 관계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본인의 입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만남의 성격을 불문하고 입찰 시행기관의 장(長)으로서 부적절한 처신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 김낙회 관세청장은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사진=이명근 기자) |
# 관세청장, 국정감사장에서 입을 열다
관련 사실이 드러난 것은 최근 진행된 국정감사 자리였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에서는 김낙회 관세청장과 한화그룹 관계자와의 만남에 대한 의혹제기가 쏟아졌다. 당일 저녁 8시가 넘도록 진행된 보충질의에서 이 부분 질문이 집중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관련해 적지 않은 사실관계가 확인됐다.
김 청장은 의원들의 집중 추궁에 한화그룹 관계자와의 만남 사실은 물론 여의도 63빌딩에서 식사를 한 사실도 시인했다. 63빌딩은 한화그룹 주력계열인 한화생명의 본사가 있고, 신규면세점 사업자로 최종 선정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면세점 입지로 내 놓은 장소다.
당시 국정감사 회의록을 종합해보면 김 청장은 올해 한화그룹 관계자 2명을 각각 따로 만난 적이 있다. 이 중 한 명은 한화그룹에 재직중인 이모 전무로 기획재정부 세제실 출신의 옛 직장 동료였고, 다른 한 명은 한화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다.
이 중 세제실 출신의 한화그룹 이모 전무는 올 초 4~5월에 만났으며 세제실 출신 동료들간의 오비모임이었다는 것이 김 청장의 설명이다.
김 청장은 "이 전무와는 기획재정부 시절부터 같이 근무했던 동료 사이다. 이전에 같이 근무했고, 지금은 은퇴한 동료들과 함께 만난 적은 있지만 그 자리에서도 단순히 밥 먹는 자리였기 때문에 면세점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관세청장은 왜 하필 그 때 한화 관계자를 만났을까
관세청장이 한화그룹 관계자를 만났다는 단순한 사실과 함께, 만난 시기가 시내면세점 전쟁이 막을 올린 이후인 4~5월이었다는 점도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특허는 올해 2월 2일에 업체 선정을 위한 공고가 나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삼성그룹의 호텔신라가 범(凡) 현대그룹의 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고 출사표를 던지며 화제가 됐고, 기존 최대 면세점 사업자인 롯데그룹에서부터 신세계그룹과 한화그룹, SK그룹 등 주요 유통대기업 그룹들이 스스로 "사활을 걸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관심을 드러냈다.
총 1000점 만점의 34개분야 평가항목이 담긴 특허심사 평가기준은 4월 6일에 공개됐으며 6월 1일에 업체들의 특허신청 접수가 마감됐다. 대기업이 참여하는 일반경쟁 신규특허에는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비롯해 호텔롯데, HDC신라면세점(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 신세계DF, SK네트웍스, 이랜드면세점, 현대DF 등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그룹은 당초 신세계와 함께 인천공항면세점 특허에 관심을 보였으나 지난 1월 정부가 관광산업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서울시내에도 면세점 신규특허를 추가로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시내면세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화는 이미 2월 공고 직후부터 신규특허 참여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박원석 의원(정의당)은 "사적인 자리라 할지라도 관세청장이 친분이 있는 면세점 심사대상 기업의 고위관계자를 만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현재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의 수사가 진행중이며, 수사대상에 관세청장도 포함되는 만큼 관세청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 김낙회 청장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낙회 관세청장이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
# 이 전무 외 또 다른 한화 관계자는 누구?
국정감사에서 지목된 한화그룹 이모 전무는 김낙회 청장과는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세제실에서부터 오랜 기간 함께 일했다. 이 전무는 1993년부터 재정경제부 세제실 재산세제과, 법인세과 등에서 근무하다 2007년 한화그룹 재무실로 영입됐다. 상속 및 증여세부분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김 청장도 1993년부터 재정경제부 세제실에서 근무했고, 법인세과, 소득세제과, 소비세제과 등에서 일하다 2008년에 국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부터 1년 반가량 조세심판원장을 지낸 후 2013년에 세제실장을 거쳐 지난해 7월 관세청장으로 부임했다.
김 청장의 해명처럼 이 전무와의 만남이 옛 동료와의 사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이 전무 외에 또 다른 한화그룹 관계자와도 식사를 함께 했다는 그의 행적 때문이다.
김 청장은 "올해 면세점업체 관계자들과 만난 적이 있느냐"는 홍종학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질문에 "저한테 (면세점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한화(쪽은)는 한 번 정도 만났다"고 말했다. 이 전무와는 사적인 사리에서 만났고, 또 다른 한화그룹 관계자는 면세점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만났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김낙회 청장이 63빌딩에서도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업무추진비 내역에는 흔적이 없다"며 "누가 경비를 냈는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김 청장과 한화생명 임원과의 인맥도 거론된다. 기획재정부에서 김 청장과 오랜 기간 함께 근무했던 전직 세제실 공무원은 "김 청장이 한화생명 임원과 친분이 있어서 종종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관세청에 대한 국정감사는 다음 달 6일에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다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