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납세병마개 제조업체로 중소기업 세 곳을 지정했다. 사실상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던 납세병마개 시장에 신선한 경쟁 구도를 형성할지 관심이 쏠린다.
표면적으로는 완전 경쟁체제가 됐지만, 실제로는 시장에 끼칠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 납세병마개 시장의 10%에 불과한 플라스틱 병마개에 한해서만 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90%는 상위 업체 두 곳이 가져가는 구조다.
납세병마개 시장의 철옹성 같은 독과점 구조가 수십년째 깨지지 않는 것은 국세청 퇴직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납세병마개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들의 임원 가운데 상당수가 국세청 출신으로 배치된 점은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 문턱 낮춰도…넘기 힘든 벽
13일 국세청에 따르면 납세병마개 제조자 지정 고시를 통해 두일캡과 영진에스피공업, 현우기술연구 등 세 곳이 새로 추가됐다. 이들 기업은 내년 1월부터 2018년 말까지 5년간 납세병마개를 만들어 팔 수 있다. 다만 플라스틱 납세병마개에 한해서만 제조할 수 있다.
납세병마개는 각종 주류의 뚜껑에 붙은 '납세필증'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주류업체의 탈세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유용한 수단이 된다. 납세병마개 제조 과정에서 위조나 변조가 이뤄지면 주류 탈세와 직결되기 때문에 국세청이 까다롭게 심사해 제조업체를 선정한다.
1972년 납세병마개 사업자로 지정된 삼화왕관이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1985년부터 지정된 세왕금속공업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금속과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모든 종류의 납세병마개를 제조할 수 있는 국세청의 허가를 받고 있다.
두 회사가 점령했던 납세병마개 시장은 2010년부터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그해 7월 CSI코리아가 '제3의 업체'로 국세청의 승인을 받았고, 2011년 10월에는 신성이노텍이 추가 지정됐다. 내년부터 세 곳이 추가되면서 총 7곳이 납세병마개 제조를 담당하게 된다.
삼화왕관과 세왕금속을 제외한 나머지 5곳은 모두 플라스틱 납세병마개만 만들 수 있다. 전체 납세병마개 시장 중 플라스틱 재질의 생산 비중은 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독과점 구조는 당분간 깨지기 힘들 전망이다.
◇ 삼화왕관이 매출 'King'
납세병마개를 40년 넘게 만들고 있는 삼화왕관은 사업 규모나 재무적인 측면에서 다른 업체들보다 크게 앞서있다. 경쟁사들의 매출이나 이익을 모두 합쳐도 삼화왕관을 뛰어넘지 못한다.
삼화왕관의 지난해 매출은 931억원으로 후발 주자인 세왕금속(380억원)이나 신성이노텍(326억원)을 압도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76억원을 기록해 신성이노텍(18억원)의 4배, 세왕금속(9억원)의 8배에 달했다.

내년 납세병마개 시장에 뛰어드는 두일캡과 영진에스피공업은 각각 지난해 매출 107억원, 147억원을 기록했으며, 순이익은 두 회사 모두 3억여원씩 냈다. CSI코리아와 현우기술연구는 금융감독원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재무정보가 베일에 쌓여 있다.
◇ 국세청 퇴직자의 '영향력'
수십년간 납세병마개를 독점해 온 업체들은 국세청 퇴직자들을 유난히 선호한다. 업계 1위인 삼화왕관에는 2010년 석호영 전(前)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이 퇴직하자마자 부회장으로 이직했고, 역시 납세지원국장을 지낸 정시형, 이동훈 전(前)국장도 부회장 자리를 거쳐 갔다.
나란히 평택세무서장을 지낸 이학찬 전(前)부사장과 안춘복 전(前)감사도 국세청 출신이다. 현재는 정경석 부회장(前국세청 심사1담당관)과 박석찬 감사(前동안양세무서장), 이노희 부사장(前삼척세무서장)이 근무하고 있다.
세왕금속은 본사부터 국세청 퇴직 공무원 모임인 '세우회'가 소유한 여의도 빌딩에 입주해 있으며, 대표이사 사장은 대대로 국세청 출신들이 맡아 왔다. 김창남 전(前)국세청 법무국장과 김광 전(前)광주지방국세청장에 이어 황재윤 현(現)사장도 국세청 심사1과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금융권에 낙하산으로 취업하는 재경부 공무원들을 '모피아'에 빗대듯 국세청 퇴직자들의 병마개 업체행(行)도 모피아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세공무원들이 납세병마개 업체로 이동하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인허가권을 쥔 국세청을 상대로 한 로비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탈세를 감시하기 위해 병마개 업체를 지정해 운영하는데, 해당 업체의 고위직에 국세청 직원들이 재취업하고 있다"며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