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전문 e커머스기업 '오늘의집(회사명 버킷플레이스)'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자본완전잠식 상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연결재무제표 상 자본총계는 무려 마이너스 7989억원.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에 놀랐던 사람들은 '오늘의집도 저러다 망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일간지에 오늘의집 자본잠식에 대한 보도가 나간 뒤 입점업체 이탈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정말 오늘의집 재무 안정성과 건전성은 심각한 위기에 빠진 걸까?
기업회생(법정관리)에 들어간 위메프의 2023년 감사보고서에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기재했다. 회사가 영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면서, 그 근거로 계속되는 적자 그리고 유동자산을 초과하는 유동부채를 지목했다. 오늘의집 역시 계속 적자를 내고 있고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훨씬 크다.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8000억원에 육박하는에도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에는 계속기업 관련 불확실성이 기재되어있지 않다. 외부감사인이 잘못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슬쩍 눈감아준 걸까. 한번 따져보자.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털(VC)나 프라이빗에쿼티펀드(PEF)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대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한다. 이 RCPS에는 투자자가 회사측에 "투자원리금을 조기상환해 달라"거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내재되어있다. RCPS 발행기업의 재무제표를 판단할 때는 두가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에 따라 재무제표를 만드는 회사는 RCPS 발행액을 자본으로 분류한다. 어떤 조건으로 발행되건 그냥 우선주일 뿐이라는 거다. 상장기업 또는 상장을 하려는 기업이 사용해야 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다르다. 발행조건에 따라 부채가 될 수도, 자본이 될 수도 있다. 투자자가 발행사에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담겨있다면 부채다. 그런데 투자자가 상환요구를 할 수는 없고, 발행사가 스스로 투자원리금 상환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조건으로 발행되었다면 자본으로 분류한다.
오늘의집은 지난 2014년부터 누적으로 약 3000억원 가량의 외부투자를 유치하면서 RCPS를 발행했다. K-GAAP을 쓰던 비상장 스타트업 시절이었으니 자본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지난해 결산을 하면서 재무제표 작성기준을 K-IFRS로 바꿨다. 미래 상장에 대비하여 자발적으로 K-IFRS 전환작업을 한 것이다. 오늘의 집이 발행했던 3000억원 RCPS에는 투자자의 상환요구권이 담겨있다. 따라서 RCPS는 이제 자본에서 금융부채로 바뀌었다. 회사의 영업이나 재무상황은 달라진 것은 없는데 회계기준 변화 때문에 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오늘의집 재무제표를 해석할 때 주의깊게 봐야 하는 부분은 또 있다. 이 RCPS에는 투자자의 상환요구나 전환요구에 응해야 하는 의무가 담겨있다고 했다. 이 의무는 곧 '부채'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오늘의집 현재 주당가치가 1만원이고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할 때 10주를 발행해줘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해보자. 이 의무 즉 부채의 가치는 10만원(1만원X10주)이 된다. 그런데 주당가치가 10만원으로 상승하였다면 부채의 가치는 이제 100만원(10만원X10주)이 된다. 이처럼 전환권 파생금융부채가 1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즉 90만원이 증가하면 손익계산서에 이를 손실비용으로 반영해야 한다.
일반적인 자본잠식은 회사가 영업활동에서 계속 적자를 내는 바람에 적자(결손금)가 누적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하지만 RCPS 발행으로 투자유치를 많이 한 비상장 기업은 'IFRS로의 회계변경' 그리고 이후 '기업가치의 지속적 상승(주식가치의 상승)'에 따라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 회계가 불러온 일종의 착시현상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자본잠식은 RCPS의 보통주 전환이 실행되면 해소된다. 전환의무가 이행되면 관련부채가 제거되고 자본이 증가한다.
지난해 말 K-IFRS 기준 연결재무제표 상 오늘의집 유동부채는 9074억원이다. 이를 K-GAAP으로 보면 1604억원으로, 확 줄어든다.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7946억원에서 플러스 2243억원으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다. K-GAAP를 적용하면 RCPS 3000억원(금융부채)과 전환권 평가액 7000억원(파생금융부채) 등 약 1조원의 부채가 빠지고 자본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유동비율은 40%(K-IFRS 기준)가 채 안되는 수준에서 K-GAAP 적용시 200%를 훌쩍 넘어선다. 실질 유동성은 우량기업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티메프 사태로 모두가 어려웠던 지난 8월초 오늘의집이 파트너(입점업체)에게 675억원의 조기정산을 실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부감사인은 오늘의집에 대해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을 기재할 이유가 없었다.
☞김수헌 센터장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이데일리 기자 생활을 거쳐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지냈다. 회계 분야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 했다'의 저자로서 삼프로TV 언더스탠딩 채널에서 2년 동안 기업과 자본시장 이슈를 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