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오디오클립
  • 검색

무려 106조원의 체납액, 국세청 안내문에 새긴 '이 문구'

  • 2024.06.13(목) 14:43

'000(이름) 귀하, 혹시 세금 납부를 깜빡하셨나요.'

의도했든 아니든, 체납자가 이러한 문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양심상 괴로워 적게 낸 차액만큼 세금을 납부할지는 알 수 없다. 누구는 도덕적인 호소보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압박이 더 효과적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납세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전자였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은 체납·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도구로 '넛지(nudge)' 전략을 펴고 있다. 넛지란 팔꿈치로 쿡 찌른다는 뜻인데, 경제학에서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세금 관련 안내문으로만 범위를 좁히면, 처벌 관련 문구가 아닌 행동을 변화시키는 유연한 문구를 담는 식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체납 확률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적 추세를 반영한 듯, 최근 한국 국세청도 체납액 납부 독려에 넛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택스워치

체납된 세금 얼마나 될까

세금을 회피하는 건 성실납세자에겐 얄밉다 못해 손해 받는 느낌마저 든다. 체납은 국세청으로서도 고질적인 골칫거리다. 체납액이 눈에 띄게 줄지 않고 대거 쌓여 있다는 점에서, 국가 재정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현재 체납이 발생하게 되면 ①국세청은 체납자에게 독촉장을 발송하고 ②납세자의 납부 의사가 없다면 재산 압류 절차를 밟는다. 또 다른 제재 수단으로 고액체납자의 성명·주소 등을 공개하는 이른바 ‘망신 요법’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에도 체납액은 줄지 않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체납 인원은 133만6759명으로, 이들의 체납액은 106조597억원이었다. 500만원 미만 구간(63만426명)에서 체납자가 가장 많았다. 10억원을 넘게 체납한 인원은 1만4924명(49조5626억원)이었는데, 전체 체납액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누계 체납액은 2021년 99조8607억원에서 이듬해 100조원을 넘긴 이후 해마다 증가세다. 작년 한 해로는 24조3089억원 규모의 체납이 생겼다. 전체 국세 세수 실적(344조1000억원)에서 체납발생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체납 발생률은 낮은 편이라지만, 총액의 절대적인 규모가 감소하지 않은 부분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체납 안내문에 '호소' 문구 담았다

2021년 2월. 국세청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하 조세연)에 '새로운 체납관리 방안'이란 주제로 연구용역을 의뢰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체납관리 방안으로 넛지 정책을 적용하진 않았다. 고지서(또는 안내문)에 넛지 문구를 넣었을 때,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우려가 일부 영향을 줬다고 한다. 

조세연은 같은 해 8월 내놓은 용역 보고서를 통해 "온라인·모바일 납세 고지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국의 경우 넛지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안한 건 납부고지서에 특정한 문구 삽입이다. 다만 신고 기간부터 체납·탈세와 관련한 문구를 삽입하거나 안내하는 것이 되레 세금 회피를 조장할 수 있단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국세청도 체납 이력이 있는 경우로만 범위를 좁혀 자체적인 효과 검증을 진행했었다. 

택스워치 취재에 따르면, 국세청은 2022년 하반기부터 체납자에게 보내는 안내문에 넛지 문구를 담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혹시 세금 납부를 깜빡하셨나요. 지금 납부하셔서 늘어나는 세금과 행정지출을 막아주세요.' 여기에서 늘어나는 세금은 납부지연 가산세를 말하며, 행정지출은 독촉장 발송에 따른 행정비용으로 보면 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관리 방안과 관련한 연구용역 이후에 내부적으로 여러 넛지 문구를 두고 논의했고, 그중에서 제일 낫다고 판단된 문구를 체납 안내문에 삽입했다"고 말했다. 넛지식 안내문은 수십만 건 가량 발송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새로 체납이 발생한 부분에 더해, 세무서 내 자체 판단으로 안내문을 보내고 있어 구체적인 발송 건수는 집계가 어렵다. 

주요국에서도 우편 발송실험 했다는데

이미 주요국들은 체납 사실을 안내하는 우편의 내용에 비억제 넛지를 활용한다. 문구의 변화나 납부기한을 조정하는 식이다. 반대로 억제 넛지는 과세당국의 경고나 세무조사가 대표적 예다. 

조세연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 미시건대학교 연구진은 2018년에 (캔터키, 캔자스, 위스콘신)에서 체납 사실을 안내하는 우편 발송실험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다른 사람의 체납 규모 등이 담긴 우편을 체납자에게 보내고 납부율 변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실험 대상자의 평균 체납액은 1만3000달러였다. 그 결과, 체납액이 작은 구간(2273달러)에서 우편배달 후 10주 이내에 미납액을 납부할 확률이 2.1%포인트 올랐다. 

앞서 2017년 영국 국세청은 체납 안내문에 사회적 가치, 공공서비스 이익을 언급했다. '세금을 내면 건강보험, 교통, 교육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확충할 수 있습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영국은 이 조치로 약 12만명의 체납자들로부터 약 490만 파운드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효과를 봤다. 반면 이스라엘의 경우엔 탈세 사실을 알리는 편지에 '세금 미납시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는 내용을 담아 보냈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식 넛지, 체납 줄이는데 효과 있을까

압박이 아닌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쪽으로 체납관리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효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누계 체납액이 1년 전보다 3조원 넘게 늘었다. 반대로 체납액이 줄었다고 해도 넛지를 활용한 안내문의 영향인지, 독촉장이란 압박에 못 이겨 납부했는지는 납세자 본인 외엔 알 순 없다. 

국세청 관계자도 "체감 효과를 수치화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체납 이전인 세금 고지 단계에서의 넛지 정책 활용도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법정 서식(납부 절차 등)이 빼곡히 담긴 고지서에 넛지 문구를 넣을만한 곳이 없었다는 이유로 넛지 활용 대상에서 빠졌다.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