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세법개정안이 발표됐습니다.
매년 그렇듯 '꼭지(개정항목)'는 많지만 크게 주목할만한 대목은 적은, 예년과 유사한 패턴이면서도 다른, 그런 세법개정안이라는 인상이 짙습니다.
굳이 비판적으로 접근한다면 '알맹이'가 많지 않다(?) 정도의 평가인데 우리나라 세법이 전반적으로 허술한 체계를 갖고 있지도 않은데 매번 이벤트성이 짙은 알맹이들을 우겨 넣는 것도 말이 안되니 있는 그대로의 것만 가볍게 터치해볼까 합니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단연 '혼인 증여재산 공제 도입' 입니다.
앞서 정부는 시장에 제도 도입 방향성을 공개하며 '떡밥'을 던졌고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부의 이전에 대한 문제는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사실 여론의 추이를 굳이 사전탐색할 필요는 없어보이긴 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몰라도 정부가 내놓은 제도의 기본틀(공제금액)은 다소 미흡한 수준에 머무른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실망스러운 수준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이념 프레임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정부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어떤 측면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내놓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정리하자면 기대와 실망 그 사이 어디 즈음을 짚어 설계도면을 그려낸 것 아닌가 합니다.
현재 세법상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경우 세금(증여세) 면제되는 공제한도는 5000만원, 공제기간은 10년입니다.
이 공제한도는 2014년에 개정됐는데(종전 3000만원) 이후 물가 및 소득상승 등 경제환경이 급속히 변하면서 공제한도를 손 봐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부분은 너무 높은 상속증여세율 문제와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즉 상속증여세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사전 증여 공제한도라도 현실성 있게 조정해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깔려 있었던 것이죠.
다만 이미 언급했듯 부의 이전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이념 프레임이 격렬하게 작동하는 부분이라 선뜻 제도 개선에 나서기 망설여지는 부분인 것도 분명합니다.
'저출산' 측면에서 정부가 절묘한 돌파구를 찾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혼인 지원이라는 지류를 타고 들어가면서, 사실상 사전 증여 공제한도를 총 1억5000만원(기본 공제 5000만원+별도 혼인 공제 1억원)으로 늘리는 설계를 한 것입니다.
양가 지원을 받아내면, 신혼부부가 3억원까지 비과세 증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구조입니다.
공제기간(혼인 전 2년+혼인 후 2년=총 4년)만 지키면 이 돈으로 무엇을 하든 추후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입니다.
이 제도의 성공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솔직히 무의미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이유를 높은 결혼비용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안하니 출산을 안하는 것인데, 또 따져보면 결혼도 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여럿 존재하고 있어 이 제도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출산율 향상에 대한 직간접적 기여도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나마 뼈대만 공개된 상황이고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결론이 어디로 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 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이념 프레임에 갇힌 논쟁이 더 이상 개입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제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색안경을 낀 채 무조건 부자들을 위한 나쁜 제도라는 협소한 생각 보다는,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될 위험이 큰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성세대의 선물이라고 여겼으면 합니다.
궁극적으로 20, 30대 젊은 세대들이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야 나라 경제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게 되고 그 윗세대들이 국민연금 등을 통해 직간접적 부양을 받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측면에서 정부가 조금 더 공격적 수준으로 공제금액을 설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은 부모라는 존재의 기본 속성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없어서 문제지, 있다면 당연히 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죠. 이를 이념의 프레임으로 재단하려하는 것이 과연 맞는 방향일까요?
또 한 부분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을 통해 향후 5년 동안 4700억원 수준의 세수감소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감세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시뮬레이션 결과일 뿐이고 실제로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 아무도 모릅니다.
보수 정권의 조세정책 색채가 감세라는 측면이니 이해가 갑니다만, 지금 당장 수 십 조원의 세수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려 하는지 의구심을 떨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가 확 살아나면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녹록치가 않아 보입니다.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 보조금 폐지 등과 같은 효과성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는 정치성 재원 확보책이 아닌 현실적인 재원 확보책을 세워두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