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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젠과 기재부 고위공무원의 수상한 커넥션

  • 2019.08.22(목) 15:03

감사원, 최근 '감사제보 조사결과' 내용 공개
고교 동문관계 활용, 조세심판에 영향 지적

신라젠 문은상 대표의 증여세과세 문제에 세법 입안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회사 대표가 기재부 고위직과의 고교동문 인맥을 활용해 조세불복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해당 고위공무원이 세법 질의회신에 대한 예규결정은 물론 조세심판원 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압박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심판과정에 개입했다는 것. 이는 감사원 감사 결과다.

조세심판원의 기각 결정이 내려지면서 결과적으로 고교동문을 활용한 세금 로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행정부 고위공무원이 독립성을 유지해야하는 행정심판기관의 판단에 직접 개입하려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감사원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해당 고위공무원의 징계(경징계 이상)를 요구했지만, 당사자가 재심까지 요청한 상황이어서 향후 재심의 결과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신라젠 대표와 기재부 고위공무원이 어떤 관계였는지 지난 13일 공개된 감사원 '기획재정부 및 조세심판원 관련 감사제보 등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왼쪽)가 고교동문인 기재부 고위공무원에게 조세불복관련 청탁을 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결과 확인됐다.

#발단 : 신라젠의 수상한 주식거래

문은상 신라젠 대표의 세금문제는 2014년 3월 4일 신라젠이 35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BW는 사채에 신주의 인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통상 자금조달을 촉진시키는 목적으로 발행되는데, 신라젠은 일반 주주의 참여 없이 문 대표를 포함한 회사 특수관계자 4명이 BW 전액을 인수하는 것으로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문 대표가 160억원, 문 대표의 처남이 70억원, 친인척이 50억원, 대주주가 7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투자금 역시 3자 대차거래 형식으로 마련됐다. 신라젠이 빌려준 돈을 신라젠에게 빌려주는 형태로 사실상 주식을 무상으로 취득한 것이다. 

2015년 12월 21일 문 대표 등은 신주인수권을 실행해 1000만주를 취득했고, 2016년 12월 6일 신라젠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면서 이들이 취득한 주식의 주가가 크게 뛰기 시작했다.

판이 커지자 눈에 띄기도 쉬워졌다. 부산지방국세청은 신라젠 주식 거래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했고, 2017년 6월 문 대표 등 특수관계자들이 주식변동과 관련해 증여세 신고를 누락했다고 보고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전개 : 진주고 후배의 다급한 전화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문 대표는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인 당시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국세청 세무조사가 부당하니 도와달라는 전화였다. 둘은 경남 진주고등학교 동문으로 1년 선후배 사이다. 

해당 고위공무원은 일단 질의회신제도를 활용해서 기재부에 세법해석에 대한 질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팁을 전달했다. 질의회신은 납세자가 세법에 대한 질의를 하면 기재부가 일종의 유권해석(예규)을 내리는 제도다. 기재부가 만약 납세자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을 내려주면 이를 토대로 국세청의 과세근거를 반박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세 불복단계에서 세금문제 해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문 대표는 2017년 9월 11일 기재부에 세법질의서를 보냈다. 신라젠으로부터 받은 BW를 인수해 주식으로 전환한 이익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과세대상인지를 묻는 질문이 담겼다.

그런데 기재부에서 미처 답변을 준비하기도 전인 2017년 9월 15일, 부산국세청에서 문 대표에게 과세예고통보가 날아왔다. 특별한 이의제기가 없다면 주식변동 미신고에 대한 증여세 487억여원이 부과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세금납부를 위해서인지 문 대표는 그해 연말부터 2018년 1월 3일까지 3차례에 걸쳐 신라젠 주식 1325억원어치(156만주)를 매각했고, 일주일 뒤인 1월 10일 부산국세청은 BW행사이익에 대해 당초 예고됐던 금액보다 많은 494억원의 증여세를 부과고지했다.

#절정 : 동문 고위공무원의 적극적 개입

2018년 3월 29일, 문 대표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고교 선배인 기재부 고위공무원이 국장급에서 차관보급(1급) 고위직인 실장으로 승진·임명된 뒤 9일만의 전화다. 문 대표는 조세심판청구를 하겠다며 재차 도움을 요청했다.

기재부는 다음날 곧바로 움직였다. 국세예규심사위원회를 열고, 2017년 9월에 받았던 문 대표의 세법 질의에 대한 예규를 심의했으며 그날 바로 의결했다. 해당 고위공무원은 국세예규심사위원회 당연직 위원장으로 예규심을 진행했다.

예규심사위원회는 신주인수권 행사자와 주주간에는 특수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만 과세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문 대표측은 신라젠의 BW발행이 2014년 인수합병을 위한 자금확보차원이라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었고, 국세청은 문 대표와 BW발행법인인 신라젠이 특수관계자임을 과세근거로 하고 있었다. 기재부 유권해석은 과세근거에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된 셈이다.

사건이 조세심판원에서 본격적인 불복 절차를 밟으면서 기재부 고위공무원의 행보도 눈에 띈다. 

2018년 6월 문 대표가 동문 기재부 고위공무원에게 전화해 조세심판원의 사건담당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줬고, 해당 고위공무원은 담당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문 대표가 전해준 심판원 담당자는 모두 3명이었는데, 한달 간격으로 3명 모두에게 전화를 했다. 

A조사관에게는 "기재부 예규심을 확인해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했고, B조사관에게는 "내 동문 사건이니 잘 검토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C조사관에게 전화해서는 "우리가 이런 기업을 많이 도와야 한다"며 "사건을 심도 있게 검토해달라"는 발언도 했다.

조사관들은 감사원 감사과정에서 이러한 전화를 받고 예규대로 빨리 처리하라는 압력성 전화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결말 : 실패한 동문의 로비(?)

하지만 조세심판원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세심판원은 2018년 11월 16일 문 대표의 심판청구를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국세청의 과세가 정당하다는 판단이다.

그런 사이 문 대표와 기재부 고위공무원과의 관계에 대한 밀고가 쏟아졌다. 2018년 10월말부터 2019년 1월 사이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만 9건의 민원이 접수됐고, 감사원에도 감사제보 2건이 접수됐다. 결국 올 2월 13일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 2개월여간의 자료수집과 실지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은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 직위를 이용해 특정 조세심판 청구사건의 조사와 심리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당한 업무간여를 했다"며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해당 고위공무원의 징계처분을 요구했다. 청탁 사항의 실현여부와 관계 없이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이 성립된다는 판단이다.

반면 해당 고위공무원은 문 대표에게 전화를 받은 사실, 조세심판원 관계자들에게 전화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 직위를 사적으로 이용해 청탁을 한 것이 아니라며 감사원에 재심을 청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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